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법정 증거로 톺아보기

2019. 6. 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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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속으로-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 집중탐구]
다음달 항소심 앞두고 '3년 6개월형' 1심 재판기록 분석해보니
①1심 유죄 이끈 '깨알메모'는 과연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일까
②'정정 전 정답'을 쓴 쌍둥이의 행동은 과연 의심스러운 걸까
③쌍둥이 아빠인 교무부장 현씨는 어떻게 시험지를 유출했을까
④풀이 과정이 부족한 물리1 문제.. 암산만으로 가능할까
서울 수서경찰서가 지난해 11월12일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며 공개한 쌍둥이 딸의 시험지 깨알메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해 8월 ‘강남 8학군’발 지진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른바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 교무부장이 정기고사 문제를 유출해 쌍둥이 딸들을 동시에 전교 1등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은 충격적이었다. 3개월 가까운 수사가 이어졌다. 교무부장이 금고에서 시험지를 꺼냈거나 이를 딸에게 전달한 직접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여럿 있다며 교무부장을 구속 기소했다.

파문이 일면서 제도도 바뀌었다.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은 “자녀가 속한 학년의 정기고사 문항 출제 및 검토, 결재, 인쇄 등 성적 관련 업무에서 해당 교직원을 배제”하도록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 매뉴얼’을 개정했다. 지난 3월부터는 부모 교사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상피제’가 도입됐다.

지난 5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아무개(52)씨의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존재한다”며 현씨에게 징역 3년6개월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현씨와 두 딸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서도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현씨의 검찰·변호인 의견서 등 각종 재판 관련 자료를 입수해 이 사건을 촘촘하게 되짚어 봤다. 그동안 현씨의 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졌지만, 반론 등이 보도된 적이 없는 점을 고려해 현씨 쪽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다. 특히 수사기관과 1심 법원이 문제 유출로 핵심 증거로 판단했던 ‘깨알메모’와 ‘정정 전 정답’에 대한 의문에 대해 주로 다뤘다. 다만 핵심증거에 대한 의문들이 현씨의 결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여러 보도를 통해 밝혀졌듯이 이 사건에는 문제 유출로 의심할만한 정황 역시 다수다. <한겨레>는 1심 판결문과 각종 재판 자료를 토대로 항소심 재판에서 쟁점이 될 사안들을 미리 살펴봤다. 항소심 재판은 다음달 12일 시작한다.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딸에게 시험답안을 유출한 혐의(업무방해)로 구속 기소된 현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판사는 “어떻게 정답이 유출됐는지 전말이 파악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출을 입증할)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증거 중 핵심이 바로 ‘깨알메모’였다. 깨알메모는 쌍둥이 딸이 시험지에 적어둔 답안을 일컫는다. 경찰과 검찰은 쌍둥이 딸이 ‘미리 외운 객관식 정답을 잊어버리기 전 시험지에 옮겨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하나가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의 주장이 맞다면, 실제로 쌍둥이 딸이 깨알메모에 적은 대로 답안을 써서 정답을 맞혀야 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쌍둥이 딸이 적은 깨알메모는 실제 정답과 달랐다.

경찰이 지난해 11월12일 오전 서울 강남 수서경찰서에서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의 수사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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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과목 중 깨알메모는 6개뿐

