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 옆에도 있던 총..생닭 한마리 값 AK-47의 비밀

이철재 2019. 6.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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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민족해방'과 공산화' 두 얼굴
탄생 70년 맞은 AK-47 소총
냉전 때 테트리스와 함께
물심양면으로 서구 저격
닭 한마리 가격에 구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총
미군 M16과 라이벌 승자는?

20세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과 소련이 주도한 동구권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냉전은 결국 서구권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소련은 두 가지의 무기로 서구권을 크게 위협한 적이 있었다. 서구권을 물심양면으로 저격한 이 무기들은 공교롭게도 6월에 첫선을 보였다. 바로 게임 ‘테트리스’와 자동소총 ‘AK-47’이다.

2013년 6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를 덮친 무장괴한들은 AK 소총으로 등반가 11명을 사살했다. 이처럼 AK-47과 그 후예들은 게릴라뿐만 아니라 범죄좌의 무기로 쓰였다. [중앙포토]

테트리스(Те́трис)는 냉전의 끝자락인 1984년 6월 6일 소비에트 과학원 컴퓨터 센터에 근무하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가 만들었다. 6월로 35살이다.
테트리스의 개발자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트. [사진 위키피디아]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Tetromino)’를 움직여 수평선을 빈틈없이 채워야 한다. 수평선은 완성 후 없어지며, 공간이 남을 경우 수평선이 계속 쌓인다. 수평선이 꼭대기에 닿으면 게임 오버다. 숫자 4를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 테트라(Tetra)에 파지트노프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Tennis)를 붙여 ‘테트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련제 PC인 일렉트로니카 60에서 구동 중인 테트리스. 그래픽이 아닌 텍스트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Tetris Wiki]

모노크롬(단색) 모니터에 텍스트(글자)로 진행되는 테트리스는 단순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다. 맨 처음 소련산 PC인 일렉트로니카 60에서 돌아간 테트리스는 이후 모든 종류의 컴퓨터와 게임기에서도 가동됐다. 또 전자계산기ㆍ전자수첩 등 다양한 전자기기로 영역을 넓혔다. 미국의 MIT 공대에선 빌딩 창문에 특수 디스플레이를 붙인 뒤 테트리스를 즐겼다. 기네스북에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Most Ported Video Game)’으로 등재됐다.
2012년 미국 MIT 연구진들이 빌딩 벽면을 스크린으로 삼아 테트리스를 즐기고 있다. [사진 MIT]

소련산 테트리스를 하느라 서구권 노동자들이 일을 게을리한다며 이 게임을 '소련의 비밀 첩보원'이라 부르는 농담도 돌았다. AP 통신은 1990년 6월 ‘소련의 게임이 자유 세계를 정복한다(Soviet Game Conquers the Free Market)’고 보도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총 AK-47

또 다른 6월생 소련 무기인 AK-47의 AK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자동 소총)(Автомат Калашникова)의 줄임말이다. 칼라시니코프는 소련 중부의 이젭스크 병기공장에서 총기 설계자였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말한다.

AK-47. [사진 위키피디아]

AK-47의 생일은 두 개다. AK-47은 1947년 7월 6일 첫 제품이 생산됐다. 그리고 49년 6월 18일 소련 각료회의 2611-1033 결정에 따라 육군과 해군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됐다. 출생은 47년, 출생신고는 49년인 셈이다. 러시아에선 지난 18일 AK-47의 70주년을 기념했다.

AK-47의 누적 생산량 750만정이다. AK-47을 개량한 AKM, AK-74, AK-100 시리즈를 합하면 1억정이 넘는다. 기네스북은 AK-47을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기관총(world's most common machine gun)’으로 꼽았다. 워낙 전 세계에 많이 깔렸다가 보니 지구상 소총 5~6정 중 하나는 AK 계열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70살이 돼도 아직도 현역이다.


AK-47을 ‘치킨 건‘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소련은 동구권에 AK-47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타도 제국주의 전선에 나섰던 아랍ㆍ아프리카ㆍ아시아 등의 제3세계와 반미를 외쳤던 중남미의 게릴라 손에도 AK-47이 쥐어졌다. AK-47과 휴대용 대전차 무기인 RPG, 기관총인 PKM는 게릴라의 상징이다. 모두 소련제 무기다.

아프리카 소년병을 다룬 기사. AK-47은 소년이라도 쉽게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제3세계 게릴라나 테러리스트들이 많이 쓴다. [Accord 캡처]

시에라리온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 내전에 강제로 동원된 소년ㆍ소녀병은 자기 키에 절반 정도인 AK-47을 메고 다닌다. 9ㆍ11테러의 주범이자 알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이 2011년 5월 미국 특공대에게 사살됐을 때 그의 곁에는 AK-47이 있었다.

