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선수 vs 일반학생, 학교스포츠 이분법적 구조 없애야"

2019. 6. 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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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혁신위원회가 지난달부터 4차례에 걸쳐 한국 체육계의 구조개혁을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 중 가장 핵심은 ‘학교스포츠 정상화’에 관한 내용을 담은 2차 권고안이었다.

경기 준비만 하는 학생선수들은 최소 학력을 갖추고, 입시 준비만 하는 일반학생들은 최소 운동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학교스포츠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체육 분야의 우수 인재를 선발하는 본래 목표를 달성하면서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학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일반학생들의 스포츠 활동 참여를 통해 국민의 삶 속 스포츠의 일상화를 지향하겠다고 했다. 학교스포츠가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스포츠 정상화가 체육계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라는 인식에 따라 마련된 권고안. 이와 관련해 류태호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봤다.

류태호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

이 같은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하게 된 계기는요?

학사비리, 성폭력 문제 등 학교스포츠의 비정상성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다수 발생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또 그 사건들의 이면에 있는 스포츠계의 비리, 불공정, 반인권, 비민주적 형태. 이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더불어 체육계의 적폐청산과 공정한 스포츠 생태계를 향한 국민적 열망도 표출됐죠.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승리지상주의, 국위선양이라는 목표를 향하며 근 오십년 동안 학생선수들의 기본적인 인권, 특히 학습권은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발생한 문제들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거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고민 끝에 혁신위의 권고안이 만들어졌습니다.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권고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권고안은 6개의 큰 영역과 하위 35개 세부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학교운동부 및 지도자 개선, 학생의 스포츠 참여 확대, 전국스포츠대회 개편이 권고안의 큰 축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학기 중 학생선수의 주중대회의 참가를 금지하고 최저학력제 도달 학생만 참가를 허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주중대회의 개최 금지도 권고했고요. 또 학생선수의 대회 참가, 훈련시간, 전지훈련 등에 대한 1년 계획을 학교교육 계획안에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부상 등의 이유로 운동을 그만둔 학생들, 소위 경력전환 선수에 대한 프로그램 마련도 권고했습니다.

체육특기자 제도의 개편을 위해 최저학력제 기준에 미달한 학생선수는 체육특기자 선발에서 제외하고 특정 학교에 체육특기자 지원이 집중될 때는 경기실적 뿐만 아니라 내신·출결·면접 등이 반영된 종합적 선발기준으로 선발하도록 제안했고요.

장시간 훈련 관행, 불법 찬조금 등 문제가 발생한 학교운동부의 개선을 위해 훈련은 반드시 정규 수업 후에 실시하고 주중 훈련시간과 휴식시간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학교운동부 지도자에 대한 불법 찬조금 일절 금지, 위반 시 지도자 자격박탈 및 영구제명 조치, 학교운동부의 대회 참가와 전지훈련 비용 공개 의무화 등도 권고했습니다.

문경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류태호 위원.(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지목된 운동부의 합숙소를 전면 폐지하고 원거리 학생을 대상으로 기숙사만 제한적으로 허용할 것을 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학교운동부 지도자의 임금을 대부분 학부모가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들의 고용불안정 문제 개선을 위한 예산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고요.

일반학생의 ‘운동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도 권고에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츠클럽과 운동부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종목별 통합 대회 개최와 이를 위한 선수등록제도 개선, 학교스포츠클럽 리그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 인력자원 지원 등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하고 기존의 전국소년체육대회 초등부는 권역별 학생스포츠축전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한 권고안의 목표는요?

이분법적 구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학생선수와 일반학생, 둘로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죠.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정정당당·배려·협동·도전·희생·규칙준수 등 스포츠가 갖고 있는 가치들을 경험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스포츠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일상화시켜 늘 운동을 함께하고 평생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은 학교 교육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단순한 체육 교과의 개념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것으로 이어지죠. 감히 헌법적 차원의 기본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운동만 하는 선수에게 공부할 수 있게 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에게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자. 이것이 2차 권고안의 핵심이자 학교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교스포츠 정상화’ 권고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학교스포츠가 비정상적이다,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모두 다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선 스포츠인들 모두 자성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권고의 취지를 이해한다면 여러 스포츠 주체들 간에 공론화 장을 만들어 어떻게 하면 권고안의 세부내용을 보다 더 좋은 형태, 바람직한 형태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겠죠.  

가령 예를 들어, 주말에 대회를 하면 경기력이 약화되지 않겠냐는 걱정에 제가 하고싶은 말은 지금 이 제도를 해보지도 않고 성과, 손실 등을 계산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죠.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 주체들도 비판보다는 성과를 높이기 위한 건설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이행 방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권고안 세부내용의 도입시기나 방법 등은 각 부처의 철저한 조사·연구·의견청취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할거고요. 권고안은 견고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엮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권고안이 어떻게 구조적, 시스템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지 조금 더 진지하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단편적인 면만을 살피는 것은 현장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겁니다.

서울 한 초등학교의 체육대회에서 반 대항 계주 경기가 진행 중이다.(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여러 현장을 경험하며, 또 학생선수들과 함께 하며 이번 권고안에 대해 누구보다 생각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저 또한 학생선수였습니다. 소년체전 축구 동메달리스트였죠. 초등학교 때 수업이 다 끝나고 코치 선생님과 함께 하던 축구는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학생선수로서의 축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끝이 났으나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여전히 즐겁게 운동했고 그래서 대학에서도 체육을 전공했고요. 초등학교 시절의 경험이 지금까지 제 삶의 큰 동력이 됐다고 믿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오늘날의 저를 만든 셈이죠.

그때 저와 축구 같이하던 친구들의 지금의 모습? 스포츠에서의 성공가도를 가는 1%가 아닌 나머지 99%의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럴까. 그들은 또래들과 할 수 있는 삶의 경험들을 학습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관계, 소풍, 수학여행, 때로는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는 그런 학생으로서의 일상. 그런 경험들을 공유하지 않으면 단절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대학에 와서 만난 학생선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운동시간을 확보하고, 대회에 출전하고 그러면서 학생으로서의 일상이 사라졌죠. 그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학생선수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배움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말이죠.

실제로 학생선수들을 가르쳐 보니 기회가 주어지고 맞는 수준에서의 사회·교육적 행위가 오간다면 학생선수의 학업 잠재력은 일반학생보다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욱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권고안 발표가 마무리 됐습니다. 앞으로 혁신위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각 부처가 이행계획을 보다 촘촘히 짤 수 있게 과정들을 점검할 계획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각 부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또 다양한 체육주체, 이해집단들간의 의사소통 과정이 권고안의 취지에 맞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서로 간의 소통이 이뤄지면서 권고안의 정신이 현장에서의 실천에 잘 녹아나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혼란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혁신에 혼란은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류태호 위원이 ‘학교스포츠 정상화’와 관련한 본인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보는 스포츠에서 벗어나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고 즐겼으면 합니다. 내가 스포츠의 주인이다, 나는 스포츠를 즐길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 연결선 상에서 국가 스포츠 정책에 있어서도 국민이 가장 큰 거버넌스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체육과 관련한 거버넌스가 많지 않습니다. 시민단체도 많지 않고요. 국민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스포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명 스포츠대회, 큰 국제대회, 여기서 이기고 메달따는 것에만 환호하지 말고 조금 더 냉정하게 스포츠를 바라보고, 즐기고, 스포츠 정책에 모니터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아마 ‘학교스포츠 정상화’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십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옛날에, 에전에 이런 때도 있었더라 얘기할 날이 반드시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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