차분히 하나씩 살펴보자. 법원이 유출됐다고 본 문제는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운동과 건강’ 과목과 2017년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2개 학기 4번의 정기고사 전 과목이다. 시험 과목은 큰딸이 모두 34과목, 작은딸은 모두 36과목이었다. 이 가운데 깨알메모가 발견된 시험지는 큰딸 4과목(지구과학·가정과학·영어독해·일본어1), 작은딸 2과목(운동과 건강·물리1)으로 6개뿐이다. 이 6과목은 문제 출제 이후 정답이 정정된 적이 없다. 만약 유출된 정답이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최종 정답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쌍둥이 딸이 적은 깨알메모가 실제 정답과 달랐다는 점은 이 깨알메모가 유출된 정답이 맞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면 쌍둥이 딸은 이 깨알메모에 대해 뭐라고 항변하고 있을까. 큰딸은 시험이 끝난 뒤 반장이 불러 준 정답을 깨알메모로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큰딸이 1학년 2학기 때 치른 ‘영어독해와 작문’ 시험지에 잘못된 정답을 깨알메모로 적었다는 점이다. 이 과목 깨알메모에는 2번과 3번 문제의 답안이 ①, ⑤라고 적혀있다. 실제 정답은 순서가 뒤바뀐 ⑤, ①이었다. 깨알메모가 정답을 외워 미리 적어 놓은 것이라면, 큰딸은 2번과 3번 문제를 틀렸어야 한다. 하지만 큰딸은 두 문제를 모두 맞혔다. 어찌 된 일일까. 큰딸은 이에 대해 ‘미처 받아쓸 준비를 하기 전에 반장이 부른 정답을 적다가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목 4번 문제의 경우도 큰딸의 주장과 일치한다. 4번은 2개의 정답을 고르는 문제인데, 큰딸이 적은 깨알메모에는 답안이 ④, 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실제 정답은 ②, ④였다. 이는 반장이 불러준 정답과 실제 정답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큰딸은 시험 직후인 2017년 9월28일 10시35분께 아버지 현씨에게 “(반장이 부른) 듣기문제 답지에 오류 있던데 4, 5가 아니라 2, 4가 맞을 걸요. 애들도 다 그랬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 메시지대로 큰딸은 이 문제도 실제 정답을 적어 맞혔다. 깨알메모가 미리 유출된 정답이었다면 큰딸은 틀린 답을 적었어야 했고, 깨알메모에도 ④, ⑤가 아니라 ②, ④가 적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시험 직후 아버지에게 저런 문자 메시지를 보낼 까닭도 없었을 것이다.

‘유출된 정답’이라는 깨알메모가 큰딸이 실제 작성한 답안과 다른 경우도 있었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과목인 ‘가정과학’ 시험 깨알메모에서 큰딸은 1번 문제 답을 ③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엠아르(OMR) 카드에는 ④번이라고 써서 이 문제를 틀렸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큰딸은 버젓이 유출된 정답을 적어 놓고도 일부러 1번 문제를 틀린 것이 된다. 성적 향상을 위해 아버지를 통해 모범답안까지 유출한 학생이 맞힐 수 있는 문제를 일부러 틀린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만약 나중에 드러날 것이 두렵거나 혹은 완벽한 연극을 위해 일부러 틀린 답안을 낸 것이라면, 왜 유독 이 문제에서만 그 의도를 드러냈을까.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가정과학’ 과목 깨알메모에는 16~28번에 해당하는 정답이 적혀있지 않았다. 물론 뒷부분의 정답을 미처 외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장이 불러 주는 정답을 적다가 말았을 가능성도 여전하다. 게다가 큰딸은 깨알메모가 없는 16~28번 문제를 모두 맞혔다. 1학년 2학기 ‘지구과학’ 과목 깨알메모에도 1~10번, 27~28번 문제에 해당하는 정답이 적혀있지 않았다. 큰딸은 이 과목에서 100점을 맞았다. 깨알메모를 문제 유출의 핵심증거로 보는 것이 맞는 지 의심을 더하는 대목이다.

작은딸은 깨알메모를 쓴 이유가 큰딸과 달랐다. 그는 ‘정답의 분포를 보기 위해’ 깨알메모를 썼다고 주장한다. 시험을 치르는 도중 잘 모르는 문제가 나와서, 전체 정답 가운데 몇번이 많고 몇번이 적은 지 분포를 살펴 정답을 ‘찍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은딸의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운동과 건강’ 시험지에 적힌 깨알메모에는 7번 문제의 답이 ④라고 적혀있다. 작은딸의 오엠아르 카드에도 해당 문제의 정답은 ④라고 표기됐다. 하지만 이 문제의 실제 정답은 ②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사실관계를 보고도 작은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장을 입증할 표본이 적어서일까. 법원은 판결문에서 “많은 유출 답안을 외우면서 일부 답안을 잘못 외웠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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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전 정답’은 핵심 증거인가

