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에 미친 남자, 네이멍구서 야생 추적 45일

장재선 기자 2019. 6. 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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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태어나 7년간 살다가 병사한 늑대 ‘하나’. 야생 늑대 유전인자가 있으나 태어나자마자 사람 손에 길러져 서울동물원 등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양철북 제공

- 늑대가 온다 / 최현명 지음 / 양철북

야생 삶 포기 않은 점에 매력

늑대 사랑한 국내 동물전문가

새끼 늑대 2마리와 동행하며

중국서 늑대 굴 찾아 헤맨 기록

먹이 줄자 가축을 노리는 늑대

인간의 증오를 사게 된 배경 등

애정 어린 늑대의 문명사 다뤄

이솝우화 속 양치기 소년은 외친다. “늑대가 온다.” 이때 늑대는 사람이 기르는 양을 잡아먹으려는 사악한 포식자이다. 이 책의 제목 ‘늑대가 온다’는 이솝우화와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늑대를 조금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야생 터전을 마련해 주기 바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

저자는 동물 연구가들 사이에서 국내 최고 포유류 전문가로 통한다. 포유류 중에서도 특히 늑대에 미쳐 있어 ‘외로운 늑대’로 불린다. 그는 늑대에 미치게 된 이유로 개와 비슷하면서도 야생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라진 야생 늑대를 만나기 위해 몽골과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 등을 40여 차례나 찾았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여행, 그러니까 2002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에서 늑대 굴을 찾아다녔던 45일간의 기록이다. 한국 동물전문가가 쓴 늑대에 대한 첫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국 저자가 쓴 포유류에 대한 책이 없다. 특히 늑대 이야기는 다른 나라 책을 번역해서 소개했을 뿐이다.

날짜별로 자세하게 적은 첫 ‘늑대 여행’ 기록은 저자의 뜨거운 열정을 생생히 전한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늑대를 사랑하는 인간의 고뇌가 구석구석에 담겨 있다. 그는 현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 반복해서 물어봤다.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가?” 이는 저자 스스로를 위한 질문이었다. 그런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주민들은 늑대가 사람을 해친 사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늑대가 가축에게 큰 피해를 주니 인간과 공존할 수는 없는 동물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임완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이사, 중국동포인 박인주 헤이룽장(黑龍江)성 야생동물연구소 연구원과 여정을 함께했다. 그들과 늑대를 찾아다니며 혼자 길을 잃기도 하는 등의 갖가지 스토리가 소설처럼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이 여정의 또 다른 동행자는 새끼 늑대 두 마리다. 현지인이 늑대 굴에서 발견해 키우고 있는 새끼 늑대들을 샀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데려가 동물구조센터에서 계속 기를 생각으로 여행 내내 함께했으나, 하얼빈(哈爾濱) 동물원에 맡겨 두고 찾아오지 못했다.

늑대를 데려오지 못한 것은, 그의 쓰디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1998년 동물구조센터 이사를 맡은 후 중국에서 1년생 늑대 여섯 마리를 들여와 키웠다. 늑대들은 뒤에 새끼를 낳기도 했으나, 갇혀 있는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와 전염병 등으로 결국 제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다짐했다. “야생동물을 집에서 키우지 말자. 그것은 죄악이다.”

책 뒤편의 ‘여행 밖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의 포획 등으로 한반도에서 늑대가 사라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1964~1967년 창경원 동물원에 들어왔던 영주 늑대가 남한의 마지막 늑대라고 주장하며, 그 늑대를 포획한 인물을 찾아다닌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저자는 인간이 늑대를 ‘없애야 할 동물’로 인식하게 된 과정을 문명사로 살핀다. 잡식동물인 인간과 육식동물인 늑대는 당초 경쟁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가 가축을 기르면서 갈등이 생겼다. 늑대들은 야생 사냥감이 줄어든 만큼 가축을 노릴 수밖에 없었고, 인간은 ‘내 재산’을 훔쳐가는 늑대 도둑을 사탄과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개는 늑대가 진화 혹은 변화한 동물이다. 3만 년 전 중동과 티베트, 중국 남부에 살던 일부 늑대들이 개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늑대의 삶은 고달프니 사람에게 기생해서 보살핌을 받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야생 본성이 살아 있는 늑대에게서 가축을 지키기 위해 개를 이용했고, 그렇게 늑대와 개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됐다.

저자는 개와 늑대를 다 함께 사랑하지만, 야생동물 유전인자를 지키고 있는 늑대 쪽에 더 애정이 기운 듯한 모습이다. 그 애정에 대한 공감도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줄여온 야생동물 터전을 회복시켰으면 하는 소망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것이다. 384쪽, 1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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