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고]'과거의 프레임'으론 볼 수 없는 한·일관계의 '새 흐름'

오태규 오사카총영사 입력 2019.06.2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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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의 한·일관계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래 최악”이라는 언설이 한·일의 상공을 맴돌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에 관한 일본 기업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계기로, 일본의 관료와 정치인, 학자, 미디어가 제기하기 시작한 이런 주장이 국내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정부 사이의 관계에만 한정해 보면, 최악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범위를 정부 사이를 넘어 민간, 지자체까지 확장하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일관계는 정부 사이의 관계가 얼어붙으면 민간교류도, 지자체 교류도 중단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 사이의 관계는 차가워도 민간 차원은 따뜻한, ‘관랭민온(官冷民溫)’의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한·일관계 최악론’은 이런 흐름을 놓치고 있다.

한·일의 인적 교류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1000만명을 넘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간 사람이 295만명, 한국에서 일본으로 온 사람이 754만명이었다. 과거의 프레임으로 보면,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지난해 10월 말을 기점으로 방한 일본인의 수가 뚝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독도를 방문한 이듬해인 2013년부터 방한 일본인 수가 급락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한국관광공사의 통계를 보면, 방한 일본인은 지난해 11월 45%, 12월 33.5%씩 전년 동기에 비해 증가했고, 올해도 5월까지 월평균 28% 정도 늘고 있다. 심지어 올해 3월 방한 일본인은 37만5119명으로, 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오사카시의 이쿠노구에는 100년 전부터 재일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다. 한때는 구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재일동포였다고 한다. 길이 500m 정도 되는 이곳의 미유키도리에 있는 ‘코리아타운’ 상점가엔 길 양편에 김치, K팝 스타의 캐릭터 상품, 치즈핫도그와 회오리감자튀김, 한국 화장품,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120개 정도 쭉 늘어서 있다. 일본의 10대, 20대들이 요일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멋과 맛을 즐기려고 이곳에 몰려드는 바람에 통행이 힘들 정도이다. 심지어 상점 주인들은 상가에 꽉 찬 손님들의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어 교육이 활발하다는, 오사카시 부근의 도요나카시에 있는 한 전문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는 15년 전에 학생 4명으로 한국어과를 시작했다. 지금은 7개 전공과에 학년 정원이 300명인데, 1학년은 전체의 60%, 2학년은 40%가 한국어과 학생이다. 올해는 한국어과에 들어오겠다는 지원자 10명 정도가 시설 부족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해마다 한국어 인기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부모를 설득하기가 곤란했는데 지금은 그런 부모를 찾기 어렵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이곳 지역에서 만나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비록 정부 사이 관계는 나쁘지만 이런 때일수록 지자체 교류를 더욱 강화하자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예전과 질적으로 다른 한·일 교류의 새 흐름이다. 기성의 관료나 정치인, 미디어와 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물밑에서, 다양한 취향과 문화적 호기심, 가치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역류 불가능한 양국의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폭이 너무 넓고 깊고 다양해 전모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민이 따듯하니까 관은 계속 차가워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관은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더욱 발전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마침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 한국 대통령이 8년 만에 찾는 오사카는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 한·일 교류가 가장 오래된 곳,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두 나라 정부가 한·일 교류의 중심지인 이곳 오사카에서 새 흐름에 맞는 새로운 우호협력의 이정표를 세우길 기대한다.

오태규 오사카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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