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과 '메갈'의 연애, 여성 작가지만 남성의 눈으로 써봤죠

조유진 기자 2019. 6.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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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연애로 본 남녀갈등.. 작가 민지형
민지형 작가는 "두루뭉술한 휴머니즘 이야기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창작자로서 나만 할 수 있는 얘기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사실상의 첫사랑. 그녀가 '메갈'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소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남자 주인공 '승준'은 4년 전 헤어진 첫사랑 그녀와 우연히 만나 연애를 다시 시작한다. 4년 전만 해도 '그냥 평범한 여자애'였던 그녀는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낙태죄 폐지 집회에 나가는 페미니스트가 됐다. '메갈'은 2015년 등장한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줄인 말. '메갈리아' 사이트가 2017년 폐쇄된 이후 일부 네티즌은 '메갈'을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용어로 쓴다.

2030 세대에게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남녀 갈등, 즉 젠더 이슈(gender issue)다. 독립출판사에서 신진 작가가 낸 소설이지만 젊은 층에서 반응이 적잖다. 트위터에서 작가가 직접 올린 글은 40만 회 조회됐다. 전자책 대여·판매 사이트 '리디북스'에서도 한국 소설 분야 1위다.

왜 뜨거운 감자를 건드린 걸까.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출판사 '나비클럽' 사무실에서 저자인 소설가 민지형(33)을 만났다. "제 전 '남친'도 저를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로 생각했을 거예요(웃음)." 짧은 머리를 염색한 작가가 쿨하게 웃었다.

―책이 트위터에서부터 화제였습니다.

"5월 초에 출판사 대표와 회의를 했는데 그러더군요. 주제가 예민하고 제목도 자극적이라 책 마케팅 채널들이 홍보를 다 거절했다고. 뭐라도 해야 했어요. 제 트위터에 올렸어요. 팔로어 30명밖에 없는데(웃음)." 그가 남긴 홍보 문구는 이랬다. "도무지 이해 안 되는 페미니스트 여친을 변화시키리라 야무진 꿈을 꾸는 '한남' 1인칭 시점의 21세기 판 '엽기적인 그녀'인데 마케팅이 쉽지 않다고 하네요. 소재도 제목도 쎄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 글이 삽시간에 퍼지며 조회수 40만 뷰가 됐다.

―책 제목만 듣고는 페미니즘 책인지 안티페미니즘 책인지 헷갈렸습니다.

"저는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안티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이걸 공격해야 할지 말지 헷갈리니까 일단 넘어가는 거죠. 위장술처럼 괜찮은 전략인 것 같아요."

―젠더 이슈가 너무 뜨거워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인데요.

"정치나 종교 얘기를 웬만하면 피하는 것처럼 젠더 이슈도 그렇게 됐어요. 친구, 동료와 굳이 불편한 이야기할 필요 있냐는 식이죠. 이 책 추천사 받을 때도 거절을 많이 당했어요. 열다섯 분 정도. 명사나 소설가들은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채로 말을 얹어 문제가 될까봐 조심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총대 메고 첨예한 문제를 건드렸나요.

"연애를 하고 싶다는 답답함 때문에요. 원래 애정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만날 남자가 없는 거예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 남자가 가부장적인지 아닌지부터 보는데 대부분 가부장적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뭐가 그리 가부장적이던가요.

"저는 매일 쏟아지는 여성 대상 범죄, 여성혐오에 대한 뉴스를 흥분해서 말하는데 남친은 그저 부처님 미소만 짓고 있다가 '끝났어?' 하는 거예요. 머리를 자르니 '긴 머리가 여성스러워 좋은데 왜 잘랐느냐'고 하고. 저의 불만은 나를 너무 여자로 대한다는 거였어요. 남자친구는 '그럼 네가 여자지 남자야?'라고 했어요."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페미니스트들의 편협한 태도 때문에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는데요.

"예민하다는 건 남들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다는 뜻이에요. 남자친구가 제게 '머리를 왜 잘랐냐'고 했을 때, 단순한 머리 문제가 아니라 이면의 성차별적 사고방식이 보여 화를 낸 거예요. 여자친구의 외모를 자신의 볼거리로 생각하고, 여자친구를 소유물로 여기니 자신에게 허락을 맡고 잘라야 한다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정의하는 페미니즘이 뭐기에.

"사회적으로는 현존하는 성차별과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운동, 개인적으로는 상대와 동등한 입장에서 정말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요.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인가요.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미니스트가 성별이 남성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고 남자는 다 잘못했다고 욕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성차별 문제에 대해 '남자가 뭘 누린다고 그래. 역차별이 문제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그런 것인지 같이 얘기해보자는 거죠."

―책을 내면서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이 더 걱정됐다고요.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은 무섭지 않아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극과 극으로 달라서 그게 더 무섭죠. 페미니즘의 '디테일'에서 갈리는 지점이 있어요. 제 책이 연애소설이라는 걸 듣고 '왜 연애해야 되냐. 남자는 필요 없다'며 반감을 보이는 페미니스트도 있어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비혼(非婚)과 비연애(非戀愛)가 한참 뜨거운 문제였거든요."

―남자 주인공은 그녀가 어떤 계기로 '메갈'이 됐는지 끝까지 알지 못합니다. 왜 그녀가 변한 걸까요.

"이 책을 읽은 남자들도 많이 물어봐요. '그래서 얘는 왜 페미니스트가 된 건데?' 페미니즘이 특별한 것이고 어떤 계기가 있어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남자 주인공이 친구들에게는 선비라고 놀림받고 여자친구에게 잘하는 착한 남자죠.

"승준은 상위 5%에 드는 정도의 괜찮은 남자죠. 합리적인 의식 수준을 가진 선량한 시민도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틀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연인 사이에서도 젠더 이슈를 꺼내지 않으면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연애가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결혼으로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연애하며 말 안 하고 참아왔던 젠더 이슈가 결혼할 때는 다 터져요. 그래서 피하지 말고 해결을 해야 해요. 젠더 이슈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라운드가 결혼이고 연애는 전초전이니까."

―남자 주인공 이름은 나오는데 여자 주인공 '그녀'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든 그녀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름을 안 썼어요. '메갈'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뚱뚱하다' '남자 못 만나서 페미니즘 운동 한다'. 그런데 아니거든요. 여자들은 많이 변하고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가 보편적이에요. 그런데도 남자들은 내 옆에 있는 여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을 버리고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프로필을 보니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나와 있던데요.

"국문과(서강대)를 나와서 등단한 건 아니에요. 대학원(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시나리오 전공을 했어요. 극작가와 소설가, 두 분야 사이에 걸쳐진 경계인처럼 일했어요. 문학인이 되려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내 울분을 채만식 '치숙'과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섞어 재밌는 콘텐츠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드라마·영화보단 글이 1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포맷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분에 넘치는 사랑이 고맙다고 했다가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여성 독자들이 남자친구와 젠더 이슈로 싸우는 여자 주인공의 상황이 공감돼 울었다고 서평을 남겨요. 그런데 우쭐할 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아니라 그녀의 전 남친들이 그녀를 울게 한 거니까."

전술했다시피, 지금 2030세대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는 남녀갈등. 다음 인터뷰에는 '전 남친'들의 입장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공평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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