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朝鮮칼럼 The Column] 정치는 살아있는 者를 위한 것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2019.06.29.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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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죽겠다"고 아우성친다
살게, 기왕이면 잘살게 하는 게 정치의 존재 이유인데..
그렇게 없애고 파괴한 다음 그 빈자리에 무얼 담으려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손님 한 명 없이 텅 빈 찻집에서 나이 든 여주인은 아예 작심을 했다. 옆집 식당은 손님이 얼마나 줄었고, 뒷집 찻집은 어떻게 가게를 접었는지 시시콜콜 되새김했다. 대개 폐업 스토리는 성공 창업기보다 훨씬 논리적이다. 성공에는 '비전'이나 '운' 같은 요소도 작용하지만, 실패에는 냉혹한 장부상 숫자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톨스토이라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성공한 가게에는 저마다 다양한 스토리가 있지만 망한 가게에는 단 하나의 스토리만 존재한다.'

이런 전설이 있다. 태초에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았는데, 서로 싸우고 죽이는 통에 인간 사회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걸 지켜본 제우스가 전령사 에르메스를 통해 묘안을 하나 내려보냈다. 그게 바로 '정치적 기술(arete politike)'이다. 신은 인간에게 대체로 한 가지 재주만 허락했지만 '정치적 기술'은 모두에게 주었다. 여기서 정치적 기술이란 말하고 설득하는 기술을 뜻했다. 그러자 인간 사회가 존속되었다고 한다.

정치란 살자고 하는 것이다. 혼자 살면 위험하니 여럿이 살고, 여럿이 살면 갈등이 따라오니 그걸 풀면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남고, 기왕이면 잘 살게 해 주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다. 죽은 사람의 사후 세계는 종교인이나 제사장에게 맡기고 정치인은 살아 숨 쉬는 현세의 인간에게 봉사해야 한다. 정치란 또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다. 반대파를 말살하고 자원을 독식하는 건 폭력이고 야만이다. 다른 것도 품고 함께 나누기 위해 필요한 게 정치다.

우리나라 정치가 갈등을 푸는 기술이 약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정치인지, 함께 살자는 정치인지 의문이 든다. 살아있는 국민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기보다 죽은 원혼을 더 챙기고, 산 사람이 죽지 않도록 예방하기보다 죽은 후 관리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사회를 '산 자(者)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들을 더 잘살게는 못할망정 국가의 생존과 명운이 달린 외교를 파탄 내고, 가공할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도 기이할 정도로 국방에 무덤덤하다. 미국과 중국의 압박 사이에서 생존을 염려하는 기업에 각자 알아서 하라며 뒷짐 진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통합해도 모자랄 판에 죽은 자들까지 차별하고 선별적으로 불러내어 편을 가른다. 살아있는 사람의 정부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정부라고 하기도 어렵다.

전몰 용사가 묻힌 미국 게티즈버그 묘지에 헌정한 연설에서 링컨 대통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를 말했다. 그때 '국민'은 '살아있는 국민'을 뜻했다. 주검이 묻힌 장소에서 그는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민주 정부와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속성을 기원했다. 위대한 지도자는 전장의 무덤에서도 지속 가능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지도자는 어떤가. 일상의 국무회의에서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라고 지시하고, 평화 시의 기념식장에서 죽은 자를 불러내 산 자들을 어지럽힌다. 죽은 자에게 기대어 그릇된 영광을 보려는 사람들을 지적하려 했다간 '독재자의 후예'가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연좌제도 폐지된 지 오랜데, '죽은' 사람과 짝을 지어 새로운 연좌제라도 시행하겠다는 말인가.

찻집 여주인은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 이런 인사말이 돈다고 했다. 그건 "죽지 말고 살아남으세요"란다. 산 자의 여유가 아직 묻어나는 그 주인은 "돈이 적게 벌리면 세금이라도 적게 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세금 낼 여력이 있는 살아있는 자들의 경제 정의론이다. 그렇게 거둬 간 세금을 갖고 일부 공복(公僕)은 자기편 사람들과 뭉텅이로 끌어다 쓰며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한때 죽어서 잊힌 사람들이 망령처럼 되살아나 활보하는 가운데 산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편의점엔 사람 대신 셀프 계산대가, 식당에는 자동 주문 기계가 늘어간다. 사라지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원전이 죽고, 자사고가 죽고,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민주화가 소멸되어 가고 있다. 지금 정부의 '미래 비전'을 확실하게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변변하게 창조하는 것도 없이 없애기에 급급한 지금 정부에 그렇게 죽이고 쓸어낸 빈자리에 무엇을 담으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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