다음은 ‘정정 전 정답’을 탐구해볼 차례다. 정정 전 정답은 숙명여고에서 정기고사 직후 출제 오류 등으로 정답을 정정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개념이다. 법원은 정답이 정정될 줄 몰랐던 쌍둥이가 정정 전 정답을 그대로 외워서 쓰는 바람에 정답을 맞히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면서 이를 문제 유출의 두 번째 유력한 증거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대표적 사례로 꼽은 것은 두 딸이 자연계와 인문계로 나뉘기 전 치렀던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2의 객관식 8번 문제다. 쌍둥이는 정정 전에는 정답이었지만, 정정 후 오답이 된 ③번을 선택해 둘 다 95.7점을 받았다. 하지만 쌍둥이가 정정 전 정답을 써서 같은 문제를 틀린 건 이 한 문제뿐이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쌍둥이가 (해당 과목에서) 똑같은 문제 한 문제만을 틀렸고, 그 결과 똑같은 성적이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그 똑같은 문제는 쌍둥이 딸들이 ‘정정 전 정답’을 기재했던 문제”라는 점을 부각했다. 과연 그럴까. <한겨레>가 입수한 자료를 살펴보면, 쌍둥이가 선택한 오답 ③번은 시험에 응시한 학생 10명 가운데 7명(70.46%·322명)이 선택한 ‘함정’이었다.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힌 학생은 19.26%뿐이다.

수학2 문제(각각 1문제씩 2문제)를 포함해 쌍둥이가 정정 전 정답을 쓴 경우는 큰딸이 4문제, 작은딸이 7문제로 모두 11문제다. 하지만 이 가운데 5문제는 학교 쪽이 모든 보기를 정답 처리했거나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정정 전 정답을 썼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문제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쌍둥이가 정정 전 정답을 써서 틀린 문제는 둘이 합쳐서 6문제뿐이다. 쌍둥이가 치른 70과목의 객관식 문제 수는 과목별로 20개~28개 남짓이다. 평균을 25문제로 치면 약 1700여 문제 가운데 단 6문제, 즉 0.3% 정도만 의심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6문제에서 쌍둥이가 선택한 답안은 대부분 2번째로 많은 학생이 선택한 보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정 전 정답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는 동안 드러나지 않은 사실도 있다. 쌍둥이가 정정 후 정답을 맞힌 사례도 3차례 있었다는 사실이다. 법원이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2의 객관식 8번 문제에 정정 전 정답을 쓴 사실을 공교롭게 봤다면, 정정 후 정답을 맞힌 3차례도 공교롭게 봤어야 했던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법원은 판결을 내리며 이같은 사실관계는 배제했다.

진점옥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해 11월12일 오전 서울 강남 수서경찰서에서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의 수사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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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는 어떻게 유출됐나?

깨알메모와 정정 전 정답과 같은 문제 내용에 대한 의문은 일단 여기까지다. 다음으로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시험지가 어떻게 유출됐다고 판단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쌍둥이의 시험지에서 드러난 깨알메모와 정정 전 정답을 의심스러운 정황으로 제시했는데, 교무부장이었던 아버지의 시험문제 접근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황 증거만으로 판단했다.

숙명여고의 정기고사 출제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각 교과 담당교사가 문제를 출제하고 검토하면, 편집담당 교사가 출제 원안과 서술형 답안지(시험용), 객관식 및 서술형 이원목적분류표(난이도, 배점, 정답 기재) 각 1부, 객관식 정답을 표기한 오엠아르 카드, 모범답안 발표지(시험 종료 뒤 발표용)를 작성해 교과주임의 결재를 받아 해당 학년 고사계 담당 교사에게 제출한다. 각 학년 고사계 담당은 이를 검토한 뒤 고사계 총괄교사에게 넘긴다. 총괄교사가 한 번 더 검토한 자료는 교무부장과 교감의 결재를 받는다. 그 뒤 출제 원안과 서술형 답안지는 인쇄실에 넘겨 문제지 인쇄를 의뢰하고 이원목적분류표, 오엠아르 정답 카드, 모범답안 발표지는 금고에 보관한다.

