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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판 경계 벗어났지만 '꿈틀' 지표만 보지 말고.."땅 밑 살펴라"

이정호 기자 2019. 6. 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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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판 내부에 있지만 지진 다발 ‘쓰촨’…2억8000만년 전에는 판 경계
ㆍ정부 “지표 살피는 게 단층 조사 시발점”…전문가 “방향 재점검을”

2008년 5월 촬영된 쓰촨성 지진 참사 사진. 규모 8.0의 지진으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돼 있다. 당시 7만여 명이 사망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제공

중국 쓰촨성은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끼고 있고 한 해 방문객이 200만명을 넘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광과 맛있는 음식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쓰촨성은 ‘지진의 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강력한 지진의 역사는 이미 11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8년 5월 규모 8.0의 강진이 덮치며 무려 7만여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37만여명에 달한 대참사의 기록이 있다. 2017년에도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주변 관광지가 수개월간 문을 닫았다. 이달에 또다시 규모 6.0의 지진이 일어나면서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 번의 지진 모두 근대 지진 관측 이후 한반도에선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수준의 강력한 지진이다.

특이한 점은 쓰촨성이 겉보기에는 지진이 많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지구의 땅은 단단히 고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초봄을 맞은 호수 수면에서 조각난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조금씩 위치를 바꾸며 움직인다. 이런 조각 하나하나를 가리켜 ‘판’이라고 부른다. 지각과 함께 맨틀의 딱딱한 상층부가 붙어 이뤄져 있다. 이런 판과 판이 서로 충돌하는 가장자리, 즉 ‘판 경계’가 지진이 특히 많은 지역이다. 일본과 아메리카 대륙 등 태평양 주변부가 대표적이다. 쓰촨성은 판 경계에서 한참 떨어진 중국 내륙에 있다. ‘판 내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쓰촨성을 지진의 도시로 만든 걸까.

전문가들은 쓰촨성 땅 밑의 ‘옛 상처’에 주목한다. 이윤수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땅덩어리 모양이 지금 같지 않던 2억8000만년 전에는 쓰촨성이 판 경계였다”며 “당시 갈라졌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지진에 취약한 지역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러진 플라스틱 판을 접착제로 붙여 겉모습을 멀쩡하게 만들어놔도 충격을 받으면 다시 쉽게 부러지는 것처럼 쓰촨성 주변 땅의 강도도 지진 에너지에 굳건히 버티기엔 약하다는 얘기다.

이유는 또 있다. 인도가 포함된 판이 아시아 대륙을 밀어붙여 히말라야산맥을 형성했는데, 이 힘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 가까이에 있는 쓰촨성에는 또 다른 압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이런 힘이 단층으로 전달되면 예민하게 반응해 지진이 쉽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반도다. 한반도는 전형적인 판 경계에 놓인 일본 열도와 수백㎞ 떨어져 있다. 아주 장거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본처럼 상습적인 지진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특히 동해안의 지질학적 역사를 보면 안심하기 어렵다.

본래 일본 열도는 한반도 주변과 한 몸이었다가 2300만년 전 분리됐다. 이 과정에서 밀가루 반죽을 양옆으로 당기면 가운데 부위가 얇아지거나 아예 구멍이 뚫리는 것과 같은 일이 현재의 동해와 주변 땅에서 일어났다. 한반도에는 바닷속에 가라앉았다가 나중에 떠올라 육지가 된 지역도 있다. 지진을 견디기에 좋은 지질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한반도는 판 내부라고 하지만 인도에서 시작된 유라시아판의 압력과 일본 주변 태평양판의 버티는 힘이 쌓이는 곳이다. 이윤수 교수는 “만약 압력을 가로막는 태평양판이 없다면 한반도에는 지진 에너지가 쌓이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지진이 분출하는 단층의 위치와 위험도를 정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등 유관 부처에선 2021년까지 493억원을 들여 단층 조사 1단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조사 사업은 5단계까지 장기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과학계에선 정부 조사 방식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조사 비중의 상당 부분이 땅속이 아닌 땅 위, 즉 지표를 조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계 관계자는 “지질 활동이 활발한 일본은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이 주로 땅 위로 노출돼 있어 지표 조사로도 지진 대비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주로 지하 5~20㎞ 아래에 묻힌 단층이 지진을 일으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땅 위로 드러난 단층 상당수가 움직임을 멈춘 지 10만년 이상 지났기 때문에 지진을 다시 유발할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단층을 살펴보는 선에서 정부 조사의 큰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지질학계 관계자도 땅속 조사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발생한 지진은 지표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지표 조사로는 앞으로 발생할 지진을 유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부 학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지표를 살피는 것이 단층 조사의 시발점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오래된 단층이라도 한번 깨진 적이 있다면 중요하게 살펴볼 대상이 된다”며 “지표가 아닌 땅속 단층부터 조사해서는 조사의 시발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층 조사 방식에 대한 이견이 조사 시작 2년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는 만큼 탐사 방향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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