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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경제' 혐오를 부른다

반기웅 기자 입력 2019.06.16. 09:05 수정 2019.06.17. 10:36

[경향신문]

Pixabay / Unsplash

“가장 미친 놈이 모든 걸 갖는다.”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험성을 다룬 영화 <너브>의 카피 문구다. 영화 속 ‘너브’는 SNS 미션 수행 사이트다. 주인공들은 너브에 가입해 각종 미션을 수행하는데 성공하면 대가로 상금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미션이 거듭될 때마다 상금은 커지고 시청자는 열광한다. 미션은 갈수록 자극적이고 위험해지지만 이미 너브를 통해 SNS 스타가 된 주인공은 좀처럼 너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너브’는 영화가 만든 가상의 사이트지만 현실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은 아니다. 주인공은 유튜버, BJ(인터넷 방송 진행자),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와 닮았다. 대중(시청자)으로부터 ‘관심(좋아요)’을 받으면 ‘상금(별풍선)’을 받는 너브의 시스템도 소셜미디어와 유사하다. 갈수록 폭력적이고 선정적으로 변질되는 너브의 미션처럼 타임라인과 유튜브에서는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업데이트 된다. 혐오든 가짜 뉴스든 대중의 ‘관심’은 경제적 보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위험성을 다룬 영화 <너브>의 한 장면

경제적 성패를 가르는 하나의 변수로 꼽혔던 ‘관심’은 스마트 디바이스의 보급과 소셜미디어 확산을 거치면서 시장에서 절대강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개인과 기업, 전 산업군이 생존을 위해 관심을 놓고 투쟁한다. 빅 브라더의 눈을 피해 숨기에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눈에 띄는 사람이 ‘관심 자본’을 쥘 수 있다. 냉소의 대상이었던 ‘관심종자’(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위상도 달라졌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능력 있는 ‘관종’은 선망의 대상이자 시장을 이끄는 키 플레이어가 됐다.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를 넘어 이른바 ‘관종경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관심’은 돈이 된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관심을 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셀러브리티’(유명인)가 된다. 타인의 관심을 현금과 맞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잡으면서 인터넷 개인방송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앱 조사기관 와이즈앱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유튜브 사용시간(안드로이드 사용자 기준)은 한 해 257억분에 달했다.

개인방송 열풍, 성공은 하늘의 별따기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이 공개되자 열풍은 더 거세졌다. 한국 유튜브 채널 중 보람튜브 토이리뷰는 월 160만 달러, 약 19억원의 광고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년층도 1인방송에 뛰어들고 있다. ‘코리아 그랜 마’ 채널을 운영하는 70대 박막례 할머니는 9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전 세대와 연령층을 아우르는 것이다. 2017년 통계청은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등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를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했다.

미디어는 앞다퉈 ‘누구나 SNS 스타가 될 수 있다’며 인터넷 개인방송을 부추기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관심은 희소성을 지닌 재화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 정보에 비해 관심은 늘 부족하다.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는 “관심은 비행기 좌석이나 음식처럼 낭비되기 쉬운 재화”라며 “관심이 어느 한 곳에 주어지면 다른 곳에는 주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심을 받는 이들은 뛰어난 외모와 같은 ‘매력자본’이 있거나 운좋게 시장을 선점한 소수에 불과하다. 월 1억원 이상 수익을 내는 유튜버는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디지털 셀럽을 꿈꾸는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들은 계속 유입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관심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할까. 이미 검증된 방식이 있다. 최근 발생한 보배드림 사건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 5월 ㄱ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가정형편이 어렵다며 금전적으로 도움을 달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ㄱ씨가 올린 사연은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내용이었다. 열흘 뒤 ㄱ씨는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이번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만난 보배드림 회원이 자신의 자녀를 모욕했고 음식물쓰레기를 택배로 보내 ‘맛있게 나눠 드세요’라고 조롱했다는 것이다.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후폭풍이 거셌다. 작성자의 사연에 측은지심을 느낀 네티즌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4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이 ㄱ씨의 통장에 입금됐다.

하지만 ㄱ씨의 사연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후원금을 보낸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일부는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ㄱ씨는 사과글을 통해 “저에게 관심 좀 가져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거짓 사연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세간의 관심을 얻기 위해 ㄱ씨는 ‘혐오 코드’를 활용했다. 허위정보를 뒤섞어 가상의 혐오 대상 ‘괴물’을 만들었다. ㄱ씨가 택한 방식은 적중했다. ㄱ씨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대가로 수천만 원의 금전적인 보상을 챙겼다. ㄱ씨가 보여줬듯 대중으로 하여금 혐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에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대중의 관심(구독자·조회수)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출난 매력자본이 없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시청자들의 방송 참여에 의존하는 토크·캠방을 개설한다. 사실상 시청자의 관심을 끌 콘텐츠가 없는 방송인 것이다.