소련이 마구 퍼준 탓도 있지만, AK-47이 명품이기 때문에 그토록 많이들 찾는 것이다. AK-47는 조작이 간단하다. 총을 한 번 쏘지 않은 사람도 1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사격할 수 있다. 고장도 적다. 먼지나 화약 찌꺼기가 약실에 남아 있어도 탄환이 잘 걸리지 않는다.

늪에 파묻힌 AK-47을 꺼내 진흙을 털어낸 뒤 사격해도 이상이 없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군사잡지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AK-47에 대한 전설이 많다. 천하의 AK-47이라도 진흙 속에 바로 꺼내 쏘면 총알이 안 나갈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AK-47이 세상에서 가장 고장이 적은 소총은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1998년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연설 중인 비디오 화면. 그의 옆에 AK-47이 놓여 있다. [AP=연합]

무게는 4.3㎏으로 무거운 편이다. 반동이 세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값이 싸다는 장점이 무겁고 반동이 세다는 약점을 덮고도 한참이 남는다. 포브스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선 1정에 600 달러, 이라크에선 700 달러에 팔린다. UN은 2011년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AK-47 1정은 6 달러에 거래되거나 생닭 한 마리 또는 곡식 포대와 맞바꿀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AK-47을 ‘치킨 건(Chicken Gun)‘이라고 부른다.


중졸 출신의 천재 엔지니어 칼라시니코프

AK-47을 설계하고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2013년 12월 23일(현지시간) 이젭스크의 병원에서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러시아를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이고리 쿠르차토프, 우주 개발의 수장인 세르게이 코룔로프와 함께 소련의 3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생전 AK-47을 들고 있는 미하일 칼리시니코프. [AP=연합]

칼라시니코프는 1919년 11월 10일 우랄산맥 인근 알타이 지역의 큐라 마을에서 18형제 중 8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옮겨가 기관차 정비 기술자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회중시계를 뜯고 재조립하다 들켜 혼났을 정도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였다.

38년 입대한 칼라시니코프는 41년 독소전이 일어났을 때 T-34 전차 지휘관을 맡고 있었다. 41년 10월 브리얀스크 전투에서 다쳐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능이 뛰어난 자동 소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MP-38이나 MP-41과 같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에게 소련군이 당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미하일 칼리시니코프 기념 우표. [사진 위키피디어]

칼라시니코프는 총기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개발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서 병원 간호사에게 노트와 연필을 빌려 기관단총 설계도를 그렸다. 이듬해 4월 퇴원한 그는 원래 일하던 알마티 기관차 정비소로 되돌아간 뒤 설계도를 바탕으로 기관단총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의 가능성을 발견한 공산당 서기의 도움으로 총기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됐다. 43년 소련군 무기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중학교 졸업장만 가진 유일한 회원이었다.


한국과 이스라엘에도 영향

소련은 바르샤바조약 회원국과 북한ㆍ중국 등 24개 나라에 AK-47의 라이선스 생산을 줬다. 북한은 58년 ‘58식 보총’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불법복제 AK-47이 전 세계로 흘러 들어가 운용 국가가 108개국으로 꼽힌다. 한국과 미국도 적성무기 연구용으로 AK-47을 몰래 수입했다.

이스라엘제 갈릴 소총으로 무장한 에스토니아 육군 병사. [사진 wikia.org]

한국 육군의 제식 소총인 K2도 AK-47의 유전자를 일부 지니고 있다. K2의 총열은 AK-47과 많이 닮았다. 오염 물질로부터 안정성이 뛰어난 롱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은 AK-47에서 따왔다. 한때 이스라엘 육군이 제식 소총으로 썼던 갈릴 소총은 핀란드의 Rk 62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Rk 62는 AK-47의 변형 중 하나다.

AK-47은 이후 AK-47의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을 살짝 바꾼 AKM, 분대지원 경기관총인 RPK-74, 5.45㎜ 탄약을 쓰는 AK-74, 90년대 이후 업그레이드한 AK 100 시리즈(AK-101~AK-109) 등 후계자가 계속 이어졌다. 러시아 육군은 최신형 AK 계열인 AK-12를 제식 소총의 하나로 채택했다.

