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트랙터 회사가 농민 책임지라니..혁신기업에 가혹"

신찬옥,오대석 2019. 6. 1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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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창업자가 말하는 '디지털 G2 시대 경쟁력'
기술 급변기 기업 목표는 생존
기업 연구개발 몰두할 수 있게
사회적 과제는 정치가 맡아야
글로벌 인터넷 제국주의 맞서
데이터주권 끝까지 지키겠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1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G2 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서 네이버 창업 스토리를 소개하며 국내 기업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맞춰 데이터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네이버]
"농경시대가 끝나 갈 즈음에 기계 기술이 나와서 트랙터 만드는 기업이 나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농업 노동력은 일자리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랙터 만드는 그 기업에 책임지라고 얘기하면 기업이 해결하기엔 너무 힘듭니다. 전 세계적으로 트랙터 개발 경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기업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트랙터를 만들려는 회사에 '너희가 탐욕적이니 산업 구조의 변화까지 책임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요. 사회적으로 해결해 줄 일을 기업에 떠넘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업은 연구개발에만 몰두하게 해주는 것이 전체 사회에 도움되는 일 아닐까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18일 한국 기업 환경과 갈라파고스적 규제를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평소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말을 아꼈던 이 GIO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이 GIO는 이날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G2 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 참석해 "기업과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반드시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꿔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구글, 페이스북, 중국 인터넷 기업과 힘겹게 싸우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규모가 커지면 막대한 규제를 적용받아 연구개발(R&D) 등 기업 활동에 몰두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GIO는 "구글처럼 기업가치 1000조원을 넘는 거대 기업과 경쟁하려면, 기업도 규모가 어느 정도 나와야 한다"면서 "그래서 보수적인 유럽도 큰 회사가 나오도록 애쓰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옛날식 틀로 '커지면 기업을 잡아야 한다'고 여긴다. 세계 시장에서 싸우는 기업이 강해지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데이터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을 봐달라고 강조했다. 이 GIO는 "네이버 덕분에 우리 데이터들이 잘 지켜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이 세계에서 몇 안되는 자국어 포털 서비스를 가지게 된 것을 네이버 창업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그는 "세계 모든 사람이 구글이 제시하는 획일적 검색 결과를 보게 되어서는 안 된다" 며 "번역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사용자 취향을 고려해 검색 결과를 노출하려면 각국의 맥락에 맞는 여러 검색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기준으로는 네이버가 있는 것이 다양성이지만,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비판에 대한 의견도 말했다. 그는 "네이버를 욕하는 댓글을 많이 보는데 엄청 괴롭고 지금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면서 "저를 만난 어떤 분이 '저는 구글만 써요'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구글과 네이버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GIO는 "미국·중국 기업이 전 세계 인터넷 산업을 장악하면서 데이터와 매출을 모두 빼앗고 있다. 유럽도 이를 큰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한다"며 "우리가 우리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이를 후손에게 전달해 마음대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은 500년, 1000년 후를 내다볼 때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있어서 그 당시 데이터를 잘 보존했다'란 평을 받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GIO는 특히 기업의 혁신을 비판하며 책임지라고 강요하는 최근 분위기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혁신을 가로막는 사회적 담론이 쏟아지면서 전체 창업 생태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대학생 중 58%가 창업을 꿈꾼다는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매우 보수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던 프랑스가 이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청년들이 공무원이나 의사, 변호사를 꿈꾸고 있어 걱정"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인터넷·모바일 세상에서 '중년'에 접어든 네이버의 도전 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창업한 지 20년이 돼서 그런지 감이 많이 떨어졌다. 휴대폰 글자도 잘 안 보인 지 꽤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은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기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단계다. 앞으로 계속 신사업이 나올 텐데,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계속 기회를 주고 지원해주는 사이클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또 2016년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이끄는 투자사와 구성한 투자펀드 '코렐리아캐피털'의 작명 배경을 밝히며, 유럽과 연합 전선을 구축할 뜻도 내비쳤다. 이 GIO는 "스타워즈를 보면 연합군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게 코렐리아다.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연합군이 필요한 시기라는 데 공감했다"며 "유럽 국가들도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매출과 데이터를 다 가져가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잘 협력해서 인터넷 다양성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찬옥 기자 /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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