결국 현씨가 시험지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은 총괄교사가 교무부장에게 결재를 받을 때와 모범답안 발표지 등이 금고에 있을 때다. 검찰은 고사계 총괄교사가 교무부장인 현씨에게 시험지 결재를 맡기고 수업에 들어간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 경우 최대 50분 동안 문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때 문제 유출이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험지 결재 때는 주변에 다른 교사들이 함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복사나 촬영, 필사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유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시험 직전 있었던 현씨의 야근과 주말 근무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의 경우 현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인 2017년 12월2일과 3일에 출근해 시험지 문제를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당시 숙명여고에서는 해당 과목 시험 실시 4일 전(휴일 제외)에 각종 고사 자료를 취합하고 이 가운데 이원목적 분류표, 오엠아르 정답 카드, 모범답안을 금고에 보관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시험 첫날인 12월7일 치러지는 수학2 답안은 휴일인 2일과 3일이 끼어 있기 때문에 4일 전 기한을 따져 12월1일이 제출일이었다. 둘째 날인 12월8일 치러지는 국어2와 가정과학 답안은 4일 전 기한을 따질 때 휴일이 없기 때문에 12월4일이 제출일이었다. 정기고사 시험지와 답안의 경우 제출일 이후에 제출되는 경우는 있어도 미리 취합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숙명여고 교사들은 현씨의 변호인 쪽에 수학2 마저도 12월1일에 제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현씨가 12월2~3일 학교에 출근했을 때에는 12월1일이 제출 예정일이었던 수학2 답안 정도만 금고에 보관되어 있거나 아무 답안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앞서 설명한 ‘정정 전 정답’ 관련 의혹으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현씨와 쌍둥이 딸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수학2의 경우 쌍둥이가 함께 정정 전 정답을 써서 틀린 유일한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수학2 시험지가 유출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제출일이 12월4일 이후여서 현씨가 주말근무를 했던 12월2일과 3일 제출됐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씨가 유출했을 가능성 역시 거의 없는 마지막 날 시험과목(한국지리, 운동과 건강, 음악과 생활)까지 포함한 전 과목 시험지가 유출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에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문제가 모두 유출된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쌍둥이의 시험성적이 급격하게 향상된 것이 바로 2017년, 1학년 2학기이기 때문이다. 1학년 2학기 때 큰딸은 직전 학기 121등에서 전교 5등으로, 작은딸은 59등에서 2등으로 성적이 급등했다. 이러한 성적 상승이 문제 유출 덕분이라면, 1~2과목이 아닌 전 과목이 유출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 유출로 성적이 급격하게 향상됐다’는 현씨와 쌍둥이 딸의 혐의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 유출 여부는 이번 사건의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분기점이라는 얘기다. 현씨의 주말근무 당시에는 수학2 과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험과목 답안이 취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무척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면밀하게 내려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정기고사 시작일인 2017. 12.7일을 4~5일 정도 앞둔 주말인 위 각 일자(현씨가 주말근무한 12월2일과 3일)에는 출제서류가 대체로 수합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만 적혀있고, 수사기관과 법원이 당시까지 출제서류가 제대로 취합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또 다른 시기를 살펴보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답안 유출이 있었다고 지목된 지난해 4월20일 현씨는 초과근무 신청을 하지 않고 야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현씨는 교무실에 다른 교사인 ㄱ씨의 컴퓨터가 켜져 있어서 문을 잠그고 나갈 수가 없어 남교사 휴게실에 ㄱ씨가 있는지 찾는 등 ㄱ씨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현씨의 행동이 시험지를 유출하기 위해 교무실 주변에 다른 교사가 없는지 살핀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사도 판결문에서 “교무실 문을 시정하고(잠그고) 퇴근할지 고민이 되었던 상황이었다고 하면 곧바로 남교사 휴게실 내실까지 들어가서 ㄱ씨를 찾아본다거나 ㄱ씨가 있을 수 있는 내실 안까지 들리게 ㄱ씨를 불러 본다거나 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할 것인데, (시시티브이를 보면) 현씨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교무실에 혼자 돌아와야 했던 사람처럼 ㄱ씨를 잠시 찾아본 뒤 퇴근하던 발걸음을 돌려 교무실로 돌아왔고 그곳에 혼자 있었다”고 적고 있다. 법원도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실관계도 있다. 현씨가 이날 오후 7시37분께 ㄱ씨에게 전화를 건 통화 기록이다. 이후 ㄱ씨가 실제로 교무실에 오는 장면도 시시티브이에 찍혀 있다. 또 법원이 현씨가 당시 혼자 교무실에 있었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ㄱ씨 역시 이날 야근을 했다. 다만 쟁점이 되는 것은 이날 현씨가 몇시에 퇴근했는지다. 변호인 쪽은 현씨가 ㄱ씨가 교무실에 온 직후 퇴근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현씨가 그 뒤로도 계속 남아 이날 밤 10시까지 야근하며 시험지를 유출했다고 보고 있다.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지점이다. 이 부분은 항소심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4일 저녁 학교 앞에서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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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정황 있지만…

