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식카페>대동강유역서 출토된 세밀한 청동공예품.. 中문명보다 1000년 앞서

기자 입력 2019.06.26. 10:30 수정 2019.06.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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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③ 동아시아 최초 청동기문화

한반도 서북 평남 성천군서

BC31세기 첫 청동조각 발견

용곡리지역 비파형 청동창끝

고조선 성립 BC26세기 추정

특유의 청동거울 ‘다뉴조문경’

세계유일 조립식 ‘비파형동검’

아름다운 기하학도안 ‘팔주령’

한반도·요동·요서 고루 분포

광석 녹여 합금하는 청동기술

문명 고도화의 중요한 지표

中, 빨라야 BC20~BC16세기

日은 BC4세기 들어서야 개막

인류는 신석기 시대 후기·말기에 자연동·자연금·운철(隕鐵: 운석 속의 타고 남은 철) 등 자연 광석을 채집·단조해서 금속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 광석들을 녹여 ‘합금’을 만들면 더 견고한 도구를 제작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합금’은 고도의 과학기술의 응용을 알려주기 때문에, 문명 형성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인류가 최초의 합금을 제조한 부문은 동(순동·자연동(自然銅))과 주석과 아연 등을 녹여 합금해서 제조한 ‘청동기’의 생산이었다. 청동기의 생산과 청동기 시대의 시작은 인류가 과학적 문명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고조선문명권에서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고한반도 중부지방 ‘한강문화’였지만, 최초의 청동 유물이 나온 것은 BC 31세기경 청동합금 조각이 출토된 ‘대동강문화’였다. 대동강 중상류인 평안남도 성천군 용산 무덤에서 5069년 전(1995년 기준 BC 3074년)의 것으로 측정된 청동(靑銅) 조각들이 팽이형 토기, 돌도끼, 돌도끼 조각과 함께 출토됐다. 이것은 청동 무기나 도구를 제조하기 직전의 준비된 중간재 청동 조각이지만, 이미 자연동(銅)과 석(錫)과 연(鉛)의 세 광석을 합금시켜 제조한 합금 조각이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가 한반도 서북지방에서는 BC 31세기에 시작되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이어서 고조선(단군조선) 성립기인 기원전 26세기의 것으로 측정된 비파형 청동 창끝이 강동군 용곡리 5호 고인돌 무덤에서 나왔다. 기원전 26세기(4593±167년 bp)의 것으로 측정된 청동 단추와 청동 창끝도 발굴됐다. 또한 상원 장리에서 BC 3000년기 전반기의 큰 규모 고인돌(오덕형) 무덤의 무덤 칸에서 청동 교예 장식품 1개, 청동 방울종 2개, 청동 끌 1개를 비롯한 청동 제품들이 나왔다. BC 26세기의 유적·유물로 측정됐다. 이 가운데서 청동 2인 교예 장식품은 서로 어깨를 끼고 발목을 합친 2인의 교예사가 각각 1개씩의 둥근 고리(環)를 들고 또 다른 2개의 둥근 고리 위에 올라서 재주를 부리는 형상을 제작한 것이다. 옷의 몸통과 팔 소매, 바지에 고조선 문명 특유의 굵은 기하학적 번개무늬가 돋쳐 있고, 얼굴에는 입·코·눈·귀가 잘 묘사돼 있는, 작지만 매우 숙련된 기술의 우수한 청동 공예품이다(<그림 1-3> 참조).

또한 청동 방울종은 원추형의 종처럼 아가리가 넓고 꼭대기가 좁은 형태로, 울림통·고리·추로 이뤄진 작은 방울종이다. 역시 고조선 문명 특유의 굵은 기하학적 번개무늬가 돋친 것으로서 숙련된 기술로 어려운 구조를 만든, 매우 뛰어난 청동 공예품이다(<그림 1-4> 참조). 고조선 문명의 대동강문화에서 BC 31세기 청동기 시대의 시작은 동아시아 최초다. BC 31세기의 청동 합금 조각이 아직 청동기는 아니라고 불안해하는 경우에는 BC 26세기의 비파형 청동 창끝 2점, 청동단추, 청동 교예장식품, 청동 방울종 2점, 청동 끌, BC 25세기∼BC 24세기의 금동귀고리 3점 등 청동기 유물이 발굴돼 시계열이 완벽하게 형성됐으므로 이때 청동기 시대가 시작됐음은 명백한 것이다. 고조선은 BC 31세기∼BC 26세기에 초기 청동기 시대로 진입했다.

