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는 사람들 해외이민 신드롬

김경민,나건웅 2019. 6. 21. 09: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걱정이 컸던 사업가 김정열 씨(가명). 자녀가 자라면서 교육 문제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2016년부터 미국 투자이민을 결심했다. 여러 컨설팅 업체와 상담한 후 2017년 2월 미국 이민국에 투자이민을 접수했다. 미국 투자이민은 원금 회수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 씨는 부동산이 아닌 공공 프로젝트에 투자해 지난해 영주권을 취득했다. 언어 문제로 다소 힘든 점이 있지만 본인 선택에 만족한다. 그는 “미국 투자이민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아 영어를 잘 못해도 신청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미래를 생각하면 그때 결정이 옳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자녀 교육뿐 아니라 미세먼지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해외이민을 고려하는 경우가 적잖다. 점차 심해지는 빈부 격차, 이념 갈등 등 골치 아픈 이슈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극심한 취업난에 해외 취업 기회를 찾아 훌쩍 떠나는 젊은 층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해외이민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별로 해외이민 정책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해외이민 신드롬 배경과 함께 해외이민 성공 팁, 해외 부동산 투자 요령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해외이주자 1년 새 4배 급증 영어권 선호…10명 중 7명 美·加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본 고민일 듯싶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머릿속에만 둘 뿐 이런저런 이유로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답답한 한국을 벗어나 해외이주를 직접 실행에 옮긴 이들이 적잖다. 시중은행 PB센터나 해외이주 컨설팅 업체마다 고액 자산가의 해외이민 문의도 부쩍 늘었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e-나라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해외이주자는 6257명에 달했다. 2017년 1443명과 비교해 무려 4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이주자란 대한민국 국민 중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할 목적으로 출국 전 외교부에 해외이주를 신고한 자를 의미한다.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은 해외이주 신고 대상자가 아닌 만큼 해외이주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 해외이주자는 수년째 줄곧 감소해왔다. 2011년 2만2628명에서 2012년 1만5323명으로 급감하더니 2013년 8718명, 2015년 7131명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1443명에 그쳤다가 지난해 5000명가량 늘며 반등세로 돌아섰다.

해외이주가 늘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매달 수백만원씩 학원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한국 교육환경에 지쳐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떠나는 이들이 많다. 피를 말리는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 지긋지긋한 이념·세대·남녀 간 갈등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10년 이상 해왔던 한식당 경영을 접고 해외이민을 준비 중인 A씨는 “최저임금이 올라 직원 쓰기도 부담인 데다 주 52시간제로 저녁 영업이 안 돼 결국 장사를 접어야 했다. 자영업 포화로 한국에서 더 이상 장사하기 어려워졌는데 해외로 나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싫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에어노마드(Air Nomad)족’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IT 기술 발달에 디지털 기기 하나 들고 세계 곳곳을 옮겨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이주자들이 주로 선택한 나라는 어디일까.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 3183명으로 가장 많다. 전체 이주자의 50.9%가 미국을 택했다. 이어 캐나다 1089명, 호주 547명, 뉴질랜드 255명 순으로 집계됐다. 해외이주자 대부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선진국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들 국가의 경우 자녀 교육에 유리하고 기후 등 생활 여건이 양호한 데다 한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현지 정착이 수월하다.

▶해외이민 인식 설문조사해보니

▷응답자 72% 이민 고민, 호주 등 선호

매경이코노미가 진행한 해외이민 관련 설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이민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전국 30·40·50·60대 이상 각각 100명씩, 총 400명에게 물었다.

먼저 ‘해외이민을 고민해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72%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다만 이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기보다는 막연히 상상만 해보는 수준에 머무는 모습이다. 이민에 긍정적인 응답자 대다수(전체 43.2%)는 ‘가끔 이민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반면 ‘이민을 적극적으로 고민·준비 중’이라고 대답한 이는 전체의 6.8%에 불과했다. ‘이민을 전혀 고민해본 적 없다’고 답한 이는 28%다.

이민을 꿈꾸는 이유로는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민에 긍정적으로 답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해외이민을 생각해본 이유’를 물어본 결과 ‘한국의 지나친 경쟁 분위기(58%)’가 첫손가락에 꼽혔다(복수응답 기준). 이어 ‘자녀 교육(43.1%)’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36.8%)’ ‘심각한 빈부 격차와 소득 불평등(34.7%)’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한 사람도 28.1%나 됐다.

반대로 한 번도 해외이민을 생각해보지 않은 응답자는 ‘타지 생활의 고달픔(50%)’ ‘언어·음식 등 문화적인 장벽(46.4%)’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기 때문에(42%)’라고 말한 응답자도 상당수다.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28%)’ ‘총기·마약 등 해외 취약한 치안 문제(22.3%)’를 꼽은 이도 적잖다.

이민 희망 지역으로는 나이·성별 관계없이 영어권 국가를 선호한다.

호주·뉴질랜드를 비롯한 ‘오세아니아’를 지목한 이가 37.8%로 가장 많았고 미국·캐나다 등 ‘북미 국가’ 응답률이 30.5%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7명꼴로 영어권 국가를 선택한 셈이다.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지역을 선호한 이는 16.3%로 상대적으로 적다. 동남아시아(11.3%), 동북아시아(3.5%) 지역을 선호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해외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이민 자격을 획득하는 ‘투자이민제도’는 다소 생소해하는 모습이다. ‘들어는 봤다’고 답한 이가 51.5%로 절반 이상이지만 ‘처음 들어본다’ 26%, ‘관심 없다’도 12%나 된다. ‘잘 알고 있다(10.5%)’ 대답한 사람은 10명 중 1명에 그쳤다. 투자이민은 말 그대로 일정 금액을 해당 국가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영주권을 취득하는 개념이다.

