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의원이 받은 목포 도시재생 사업계획은 '공무상 비밀'일까

이후연 2019. 6.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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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살펴 보니
손혜원 의원. [프리랜서 장정필]
앞으로 진행될 손혜원 의원(무소속) 재판의 쟁점은 손 의원이 목포시청으로부터 받은 정보가 법률상 ‘비밀’에 해당하느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8일 검찰은 2017년 5월과 같은해 9월 목포시 도시재생 사업 관련한 대외비 문건을 손 의원이 받고 이를 활용해 가족이나 지인이 건물 21채를 사도록 했다는 혐의(부패방지법)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손 의원은 19일 “검찰이 주장하는 대외비 문서는 전혀 비밀 문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법률상 인정되는 ‘비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대법원 판례에서 엿볼 수 있다. 2006년 선고된 대법원 판례(2006도4888)에 따르면 부패방지법상의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이란 반드시 법령에 의해 비밀로 규정되거나 분류·명시된 것만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한 정치·군사·외교·경제·사회적 필요에 따라 비밀로 된 사항은 물론 정부나 공무소 또는 국민이 객관적·일반적 입장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법 "구체적 내용이 외부에 알려진 상태 아니면 공무상 비밀"
해당 판례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대외비 도로개설계획과 구체적 노선계획안을 활용해 불법적인 부동산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얻어 기소된 과천시 건설과 직원 A씨 사건을 통해 나왔다. A씨는 “이 사건 도로개설계획은 주민숙원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주민들에게 공개된 공지의 사실이었기 때문에 비밀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설령 도로개설계획이 외부에 공개됐다 해도 구체적 노선계획안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판례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도로개설계획은 그것이 미리 알려질 경우 지가상승을 유발하여 계획의 실행을 어렵게 하고 그 부지를 매수하기 위한 협의 내지 보상 등의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으므로 공무소 입장에서는 그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며 “도로개설계획 및 구체적 노선계획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모두 부패방지법에 따른 소정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돼 있다.

김범기 서울남부지방검찰청 2차장검사가 지난 18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에서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 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결국 쟁점은 손 의원이 보고받은 문건이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손 의원이 보고받은 문건 내용을 일반 주민들이 일부 알고 있었다 해도 법률상 비밀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손 의원에게 비밀 이용 혐의를 적용했고, 재판에서 충분히 다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혜원·목포시 "주민과 토론해 마련한 문서, 보안일 수 없어"
반면 손 의원은 1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검찰이 말하는 ‘보안문서’는 글씨가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정확히 보지도 못했다”며 “(내용도 모두 알려진 것이라) 보안문서라고 한 것 자체가 검찰의 큰 실수”라고 주장했다.

문건을 전달했다는 목포시 역시 "(검찰이 말하는) 보안 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목포시 관계자는 "도시 재생 사업은 위에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해 그대로 추진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다"며 "사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추진하기 때문에 보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주민 모르게 극비리에 추진된 사업이 아닌데 '보안 자료'니 '유출'이니 말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사건별로 구체적인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과거 대법원 판례가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라며 "목포시가 손 의원에게 넘겨준 자료의 세부 내용과 공개 정도를 법원이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방지법, '시세차익 유·무'는 쟁점 아냐
다만 손 의원이 “부동산을 매도한 게 없어 시세차익 등 얻은 이익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이익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아니다.

대법원은 2006년 판결에서 “부패방지법은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데, 비밀 정보를 반영하지 않아 시세가 실질 재산 가치에 비해 낮게 형성돼 있는 물건을 매수했다면 그 물건을 매수한 시점에 바로 부패방지법 위반 범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며 “비밀이 공개돼 시세가 상승한 다음 이를 다시 처분해 전매차익을 얻은 후에야 범죄 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시점에 산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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