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몰아내도 막막한 홍콩.."어떻게 뽑아도 친중파 당선"
'일국양제' 원칙 따라 자유 보통선거 원천봉쇄
중국이 제안한 '미인대회'식 직선제 거부하니
'체육관 선거'로 강경 친중파 또 집권할 우려
지난 16일 홍콩 역대 최대 규모인 200만명(주최측 추산)이 몰린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완전 철폐와 함께 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를 요구했다. 이미 보류 방침이 정해졌던 송환법은 별도 폐기 절차 없이 현 입법회 의원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에 '자연사'할 전망이다. 이번 시위가 이끌어낸 실질 성과다.
설사 람 장관이 물러난다 해도 현재 홍콩 선거방식이라면 언제든 이번과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 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이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일명 ‘체육관 선거’로 뽑히기 때문이다. 애초 중국은 홍콩 반환(1997년) 20주년을 맞아 2017년부터 직선제를 실시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홍콩 직선제안은 1인1표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보통선거와 사뭇 달랐다.
전인대 방안에 따르면 입후보자는 1200명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는 2∼3명으로 제한됐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입후보자가 ‘애국애항(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는 뜻)’ 인사여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사실상 반중(反中) 인사의 출마를 원천 봉쇄한 이 선거제는 홍콩인들의 격한 반발을 불렀다.
일각에선 ‘미스 홍콩’을 뽑는 미인 대회(beauty pageant) 방식과 닮은꼴이라고 비웃었다. 미스 홍콩 선발 땐 5명의 심사위원회가 최종 후보 3명을 정하고 이를 대상으로 시청자가 원격 투표를 해서 1위를 뽑는다. 마찬가지로 행정장관 선거에서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 대표자 1200명으로 구성되는 지명위원회가 사실상 친중 후보 심사위원회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다.
간선제의 한계는 명확하다. 선거 일주일 전 시민 6만5000명이 참여한 모의투표에서는 람과 경쟁했던 온건 친중파 존 창(曾俊華)이 91.9%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람의 지지율은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선 람이 777표(전체 선거인단 1194명)를 얻어 첫 여성 행정장관에 올랐다. 일찌감치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베이징 당국의 지원사격 덕분이다. 람은 정무사장(정무장관) 재임 당시 ‘우산혁명’ 시위를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를 통해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었다.
앞서 홍콩 정부는 선거안이 부결될 경우 당분간 직선제 방안 등 정치개혁안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시위에 못 이겨 캐리 람이 사임하고 조기 선거를 실시한다면 당시 미봉책으로 덮었던 선거제 논란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중국 정부로선 미인대회라고 조롱을 받든 어쨌든 ‘입후보 자격에 제한이 없는 완전한 보통선거를 허용할 수 없다’가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마지노선이다. 홍콩에 이를 허용할 경우 중국의 소수민족자치구나 자치주도 “우리도 홍콩처럼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겠다”고 요구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과 홍콩 정부가 '송환법 사실상 폐기'와 '람 장관 사과'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중앙정부는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법에 따른 통치를 계속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해 일각에서 제기된 '람 교체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국양제=사회주의인 중국이 홍콩이나 마카오에선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통치 체제. 홍콩에 대해선 외교·국방을 제외한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50년간 보장하고 홍콩기본법을 제정해 언론 자유, 사법 독립 등을 약속해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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