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전기세를 걷어야 하는 이유 / 이헌석

2019. 6. 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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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우리는 흔히 전기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비용을 ‘전기세’라고 부른다. 세금이 아니라 요금이라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한번 입에 붙은 말은 잘 바뀌지 않는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기업 광고나 심지어 언론에서도 전기요금을 전기세로 부르는 경우가 적잖다. 그동안 전기요금을 정부가 결정해왔고, 전기요금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있으면 선심 쓰듯이 낮춰준 사례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단순히 표현만 ‘전기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세금 같은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전기에 부과되는 세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석탄이나 천연가스 같은 연료에는 개별소비세가 부과된다.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에는 관세가 부과되지만, 발전용 유연탄이나 우라늄은 그나마도 부과되지 않는다. 특히 우라늄은 다른 연료와 달리 별도의 세금이 부과되지 않고 있다. 전기 자체에는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세금도 부과되지 않는다. 전기요금의 3.7%를 전력기금으로 부과하고 있지만 이를 다 합해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비중이다.

최근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이 주요 국가별 전기요금 구조를 비교한 자료를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7개국 전기요금에서 발전비용, 송배전비용, 세금·부담금 비중을 비교했는데, 우리나라는 세금·부담금 액수와 비중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1㎾h당 부과되는 세금과 부담금을 원 단위로 환산하면 우리나라가 15.1원이다. 각종 세금과 환경부담금이 많기로 유명한 독일이 210.2원으로 가장 높고, 스페인(108.6원), 프랑스(79원), 일본(57.1원)도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세금과 부담금을 낸다. 주요국 중 가장 세금 비중이 낮은 미국조차 27.4원을 부과한다. 이런 세금은 연료에 부과하는 세금과 별도로 전기요금 전체에 붙는 비용이기 때문에 실제 전기요금에 붙는 세금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환경 비용이 발생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나 전력망 교체 비용이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은 이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기 소비자인 국민과 산업계에 부담하도록 해왔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원가 이외에도 환경적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선진국들은 이런 비용을 전력 소비자가 지불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전기요금은 ‘언제든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으면 낮출 수 있는 세금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전기요금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 전기요금의 세부내역이 공개돼야 한다. 원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전기요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의 총괄원가만 공개돼 있을 뿐 그 상세내역은 공개돼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민간 발전사업자가 특혜를 보고 있다거나 한전 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런 사실이 실제 전기요금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 최근 감사원은 전력 도매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력거래소가 발전사업자의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며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기요금 원가 공개를 통해 전기요금의 거품을 찾아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 전환에 들어갈 비용을 충당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는 공짜가 아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석탄화력을 줄여야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안전조처에만 이미 1조원 이상 재원이 투입됐고, 핵발전소 폐로 비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존 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 발전소에 종속돼온 지역경제 자립 문제 등 그동안 거론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 중 일부는 전기요금에 반영해야겠지만, 사회적 비용은 세금이나 부담금 형태로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용처가 분명해지고 사회적 논의도 간단해진다. 연례 행사처럼 여름철이면 ‘주택용’ ‘누진제’에만 갇혀버리는 전기요금 논의의 방향을 틀어야 할 때다. 이 과정에서 전기세 문제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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