요하 서편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에서도 BC 30세기경의 순동(純銅)귀고리 1점과 거푸집이 발굴됐다. 이를 두고 중국 고고학자 일부는 홍산문화를 금석병용기로 설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자연동이지 아직 주석 및 아연과의 ‘합금(合金)’이 아니므로 청동기라고 볼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는 고조선 문명의 대동강문화에서 BC 31세기∼BC 26세기에 처음으로 청동기 시대가 성립돼 주위로 전파된 것이다. 서방 수메르 문명에서는 BC 33세기∼BC 30세기의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해 이 시기부터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게 됐다고 보고 있다.

고조선문명 청동기 문화의 특징적 유물 중 하나는 청동거울인 다뉴조문경(多粗紋鏡)과 다뉴세문경(多細紋鏡)이다. 보통 뒷면 무늬그림의 줄의 섬세한 정도에 따라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으로 구분한다. 고조선식 청동거울은 모두가 둥근 태양 모양에, 뒷면에 붙은 꼭지가 2∼3개의 ‘다뉴’(多, 여러 꼭지)이고 중심부의 약간 위에 꼭지를 붙여 제조돼 있다. 무늬는 ①햇빛(태양광선) 무늬와 ②번개 무늬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그 훨씬 후의 고중국식 청동거울은 둥글거나 사각형 모양에 뒷면에 붙인 꼭지가 중심부에 한 개뿐인 단뉴(單, 한 개 꼭지)로 제조돼 있으며, 무늬는 각종 동식물 등 구상물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고조선문명의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의 완전하게 둥근 형태는 해(태양)를 상징한다고 본다. 고조선 사람들은 천손의식을 갖고 하늘과 해(태양)를 숭배했으므로, 청동거울을 항상 해와 같이 둥근 모양으로 만들고, 뒷면의 무늬는 햇빛(태양광선)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고조선문명에서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의 뒷면에 동심원을 1∼3개 그리고 햇빛을 삼각형 또는 별무늬 모양으로 나눠 그린 것도 사실은 모두 햇빛(태양광선)의 기하학적 무늬다. 종래 이것을 별무늬 또는 삼각무늬, 톱니무늬로 이름 붙여 설명해 온 것은 해(태양) 숭배 사상과의 관련을 간과한 정확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본다.(<그림 2-1> 참조)

이 고조선 다뉴조문경의 지역적 발굴 분포를 큰 강을 경계로 가정해 지도에 옮겨보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고조선 다뉴조문경은 한반도 전역과 만주의 요동·요서 및 연해주지역에도 분포돼 있다.

고조선문명의 청동기문화 유물들 가운데 독특한 청동기로 ‘비파형동검’이 있다. 이 청동단검은 그 모양새가 고대 악기 비파(琵琶)와 비슷한 곡선으로 도안돼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고조선문명의 비파형동검은 고중국의 직선으로 도안된 동검이나 또는 북방 오르도스식 구부러진 도안의 동검과는 확연히 모양새가 달라서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고조선 비파형동검의 큰 특징으로는 첫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중간 부분의 양날에 돌기를 만들고, 그 돌기를 중심으로 검 끝과 검 아랫부분을 부드러운 곡선 모양새로 만들어서 마치 고대 악기 비파 모양처럼 도안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청동검 양식에서 비파형 도안은 오직 고조선 청동단검과 비파형 청동 창끝만 가진 매우 독특한 도안이다.

둘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검몸과 검자루를 별도로 주조해 조립하는 세계 유일의 ‘조립식’ 청동단검이다. 두 개 부품을 별도로 주조해 조립하는 것이므로 청동기 주조 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제작할 수 있는 동검이다.