현씨는 쌍둥이의 시험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교무부장이고, 두 딸 모두 급격히 성적이 올랐다. 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작은딸이 의심을 살만한 정황도 있다. 검찰은 작은딸이 지난해 있었던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고득점(94.6점)을 얻은 물리1 시험지에 풀이 과정을 부족하게 적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이 문제를 낸 출제 교사는 법정에서 물리1의 경우 7·8·19·20번 문항은 암산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진술했다. 시험을 치를 때 적을 수 있는 종이는 시험지와 오엠아르 카드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위해선 시험지에 풀이 과정을 적으면서 풀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변호인이 의견을 받은 다른 학교 물리 교사 2명은 이 출제 교사와 의견이 달랐다. 이들은 물리1의 ‘8번 문제를 제외하면 암산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또 다른 의혹도 있다. 작은딸은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화학1 과목의 서술형 1-(2) 문제에서 이과생 218명 가운데 유일하게 정정 전 정답인 ‘10:11’이라는 답안을 써서 제출했다.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 문제이기 때문에 하필 정정 전 정답을 홀로 적어냈다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강하게 갈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검찰은 영어 주관식 문제의 특정 구문 답안 1개가 작은딸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과 서술형 문제 일부 답안이 모범답안과 매우 유사한 점 등도 문제유출의 증거라고 보고 있다. 더불어 쌍둥이가 학교에서 치르는 정기고사 성적에 견줘 외부 기관 시험인 모의고사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은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현씨의 집 거실 컴퓨터와 딸의 노트북이 폐기된 것이 증거인멸 의혹을 불러오기도 했다.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현씨는 지난해 8월25일 일체형 컴퓨터를 구입해 딸의 방에 새로 설치했다. 또 같은달 30일에는 새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면서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바꿨다. 이렇게 컴퓨터를 바꾸는 과정에서 현씨는 과거 컴퓨터들을 폐기했다. 그는 실제 검찰 조사에서 ‘딸의 노트북은 학교에서 하드디스크를 분리해 버렸고 거실에서 사용하던 컴퓨터는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렸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검찰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숙명여고를 특별감사(지난해 8월16~22일)한 뒤 현씨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을 증거인멸 목적이라고 봤다. 이와 관련해 현씨의 변호인은 “일체형 컴퓨터를 새로 산 것은 딸들이 학교나 학원 등에서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인터넷 강의라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폐기된) 딸의 과거 노트북은 작동이 제대로 안 돼 이 사건이 이슈가 되기 전에 폐기한 것으로 안다. 게다가 거실용 컴퓨터 자료는 새 컴퓨터에 백업되어있다. 무엇보다 유출된 답안들이 현씨의 집 컴퓨터로 옮겨졌다고 판단할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으며 2년 이상 사용했던 현씨와 딸의 모든 휴대전화는 수사기관이 다 압수해 분석했다”고 말했다. 현씨의 집에 파쇄기가 있다는 점도 증거인멸의 의심을 더하게 했다. 다만 현씨 쪽은 이 파쇄기가 쌍둥이 딸이 태어날 무렵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증거인멸을 하려고 했다면 검·경이 핵심증거로 삼고 있는 시험지 등부터 없앴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각각의 유리하고 불리한 정황들이 1심 판결문에 나오듯 “(쌍둥이가) 유출 답안을 암기한 다음 기억나는 한도에서 이를 활용하여 해당 정기고사에 응시한 것이라는 사실 전부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 다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1심 판결문에서 “(쌍둥이가) 정기고사 시행 과정에서 매번 깨알정답, 정정 전 정답 등의 (문제 유출이) 명확한 증거를 남겼다”고 적힌 대목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허점이 많아 보여 항소심 결과가 주목된다.

물론 깨알메모와 정정 전 정답, 1학년 2학기 현씨의 주말근무일 당시 취합된 답안 등의 의문점이 해소된다고 해도 현씨가 문제 유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주로 의심하고 있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현씨의 결백을 증명하기 어려운 만큼 유죄를 입증하는 것 역시 어려운 사건이다. 문제 유출의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입증 책임을 가지는 것은 피고인 현씨가 아니라 검사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도 고려해야 한다. 현씨의 판결문을 살펴본 한 현직 판사는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판결문을 꼼꼼하게 써야 하는 사건이다. 기록을 모두 살피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그만큼 유죄 입증이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다. 항소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선담은 정환봉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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