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소년에게 왜 콘돔 안 팔죠?'.. 편의점 대자보 공방

강연주 2019. 6. 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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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주가 붙인 경고문 청소년이 반박 "일부 제외한 청소년 콘돔 구매 합법"

[오마이뉴스 강연주 기자]

   
 6월 8일, 청주 소재의 한 편의점에 두 개의 대자보가 붙었다. 한 개는 콘돔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편의점 주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으로 연령과 상관없이 누구나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며 반박한 어느 청소년의 것이다.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지난 6월 5일 청주의 한 편의점에 종이 두 장이 붙었다. "만 19세 청소년에게는 절대 술, 담배, 콘돔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경고문과 바로 옆에 "청소년 여러분 당당하게 콘돔을 구입하세요!"라고 반박하는 내용의 대자보다. 

"청소년에게도 콘돔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자보를 붙인 청소년 당사자 송민재(19)씨의 말이다. 그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다. 왜 그는 이 대자보를 직접 붙이게 된 걸까? 현재 그의 대자보는 어떻게 됐을까. 대자보를 붙인 후 편의점 측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에 지난 15일 송씨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송씨와 나눈 일문일답.

"본능을 금할 수 없다면 안전하게 사랑하는 법 알려주는 게 마땅"

- 대자보를 붙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편의점에 붙은 글을 보게 됐다. 미성년자들에게 술, 담배를 포함해 콘돔마저 판매하지 않겠다고 쓴 경고문이었다. 잘못된 내용이다. 콘돔은 연령 제한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이다.

안 그래도 많은 청소년이 콘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경고문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단순히 경고문이 잘못됐다고 적어놓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법이라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 대자보를 붙이게 된 거다. 편의점 유리창에 하나, 편의점 외벽에 하나, 총 두 개의 대자보를 붙였다."

실제로 초박형 콘돔을 포함한 일반형 콘돔은 청소년 보호법에도 제재 대상이 아닐 뿐더러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 물건 고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다. 일반형 콘돔은 미성년자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두렵지는 않았나.
"대자보 붙이기까지 숱하게 고민했다. 혹시 편의점주랑 시비가 붙지는 않을까, 해코지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싶기도 했지만 사람들한테도 알리고 싶었다. 청소년도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고. 청소년도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고,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 대자보는 아직도 붙어 있나.
"편의점 내에 붙은 대자보를 마지막으로 본 건 6월 7일이다. 유리창에 붙어 있던 것은 그 전에 떼어졌다. 14일에 다시 그 편의점에 가봤는데 두 장 모두 떼어져 있었다. 물론 편의점주가 붙인 경고문도 없었다."

- 편의점주의 반응은 어땠나.
"직접 들은 바는 없다. 하지만 바뀐 게 있었다. 14일 대자보를 확인하러 그 편의점에 갔을 때 실험 삼아 콘돔 하나를 구입해 봤다. 경고문대로였다면 해당 편의점은 미성년자에게 콘돔을 팔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 어려움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제가 미성년자인데 콘돔을 살 수 있나요?'라고 직접 물어봤다. 바로 '구매할 수 있다'고 답하더라. 문제가 시정된 거다. 이 대자보를 붙이기까지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SNS에서도 공유가 많이 됐다. 주변에서도 많은 공감을 해줬다."

- 앞서 많은 청소년이 콘돔 구입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원치 않는 임신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일 경우 신체적,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어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다. 청소년들은 최소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야 연인과 자신 모두를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 상당수가 콘돔에 대해서도, 구입가능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학내 성교육 시간에도 이런 내용은 충분히 공유되고 있지 않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을 '무성적인 존재'로 본다"

- 현재 학내 성교육에서는 이런 내용이 적절하게 공유되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현재 국내 초중고 성교육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먹고 있는 것 같다. 남녀의 생식기가 어떻게 생겼고, 태아는 몇 개월이 됐을 때 어떤 모양이 되는지, 이런 것은 알아두면 좋지만 필수적인 지식은 아니라고 본다.

반면 피임하는 법, 안전하게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이다. 이런 걸 눈앞에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가르쳐야 한다. 한 번의 교육으로 이후 콘돔 쓸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해외의 경우 성교육 과정에서 남성 성기 모형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 직접 콘돔을 씌워보도록 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 기껏해야 콘돔 사진을 피피티에 띄워놓는 게 전부다. 한국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성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청소년 당사자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은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사회는 청소년의 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청소년과 성을 한데 놓고 보지 않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성이란 없어야 하는 존재로 본다. 청소년을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거다. 대다수 성인들은 '청소년이 왜 성에 대해 알려고 하냐', '너희가 왜 그런 거에 관심을 갖느냐'는 식이다. 청소년들 간의 성관계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중적인 잣대도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면서도 청소년의 성을 탐하기도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아동 포르노, 청소년 성범죄와 같은 것들, 이런 점이 상당히 모순이다. 겉으로는 도덕과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성인들이 그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19세 청소년과 20세 성인이 과연 뭐가 다를까. 그저 짧다면 짧은 1년 차이밖에 없을 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1년 사이에 모든 사회 규범이 달라진다. 성에 있어서는 그 격차가 상당하다. 분명한 건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사람이고, 우리들에게도 성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성에 관해서 무조건 쉬쉬하기보다는 이를 분명하게 알고 서로를 지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사랑이란 원하는 사람과의 합의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 가능한 한 안전한 방법으로 하는 법과 같은 지식들 말이다.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놓고 봐도 부적절하다."

- 더 나은 청소년 성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먼저 청소년의 성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한다. 성도 하나의 본능이자 권리다. 그 중 알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무조건 너희는 몰라야 한다, 너희는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은 청소년들을 위하는 게 아니다. 본능을 억제하고 금지할 수 없다면 안전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마땅하다. 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에 대한 전반적인 인권이 신장된다면 자연스레 성과 관련된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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