셋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검몸의 한가운데 ‘등대’가 검의 거의 끝에서부터 검자루 이음매까지 세로로 곧게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동검을 견고하게 하면서 조립을 정확히 하기 위한 것이다.(<그림 2-3> 참조) 주목할 것은 고조선의 비파형 청동단검은 ①한반도 ②요동 ③요서 지역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의 형태와 구조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고조선문명의 세형동검은 철기 시대의 동검이다. 고조선에서 BC 12세기경에 철기 시대가 시작돼 철제무기, 특히 철 장검과 철 단검이 점차 비파형 청동단검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이와 관련해 비파형 청동단검에도 아름다운 곡선의 실용적 직선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서 세형동검이 출현·발전했다. 세형동검도 조립식 동검이다.(<그림 2-4> 참조)

비파형 청동단검과 병행해 성립한 청동무기로 ‘비파형 청동 창끝’이 있다. 비파형 청동 창끝은 손잡이에 긴 나무막대를 끼워 긴 창으로 사용한 것인데, 나무막대는 삭아 없어지고 청동 창끝(銅矛)만 출토된다. 가장 오래된 출토 비파형 창끝은 덕천 남양유적 집자리에서 나온 BC 26세기의 비파형 창끝이다. 모든 금속문명권에서 청동 창끝을 사용했으나 이러한 비파형 청동 창끝은 고조선문명에만 있었고, 이웃 고중국 계열에는 없었던, 고조선의 독특한 청동무기다. 고조선문명에서 청동도끼도 많이 출토되는데, 부드러운 곡선을 넣어 도안한 ‘부채꼴’(扇形) 청동도끼다. 이것은 이웃 고중국의 직선도안 ‘책꼴’(冊形) 청동도끼와 쉽게 구별된다.

고조선문명에서는 각종 의례·의식에서 의기(儀器)를 청동기로 제조해 사용했다. 고조선에서는 특히 제천의식을 담당하기 위해 국읍(國邑)에는 천군(天君)이라는 담당자를 두고 그의 제천 제사 지역을 소도(蘇塗)라고 해 신성시했다. 소도는 단군신앙을 담당한 성스러운 곳이었으므로, 여기서 고조선 시대에 사용한 제의용 청동기들은 단군신(檀君神) 숭배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된다.

여기서 사용한 청동의기들은 방울종과 방패형 의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청동방울종은 동령(銅鈴: 작은 청동 방울종)과 동탁(銅鐸: 큰 청동 방울종)이 발굴되고 있다. 동령 가운데 팔주령(八珠鈴)은(<그림 2-2>) 8각형 구도의 중앙 몸체의 중심에 1개 태양(해)과 태양광선(햇빛살)을 도안하고 8각의 끝에는 동그란 종방울을 달아 두 개 타래머리무늬(雙頭渦紋)를 조각한 청동기다. 팔주령은 단군신앙의 소도의 제의기이므로, 중앙의 태양은 단군, 그 둘레의 원(圓)은 단군의 밝달조선의 상징이고, 8각 끝의 8방의 작은 종방울들은 단군의 8방의 후국을 상징하는 8개의 작은 태양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고조선문명의 청동기는 당시 세계 최고 기술과 아름다운 기하학적 도안의 예술품으로도 세계 정상의 것이었다.

고중국의 청동기는 고조선 후국 고죽국 지역 당산(唐山)에서 출토된 BC 20세기의 홍동(紅銅) 조각 2점과 용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BC 18세기의 작은 청동 추가 있다. 상(商) 시대의 하남성 이리두문화 유적에서 나온 삼족기 청동 술잔, 향로, 청동 칼, 추, 끌은 BC 16세기∼BC 13세기의 것이었다. 중국 고고학계는 일찍 잡아도 중국에서는 BC 20세기∼BC 16세기 초기 청동기 시대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고조선 아사달지역의 BC 31세기∼BC 26세기보다 약 1000년 뒤의 일이다. 일본 청동기 시대의 개막은 야요이 시대(BC 4세기 중엽∼AD 3세기 후반)이므로 다시 이보다 훨씬 후의 일이다.

고조선문명에서 최초의 청동기가 나왔다는 사실이 한자(漢字) 만들기에도 반영돼 있다. ‘鐵’(철)의 옛 글자(상·서주 시대)는 ‘철’(철, 쇠, 금속)이었다. ‘철’(철)은 ‘동이의 금속’이라는 뜻이다. 즉 고대 중국 지식인들은 동·금·철 등 금속이 동이(고조선)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것임을 당시에는 잘 알고 있었다.

유럽 고고학자들은 1928년 상(商)의 청동기(BC 16세기∼BC 13세기)를 발견하고 경탄해 이때부터 ‘황하(고중국)문명’의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고조선이 그보다 1000년이나 앞서 찬란한 청동기를 만들고, 상나라 사람 자체도 고조선의 청동기술을 갖고 간 고조선 이주민이었는데, 우리가 ‘고조선문명’론을 정립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문화일보 6월 5일자 29면 2회 참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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