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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달려와 얼굴 때린 직장 상사, 카톡에다 "속시원ㅎㅎ"

입력 2019.06.17. 14:06 수정 2019.06.18. 10:16
직장갑질119, 직장 갑질 피해 사례 50건 공개
"밤 10시에 회의 열고 퇴근 못하게 해"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가해자 처벌조항 없고 익명신고 어려워"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 모인 직장 갑질 피해자 20여명이 종이봉투로 만든 가면을 쓰고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 직장갑질 119 제공

#1.

저는 한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얼마 전 일을 하던 도중 상사가 갑자기 달려와 제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들이 놀라 말릴 정도로 구타 소리는 컸습니다. 폭력에 의한 상처도 상처지만, 저를 더 힘들게 한 건 폭행 사건 직후 가해 상사의 태도입니다. 상사는 오히려 “너를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도 마치 저를 겨냥한 듯 “속시원ㅎㅎ”로 바꿨습니다. 이후에도 상사는 “경찰에 신고할 줄 알았으면 몇 대 더 때릴 걸 그랬다”는 말을 하는 등 어떤 반성이나 뉘우침도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2.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저에게 상사는 ‘인사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결정할 수 있다’는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제게 폭언을 일삼습니다. 제가 기계 조작 일을 미숙하게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야! 니는 웃는 표정 짓지 마.” “(옆에서 가래침을 뱉고 목 뒷덜미를 꼬집으면서) 머리 속에 생각이 있냐고! 니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냐고!” “니 군대는 갔다온 것 맞냐?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개미새끼만하냐?” “니는 뭐하는 새끼야? 아직도 이것도 할 줄 모르냐. 이걸 아직도 못한다는 건 대가리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돌대가리이거나.”

매일 이같은 말들을 들으면서 출근 전날 밤에는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수면유도제를 먹고 간신히 잠이 듭니다. 동료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직원들은 방관했습니다.

#3.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최근 상사로부터 끔찍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며칠 전 “매뉴얼 작성 후 인터넷 카페에 올리라”는 사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저는 사장으로부터 ‘욕설 퍼레이드’를 들어야 했습니다.

“때려치워라 이 새끼야. X새끼들이 진짜. X발놈들이 내가 자꾸 우습게 보이나. 어? 말로 하니까 안 되겠나? X발 것들. 너 바보야? 야 X발놈아 잘못했으면 가만있어. 어딜 바락바락 X발 대들고 있어 이 X새끼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직장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줄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7일 ‘직장 갑질’ 제보 사례가 하루 평균 70여건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다음달 16일부터 시행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단체에 접수된 직장 갑질 피해 사례 50건을 이날 공개했다. 앞서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 2만5천건의 이전 제보 사례를 바탕으로 직장 갑질 예방 매뉴얼과 모범 취업규칙을 만들면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모두 33개 유형으로 명시한 바 있다. 여기에는 폭행, 폭언뿐만 아니라 △근무시간 외에도 에스엔에스(SNS)로 업무 지시 △적정범위를 넘어선 반성문 지시 △업무 전가 △장기자랑 강요 △위험 작업 시 주의사항이나 안전장비 미전달 등도 포함됐다.

실제로 부당한 야근 지시와 퇴근 후 업무 지시 등으로 인해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직장인 ㄱ씨는 “매출 실적이 적다며 상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밤 10시에 대책회의를 열고, 회의 전까지 퇴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지난 4월 직장갑질119에 신고했다.

직원의 업무 태도를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언행을 트집 잡는 방식의 갑질도 은밀하게 이뤄져 왔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회사원 ㄴ씨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 상사의 지속적인 갑질에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ㄴ씨는 “팀장은 제 일 처리 중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쪽지를 보내도 되는데 저희 팀 전체에게 잘못된 내용을 알려 모욕감을 줬다. 정장을 입고 출근했더니 ‘왜 정장 입고 왔냐? 우리 회사랑 맞지 않는다’고 다른 동료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팀장에게 “개선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지만 팀장은 “점심 먹고 인사도 안 하고 혼자 가버리지 않았느냐. 태도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ㄴ씨는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상사가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 같다’며 지난달 직장갑질119에 제보했다.

‘막내는 잡일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꼰대 문화’는 ‘강요 갑질’을 가속화했다. ‘수직적인 분위기의 회사에 다닌다’는 ㄷ씨는 “지난해 12월 송년회 때 원하지도 않는 장기자랑을 부서별로 준비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전 몇백명이 보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너무 무섭다. 하기 싫다고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회식을 강요하거나 회식에 늦게 도착했다며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마시는, 이른바 ‘후래자삼배’를 강요하고 회식 2차로 노래방에 억지로 끌고 가 노래방 비용을 내게 하는 행위도 모두 갑질에 해당한다고 직장갑질119는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다음달 16일 시행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이같은 갑질들을 모두 막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고, 가해자가 사용자일 경우에도 사업주에게 신고해야 하게 돼 있다. 익명 신고가 어려우며 사내하청·용역·특수고용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이 법에서 배제됐는데도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직장갑질119는 “법 시행에 따라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는 개정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갑질금지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모범적으로 개정된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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