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치 흔드는 녹색 바람

정원식 기자 2019. 6. 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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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녹색당, 이달 여론조사 모두 1위…30대 이하 3분의 1이 지지
ㆍ환경 넘어 동성결혼·난민 문제에도 목소리…‘대안정당’으로
ㆍ총리 배출 가능성까지 언급…일부선 ‘일시적 지지율’ 회의론

녹색당 출신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1985년 독일 헤센주 환경장관 취임선서 때 청바지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 동료 의원들의 비웃음을 샀다. 당시 녹색당은 창당 5년이 지난 신생 정당이었다. 39년이 흐른 지금 녹색당은 독일 정치의 중심부를 뒤흔들고 있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사가 이달 들어 실시한 세 차례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집권당인 중도우파 기민당·기사당 연합을 제치고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27%,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24%였다. 지난달 27일 조사 당시 18%에서 9%포인트 올랐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같은 기간 17%에서 11%로 떨어졌다. 1949년 이후 최악의 지지율이다.

실제 선거에서도 녹색당의 약진은 확인된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21%를 얻어 사민당을 밀어내고 제2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2년 전 총선에서 득표율 9%로 6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녹색당이 중도 성향 지지층을 흡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공영 도이체벨레는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존 기민당 지지표 가운데 120만표가 녹색당으로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의 부상은 우선 유럽 시민들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LA타임스는 녹색당 지지자의 말을 인용해 “녹색당이 기후변화 위기의 물결에 잘 올라탔다”고 전했다. 실제 유럽의회 선거 전 독일 유권자의 48%가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학교파업’ 시위는 독일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환경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만큼 기후변화 관련 정책만으로는 녹색당이 지지율 1위 정당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녹색당은 과격한 환경주의자들의 정당에서 일반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정당으로 변화했다”고 풀이했다. 1970년대 환경·평화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의 주도로 창당된 녹색당은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대중들의 인식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기도 했으나 1998년 사민당 연정에 참여하면서 대안정당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녹색당은 사민당과 함께 세제 및 사회복지 제도 개혁에 나섰고 1999년 코소보 파병 등 평화주의 원칙을 깨고 분쟁 지역 파병도 승인했다.

녹색당은 현재 지방의회에서 기민당부터 좌파당에 이르기까지 이념성향이 다른 5개 정당과 연정을 하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녹색당 공동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타협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강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환경 문제를 넘은 진보적 의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당은 2005년까지 이어진 사민당과의 연정 기간에 원전 17개 폐쇄 및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핵심 역할을 했다. 2005년 이후에는 동성결혼 허용 및 난민지원 관련 입법을 적극 지지했다.

녹색당이 기성 주류정당의 지지율을 능가하자 정치판이 흔들리고 있다. LA타임스는 “녹색당의 약진이 독일 정치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아 날레스 사민당 대표는 지난 2일 유럽의회 선거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고, 사민당 내 좌파 세력이 연정 탈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연정이 붕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블룸버그통신은 “베를린에서는 녹색당 출신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사람들의 주된 대화 소재”라면서 “기민당 선거전략가들이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기민당 대표와 하벡 녹색당 공동대표의 TV 토론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지지율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은 지지 기반이 유동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오는 9월과 10월 브란덴부르크주, 작센주, 튀링겐주 등 구동독 지역에서 치러질 지방선거가 녹색당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실업률이 높고 석탄광산 의존도가 높은 구동독 지역은 녹색당의 전통적인 약세 지역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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