미국의 총기 제조사인 라이플다이내믹스의 AK-47 개조형 RD 701. [사진 라이플다이내믹스]

미국에서도 AK 계열이 인기가 있다. 수많은 총기 제조사들이 AK-47 민수용 버전을 내놓았다. 라이플다이내믹스의 RD 701이 그중 하나다. 이 총은 개머리판을 접철식으로 바꾸고, 피카티니 레일을 달았다. 뉴욕타임스는 2012년 AK-47의 제조사인 이즈마쉬(ИЖМАШ)의 생산량 70%는 민수용이며, 이 가운데 40%가 미국으로 수출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러시아 군ㆍ경과 비슷한 물량의 AK 계열 소총을 산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올 2월 선 보인 칼리시니코프의 자폭형 드론. [사진 칼리시니코프]

이즈마쉬는 회사 이름을 칼라시니코프 콘체른(Концерн Калашникова)으로 개명했다. 칼라시니코프는 올 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IDEX에서 자폭형 드론을 선보였다. 이제 총기 제조사에서 종합 방산업체로 변신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돈 방석에 앉지 못한 칼라시니코프

AK-47은 초대박 상품인데 정작 이 총을 만든 칼라시니코프는 돈방석에 앉았을까. 그렇지 못했다. 소련은 혁명을 수출하기 위해 AK-47을 값싸게 뿌렸다. 불법복제도 많았다. 그가 제대로 벌었다면 최소 2000만 달러(약 213억원)는 거뒀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1990년 미국을 방문한 AK-47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왼쪽)와 M16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가 상대의 총을 들며 웃고 있다. [사진 칼라시니코프 박물관]

냉전 시대 칼라시니코프의 존재 자체는 소련의 국가기밀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스크바 동쪽 1000㎞의 군사산업 도시인 이젭스크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평범하게 살았다. 반면 M16을 만든 미국의 유진 스토너는 100개 이상의 특허로 돈을 벌어 플로리다의 대저택에 살았다. 스토너는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조종하길 좋아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안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냉전 당시 동구권의 주력 소총이 AK-47이었다면 서구권은 M16이었다. AK-47과 M16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제3세계에서 정부군의 소총이 M16이라면 반군은 AK-47을 썼다. 반대로 정부군이 AK-47을 쏘면 반군은 M16으로 맞섰다.

소련이 개방한 90년 칼라시니코프가 미국을 방문해 스토너를 처음 만났다. 당시 칼라시니코프는 스토너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칼리시니코프: 소련은 AK-47을 만든 공로를 인정해 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줬나? 스토너: 그런 건 없었다. 돈을 줬을 뿐이다.

칼라시니코프처럼 테트리스를 만든 파지트노프도 큰돈을 만지지 못했다.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의 AK-47이 당초 조국을 구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테러리스트ㆍ해적ㆍ마피아의 도구로 변하는 것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매년 전 세계 분쟁에서 2만에서 10만명이 총상으로 사망한다. 이 가운데 대다수가 AK-47이 원인이라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AK-47을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불렀다.

M16과 AK-47의 크기 비교. [자료 위키피디아]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각종 범죄자가 내 무기(AK-47)를 쏘는 걸 지켜보면 마음이 괴롭다. TV에서 내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무기가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린 장면이 나온다. 내가 산적이나 테레리스트에게 준 것은 아니다.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에 퍼진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가장 믿을만한 무기라고 생각한다고 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AK-47과 M16, 어떤 총이 더 좋을까

AK-47과 M16 가운데 어느 게 더 훌륭한 소총일까. 대한민국에서 이 두 소총을 직접 사격해 본 경험을 갖고 비교할만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특수지상작전 연구회 태상호 연구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AK-47과 M16 실사격 경험자다.

Q : AK-47이 반동이 세다는 평가가 있는데.
A : “AK-47 계열의 총기는 반동이 심하고, 명중률이 높지 않다고 잘못 알려졌다. 대부분 AK-47을 제대로 다뤄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AK-47의 반동은 물론 M16 계열보다 조금 세다. 그러나 숙달된 사수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Q : AK-47의 장점은 뭔가.
A : “AK-47을 다루면서 특유의 투박함이 느껴진다. 이 투박함은 믿음으로 변한다. AK-47은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총기는 아니다. 특히 조정간과 가늠쇠는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한번 익숙해지면 충분한 전투 총기의 역할을 해낸다.”
AK-47을 사격하는 미 해병대원. [사진 미 해병대]

Q : 명중률은 어떤가.
A : “명중률 역시 생각보다 뛰어나다. 300m 떨어진 표적을 맞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수의 능력에 따라서 그보다 먼 거리까지도 충분한 명중률을 낼 수 있다.”

Q : AK-47과 M16 중 하나만 고르라 한다면.
A : “휴대탄수는 M16보다 적지만(M16은 5.56㎜ 구경, AK-47은 7.62㎜ 구경을 각각 쓴다. 아무래도 크기가 작은 M16 탄약을 더 많이 갖고 다닐 수 있다는 뜻), 유지보수가 쉬운 AK-47을 고를 것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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