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文 덕분에 이런 진전"..다시 힘받는 文 중재자론

오수현 2019. 7.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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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파격회담 이끈 文대통령
文 "난 오늘 만남 초대받은 것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메이커"
미북정상에 주인공 자리 양보
트럼프 "DMZ 방문 文과 상의"
미북대화 과정 韓역할도 강조

◆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후 군사분계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판문점 = 이충우 기자]
외교 관례와 상식을 뒤엎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파격적 만남이 성사된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성사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미 정상 간 역사적 만남에서도 스포트라이트가 온전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집중되도록 하면서 자신의 중재역할을 오히려 감추는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형 외교 이벤트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대화 재개를 원하는 김 위원장의 속내를 간파한 노련한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평화적으로 많은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문 대통령 덕분"이라며 "북·미 대화에는 문 대통령도 긴밀히 관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만약 김 위원장이 제 제안을 거절했다면 제가 참 곤란할 뻔했다"고도 했다.

지난 29일 오전 트위터를 통한 자신의 깜짝 제안 후 32시간 만에 역사적인 판문점 미·북정상회담이 성사된 데는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날 남·북·미 정상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번 깜짝 만남은 사전 조율 없이 하루 만에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G20 회의 참석차 오사카를 방문 중이던 29일 오전 7시 51분 트위터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포함해 아주 중요한 몇몇 회담을 가진 후에 나는 일본을 떠나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으로 떠날 것"이라며 "그곳에 있는 동안 북한 김 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DMZ(비무장지대)에서 그를 만나 악수하고 인사(say Hello)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던진 '우호적 메시지'일 뿐 실제 북·미 정상의 만남이 성사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소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이날 오전 G20 회의장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내 트위터를 보셨습니까"라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네, 봤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함께 노력해 봅시다"라며 엄지를 세웠다.

문 대통령에게 사실상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후 국가정보원의 대북 라인이 본격 가동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도 "DMZ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날 경우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과 미국은 '미·북 판문점 회동' 준비 과정에서 긴밀히 소통하면서 '세기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대북라인이 발 빠르게 가동된 결과 미·북 간 실무조율이 29일 밤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북한 간의 대면 접촉은 29일 밤늦게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과 함께 헬기를 타고 직접 판문점으로 가서 북측 인사와 만나 경호와 동선 등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실상 29일 밤 미·북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됐지만, 문 대통령은 이후 철저하게 조연을 자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30일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저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받았다"며 이번 남·북·미 정상 만남의 주인공이 미·북 정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중심은 북·미 간의 대화"라며 "오늘은 북·미 간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고, 남북 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미군 장병들을 만나서도 "결단을 내려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화답하면서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 간 상봉 장면이 연출됐지만 이번 무대를 미·북 정상에게 양보한 문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극적인 만남이 불가능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실제 군사분계선 만남 때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함께 나설지도 관심사였지만, 문 대통령은 나서지 않으면서 미·북 정상이 조명을 받게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문 대통령이 등장해 3분가량 함께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은 최근 여러모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했고, 북측 매체들은 "미국과 직접 협상할 테니 남한은 빠지라"는 식의 비방보도를 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중심은 북·미 간의 대화이고 그것이 앞으로 북·미 대화로 이어져가는 과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남·북·미 3자 회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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