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르망디서 유대계 美병사 목숨 구한 獨의사 사연 '감동'

김태훈 입력 2019.06.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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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 합친 것 같은 실화 / 19살 미군 일병, 1944년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총 맞고 포로 돼 / 군번 인식표에 '유대계(H)' 표시.. 독일인 군의관이 몰래 치워줘 / '생명의 은인' 군의관 가족과 수십년 뒤 만나.. 상호방문 등 교우 /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뒤 인생 달라져.. 내겐 하루하루가 선물"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유대계 미국인 로버트 레빈의 1944년 당시 얼굴(왼쪽)과 94세인 지금의 모습.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독일군과의 교전 끝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된 미국인 병사가 있다. 유대인인 그는 독일군에 의해 사살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를 진료한 독일인 군의관이 유대인 표식을 없애준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훗날 생명의 은인인 군의관의 유족과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의 줄거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다. 미국 국방부는 2차 대전 당시 미군과 영국군이 주축이 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맞아 홈페이지를 통해 참전용사 로버트 레빈(Robert Levine·94)의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했다.
 
◆19세 미군 박격포 사수, 독일군에 포로로 붙잡혀
 
15일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 육군 제90보병사단 소속 레빈 일병은 겨우 19살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미군 보병의 주요 무기 중 하나인 81㎜ 박격포 사수였다.
 
레빈 일병이 속한 부대는 상륙작전 당일을 뜻하는 ‘디데이’(D-Day·6월6일)로부터 나흘이 지난 1944년 6월10일 보트로 영국해협을 건너 미군이 임시로 ‘유타’라고 이름 붙인 프랑스 북부 바닷가에 상륙했다.
1944년 6월6일 ‘디데이’(D-Day)에 미국 육군 병사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유타’ 해변에 상륙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처음 며칠 동안은 이렇다 할 교전이 없었으나 노르망디 내륙의 몽카스트르(Mont-Castre) 숲 부근에 도달했을 때 독일군이 강력한 반격을 가해왔다. 박격포로 맞서던 레빈 일병은 독일군이 던진 수류탄이 그의 바로 옆에서 폭발하며 크게 다쳤다.
 
동료 병사 다수가 총에 맞아 숨졌으나 레빈 일병은 부상한 채로 독일군에 항복했다. 그날 밤 미군 포병부대가 독일군 진지에 일제 포격을 가했다. 또다시 중상을 입은 레빈 일병은 급히 독일군 야전병원으로 후송됐는데, 에드가르 볼(Edgar Woll)이란 이름의 독일 군의관이 그를 맡아 진료했다.
1944년 유대계 미국인 일병 로버트 레빈을 치료한 독일인 군의관 에드가르 볼이 남긴 진단서. 레빈의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유대인이란 사실을 들키면 안돼" 군의관의 지략
 
하반신을 크게 다친 레빈 일병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레빈 일병은 한쪽 다리가 없어진 것 말고도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꼈다. 최근 국방부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군번이 적힌 인식표가 사라졌어요. 거기에는 내가 유대계(Hebrew)임을 뜻하는 ‘H’ 글자가 새겨져 있었죠. 다른 독일군이 못 보게 하려고 일부러 없앤 것 같아요. 군의관님은 나의 몸 상태가 상세히 적힌 진단서를 내 군복 호주머니 안에 남겨뒀는데 다리를 왜 절단해야 했는지도 설명해놓았죠.”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레빈 일병은 프랑스 북부 렌의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후 빠르게 진격한 영·미 연합군이 1944년 8월 렌을 해방시키면서 레빈 일병은 2개월도 안 돼 포로 신세에서 벗어났다.
 
미군은 부상이 심한 그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미 육군의 월터리드 병원에서 치료와 회복, 재활을 거친 레빈 일병은 곧 종전을 맞았고 제대와 동시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유대계 미국인 로버트 레빈(94)이 최근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맞아 워싱턴 2차대전기념관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오니… "하루하루가 다 선물"
 
제대군인원호법에 따라 레빈은 대학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사업에 뛰어들어 뉴저지주(州)에서 큰 식당을 운영했다. 현업에서 은퇴한 지금은 뉴저지주에서 가족과 더불어 노후를 보내고 있다.
 
레빈이 전후 처음으로 프랑스 노르망디를 방문한 건 57세가 된 1982년의 일이다. 1944년 그곳에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지 꼭 38년 만이었다. 최근 국방부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유럽에 갔을 적에 나의 생명의 은인인 볼 군의관님의 유족과 만났지요. 그분들은 나를 집으로 초대해줬어요. 군의관님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어요. 그 뒤 오늘까지도 우리 두 가족은 꾸준히 연락하고 돌아가며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있답니다.”
 
죽음 문턱까지 갔던 1944년의 경험은 레빈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때 이후 나는 늘 스스로에게 ‘하루하루가 선물 같은 나날’(every day is a gift)이라고 되뇌곤 합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덕분입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은 점입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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