日과 충돌 피하고, 60만명 굶겨 죽여.. 중국을 삼킨 마오쩌둥

김태훈 기자 2019. 6.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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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인민의 배신자|엔도 호마레 지음|박상후 옮김|타임라인|288쪽|1만5000원



일본인으로 중국 지린성에서 1941년 태어나 12년간 살았던 저자는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받은 교육 중엔 '장제스는 중일전쟁에서 싸우지 않은 매국노'라는 내용도 있었다. 명백한 거짓이고 실상은 정반대였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중일전쟁 내내 일본과 사투를 벌인 쪽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였고, 마오의 홍군(紅軍)은 일본과의 충돌을 피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도 진실의 절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장제스와의 국공합작을 통해 국민당 정부군의 정보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던 마오가 군사 정보를 빼돌려 일본군에 넘긴 증거를 제시한다. 목표는 단 하나, 국민당군을 거꾸러뜨리고 자신이 중국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는 마오의 의도대로 전개됐다. 중일전쟁 내내 힘을 아껴둔 마오의 홍군은 일본과의 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장제스와 국민당군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을 제패했다. 저자는 관련 증거로 마오의 스파이가 일본 첩보기관과 접촉해 돈을 받은 사실, 훗날 일본 장군들을 초청해 "일본군의 중국 진공(進攻)에 감사한다"고 말한 점 등을 꼽는다. 마오는 '침략'이란 단어 대신 진공이란 표현을 썼다.

저자가 마오를 중국 인민의 배신자로 규정한 이유는 또 있다. 마오가 국공내전 와중에 창춘을 포위해 최대 60만명에 이르는 인민을 굶겨 죽인 역사를 거론한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해 주민 수백만명을 아사시켰지만, 자국민에게 이런 만행을 저지른 지도자는 역사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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