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해소 위해서라도 '이상적 노동자상'은 깨져야"
[경향신문] ㆍ성평등주간 맞아 방한 ‘한국의 여성과 노동’ 강연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ㆍ집안일을 여성몫으로 여기는 원인도 ‘이상적 노동자상’ 때문
ㆍ눈치 보지 않는 직장 만들고, 아버지의 육아휴직도 강제해야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일을 줄인 여성이 ‘불성실한 노동자’이지만 ‘훌륭한 어머니’라고 여겨진다면, 이에 반해 남성은 ‘불성실한 노동자’이자 ‘무능력한 남자’로 간주됩니다. 가족을 위해 일을 줄이는 남성은 조직에서 직위가 강등되거나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67)는 1일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더 많이 쓰도록 하려면 북유럽 국가처럼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일하는 삶과 법 센터’ 창립 소장이기도 한 윌리엄스는 여성, 노동, 계급 문제를 주로 연구해온 학자다.
성평등주간을 맞아 한국여성학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윌리엄스는 이날 한국여성학회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강에서 ‘한국의 여성과 노동: 해외의 교훈’을 주제로 강연했다.
윌리엄스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부담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쏠리는 근본 원인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노동자상’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믿는 젊은 남성들도 직장의 ‘남성성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신념에 맞는 행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직장 내에서 특히 다음 두 가지 규범이 한국 경제에도 장기적인 위협을 준다”며 ‘눈치’와 ‘회식’을 꼽았다. 업무시간 이후에도 끝없이 충성해야 하는 직장에서 남성은 가정의 일을 누군가에게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것은 여성에겐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윌리엄스는 설명한다.
어머니란 ‘자녀가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이상적인 노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사회의 불합리한 이상은 많은 어머니들을 직장에서 몰아냅니다. 많은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면서 고용주에게 ‘가족을 돌봐야 해서 떠난다’고 하지요. 하지만 일을 하고 싶은데도 그만두는 원인은 가족이 아니라 직장에 있습니다. 여성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계속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직장에 헌신하기 어려운 사람, 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전반적으로 미국과 한국에 공통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윌리엄스는 “최근 미국과 서유럽에서 남성들에게 ‘적극적인 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많은 전문직 남성 종사자들이 수개월의 육아휴직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들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엄마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차별을 받을 경우 고용주를 고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아휴직 때 임금 전체를 보전하는 방안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육아휴직을 쓴 노동자에게 6주 동안 임금의 55%를 제공하도록 하는데, 샌프란시스코는 고용주가 나머지 45%를 지불해 노동자가 임금의 100%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유급휴가법까지 2016년 통과시켰다.
“한국 정부는 총 700억달러를 출산장려에 쏟아부은 것으로 조사되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결국 오래 일하는 ‘이상적 노동자상’을 깨야 한다고 윌리엄스는 말한다.
“한국의 강력한 경제 엔진을 만들었던 관행들이 이제는 한국 경제를 위협, 저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것입니다. 더 적게 일해야 합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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