‘투자이민을 위해 얼마 정도 예산을 예상하는지’ 묻는 질문에서도 투자이민에 대한 부족한 인식 수준을 엿볼 수 있다. 85% 넘는 응답자가 10억원 미만을 예상했다. 실제 투자이민 비용은 국가와 지역에 따라 상이하지만 선호도가 높은 국가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 최소 약 10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요구된다.

그나마 미국은 아직까지는 투자이민 부담이 적다. 대표적인 투자이민 프로그램인 ‘EB-5(Employment-Based Immigration-5) 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에 한해서다. 외국인이 인구 2만명 이하의 시골 지역이나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최소 50만달러(약 6억원)를 투자해 일자리 10개를 만들 경우 본인과 가족 구성원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5년 후에는 투자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

문제는 향후 미국투자이민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 오는 9월 30일까지 연장된 미국투자이민법이 개정되면 투자금이 기존 50만달러에서 최대 130만달러로 상향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안이 개정되면 30~60일간 유예기간을 두는 만큼 미국 투자이민 신청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시아 이민도 인기

▷한국 가깝고 저렴한 물가 매력

해외이주 국가로 꼭 선진국만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와 가깝고 물가가 저렴한 것이 매력이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과 달리 저렴한 학비로 자녀를 우수한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다.

동남아시아 중에서는 베트남 이민이 관심을 끈다. 부동산 투자 문턱이 높지 않은 덕분이다. 외국인투자법이 통과되면서 2015년 말부터 비자만 있으면 누구나 베트남 주택 투자가 가능해졌다.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는다. 베트남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VNK투자자문의 고광수 대표는 “하노이, 호찌민 등 베트남 주요 도시 집값이 아직까지 낮은 데다 베트남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주택 구입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 등 인프라가 조성되는 지역 인근 신규 분양 아파트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태국 역시 은퇴 이민지로 인기다. 치앙마이 은퇴비자의 경우 만 50세 이상이고 태국 내 은행에 3개월 이상 80만바트(약 3000만원) 이상 예치하거나 월 소득이 6만5000바트(약 246만원) 이상이면 가능하다. 치앙마이의 경우 매달 연금을 받는 공무원 이주 수요가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말레이시아 역시 MM2H(Malaysia My Second Home) 비자를 받으면 10년간 체류하면서 만 21세 이하 자녀를 부양가족으로 둘 수 있다. 자녀를 국제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고 말레이시아 내에서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것이 장점이다.

해외이민이 막연한 상황에서 해외 부동산부터 선점하려는 수요도 적잖다. 해외 주택은 종합부동산세 대상에서 빠지는 데다 국가별 세제를 활용하면 양도소득세는 물론이고 상속·증여세까지 절감할 수 있는 덕분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해외 직접투자액은 50억7800만달러로 2017년(37억6700만달러) 대비 35%가량 증가했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사장은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을 강화한 데다 집값 상승세도 주춤해 해외 부동산 투자로 눈을 돌리는 자산가들이 적잖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늘면 자연스레 해외이민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경이코노미 설문조사 결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이민에 관심이 가장 높았다. 사진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데븐포트항 전경. <매경DB>

▶투자이민 시 유의할 점

▷영주권 발급·환급 가능성 동시 고려

“미국 투자이민은 리스크가 높은 편이고 호주, 캐나다 등은 조건이 까다롭다.”

각국 투자이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오세아니아와 유럽의 경우 최소 금액 한도가 높고 조건이 까다롭지만 안정성 측면에서 큰 문제는 없다. 대부분 국가 투자이민은 원금 회수 가능성이 높고 돈만 있다면 영주권 취득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미국 투자이민이다.

일단 원금 보장이 안 되고 자칫 영주권을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돈 빌려주고 영주권을 얻는 작업인 만큼 돈을 빌려가는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되도록이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안정적인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영운 온누리국제법인 대표(한국해외이주협회장)는 “부동산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면 개발사의 신용등급과 자산 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한 은행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증여나 상속을 목적으로 투자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도 늘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증여세 면제 한도가 1120만달러로 늘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투자이민은 보통 간접투자 형태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리저널센터(Regional Center)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리저널센터는 미국 투자이민을 원하는 외국인에게 미국 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사업 진행을 위한 투자금 유치 역할을 한다. 리저널센터의 투자자 유치는 통상 세계 각국의 이민 컨설팅 업체를 통해 진행된다. 리저널센터가 프로젝트 정보를 이민 컨설팅 업체에 전달하면 해당 업체가 설명회나 박람회, 상시 상담을 거쳐 투자이민 신청자를 모집한다.

투자금 손실에 대한 법적 의무나 책임이 리저널센터에 없는 만큼 해당 센터 정보를 맹신하는 ‘묻지마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 홍영성 예스이민법인 이사는 “리저널센터는 통상 프로젝트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1000곳 가까운 리저널센터 중 옥석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강승태·정다운·나건웅 기자, 양유정·박영선 인턴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3호 (2019.06.19~2019.06.2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