이때 창작자는 ‘혐오 콘텐츠’의 유혹에 빠진다. 남녀, 진보와 보수, 자국민과 난민처럼 진영이 극명하게 나뉘는 대상에 대한 혐오는 고정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창작자 입장에서 혐오 콘텐츠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수익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는 안정적인 수익원인 셈이다. 일반 창작자가 개설한 토크·캠방이 혐오 콘텐츠를 양산하는 이유다.

실제로 2017년 <한국소통학보>에 게재된 ‘국내 유튜브 1인 창작자 콘텐츠의 내용적 유해성에 대한 분석 연구’에 따르면 토크·캠방은 1분에 5.2개의 유해 내용을 포함하는 가장 유해성이 높은 방송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은 온갖 혐오 콘텐츠로 가득하다. ‘핫’한 젠더 갈등 이슈와 맞물려 유튜브에는 ‘김치녀’ ‘맘충’ 등 여성 혐오, ‘한남충’ ‘씹치’와 같은 성별 혐오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싸대기’나 ‘참교육’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영상은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혐오 짤방과 게시글을 모아 영상으로 재구성한 콘텐츠도 인기를 끈다. 댓글 창엔 욕설과 폭언이 넘친다.

일러스트 김상민

혐오 강도 세질수록 수익 늘어나

혐오 강도가 세질수록 창작자가 거둬들이는 수익도 늘어난다. 지난 2월 발표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지수씨의 석사학위 논문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혐오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 따르면 여성 혐오발언이 창작자의 발언 맥락에 포함될수록 후원 수익의 증가율(107.0%)이 커졌고, 혐오발언이 높은 공격성을 띨 때 창작자가 받는 후원금의 증가율(평균 104.1%)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슬람 난민과 성소수자도 혐오 콘텐츠가 주로 다루는 주제다. 이미 가짜뉴스로 판명된 ‘무슬림에게 성폭행당한 유럽 여성들’과 같은 조작 영상들은 지금도 소비된다.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라는 제목으로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 결혼, 그리고 이혼해도 된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와 같은 허무맹랑한 콘텐츠들도 수년째 SNS를 떠돌고 있다.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들의 조회수는 대부분 100만을 훌쩍 넘긴다. 유튜브가 영상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광고수익이 조회수당 평균 1.2원이라는 한국MCN협회 보고서를 토대로 계산하면 혐오 영상 하나에 1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반면 한국이슬람방송(IslamicKorea TV)과 같은 채널에서 팩트체크한 영상 조회수는 1만을 밑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별다른 기술 없는 창작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드는 게 혐오 콘텐츠”라며 “혐오는 마약과 같아서 창작자들은 이전보다 높은 수위의 혐오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 광고로 이목 끈 뒤 사과하는 기업

대중의 관심을 쫓는 건 사이버 공간 속 개인뿐만이 아니다. 관심을 얻기 위한 기업의 노력도 필사적이다. 최근에는 제품 홍보에 앞서 관심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 유행이다.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와 KT와 같은 통신사들이 벌이는 ‘실검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대형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회사 이름이나 상품명이 오르도록 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식이다. 중대발표를 내걸고 특가 항공권 이벤트 광고를 벌인 제주항공과 대국민 사과를 한다며 사과 사진을 뿌린 스킨푸드의 행태 역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버크먼은 최근 <뉴필로소퍼> 기고문에서 “관심경제 시대에서 가장 값진 상품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시선과 뇌를 사로잡는 것”이라며 “광고주들은 이 타깃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접근하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혐오 코드를 활용하는 기업도 나온다. 혐오 광고를 제작해 온라인 상에서 이목을 끄는 방식이다. 주로 여성이 타깃이다. 여성을 이기적이거나 의존적인 존재로 표현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광고에 담아 뿌린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남녀 간 전쟁터가 된다.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 뒤에 기업들은 사과문을 내고 광고를 내린다.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 따른 실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장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광고다.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동덕여대 교수)은 “네거티브한 관심이라도 대중들에게는 충격을 주고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저질 3급 광고를 제작해 내놓았는데 1급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로 얼룩진 관심경제의 최전선에는 플랫폼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관심 경쟁을 부채질하고 클릭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관심사와 이력을 비롯한 개인정보를 소셜미디어에 알아서 기록하고 구글과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가만히 앉아 데이터를 수집해 패턴을 분석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의 관심을 빼앗을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부를 축적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 기업은 혐오를 이용한다. 사람들은 화가 날 때 관심을 더 기울이고 클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역시 사용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혐오 콘텐츠를 알아서 노출시키고 클릭을 유도한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우리 삶 전체가 플랫폼에 종속되고 있다”며 “사람들이 응당 쏟아야 할 자원에 관심을 쏟는 대신 플랫폼이 뿌려주는 콘텐츠에만 관심을 쏟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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