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22주년..사상 초유 입법회 점거
[경향신문] ㆍ시민 80만명 거리행진…일부 시위대, 유리벽 깨고 진입
ㆍ‘친정부’ 시위대와 충돌도…정부 “폭력 시위 엄중 처벌”
ㆍ영국 “반환 당시 조건 지켜라”…중국 “내정 간섭 말라”
홍콩 시민들이 1일 다시 거리로 나섰다.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 기념일을 맞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철폐와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 유리벽을 깨고 진입해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홍콩 정부를 지지하며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흔드는 애국 시위대까지 가세했다.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이 주도해 모인 수십만명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쯤 “악법(송환법) 철회” “캐리 람 사퇴” 등을 외치며 행진했다. 당초 빅토리아공원을 출발해 정부 청사와 입법회가 있는 애드미럴티까지 행진할 예정이었지만 종착지를 채터 로드로 변경했다. 검정 옷을 입고 나온 이들은 안전모와 우산 등으로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했다. 경찰은 민간인권전선 측에 거리행진 대신 빅토리아공원 내 집회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빅데이터 분석기관인 ASI는 이날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를 80만4000명 정도로 예측했다.
주로 젊은층으로 구성된 일부 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입법회 건물 인근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했다. 당초 이곳에서 정부의 주권 반환 기념행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철제 막대, 삽 등을 이용해 청사 외부 유리벽을 깼다. 오후 9시쯤부터 최소 수백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의사당을 점거했다. 1층 로비의 폐쇄회로(CC)TV, 빔 프로젝터 등 설비들이 파괴됐다. 입법회가 점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자, 입법회는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정부는 폭력 시위에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홍콩은 1997년 7월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됐다. 2003년 이후 홍콩에선 매년 주권반환일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려왔다. 올해는 송환법으로 촉발된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집회 규모가 예년보다 커졌다. 성난 민심에 놀란 홍콩 정부가 송환법 추진을 보류했지만 시위는 중국 정부와 람 행정장관에 대한 반대로 확대됐다. 지난달 30일 21세 여대생 뤄샤오옌이 ‘송환법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자’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면서 시위가 더욱 격화된 양상이다.
이번 시위는 홍콩 내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오후 3시 입법회 인근의 타마르 공원에서는 홍콩 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주로 중장년층인16만5000여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5만3000명)은 반대 시위대에 대해 “젊은 열정에서 나온 것인지 외국의 지시를 받아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은색 옷 시위’와 구분하기 위해 파란색 옷을 입은 이들은 “람 장관은 홍콩인들을 위해 일하는 대장부”라고 치켜세웠다.
홍콩 정부의 주권 반환 22주년 행사는 반대 시위 때문에 이례적으로 실내인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람 장관은 기념사에서 “최근 발생한 사건으로 대중과 정부가 갈등을 빚었다”며 “항상 대중의 감정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또 “정부 업무가 공동체의 의견과 감정에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달 18일 송환법 추진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 이후 약 2주 만이다.
영국 정부는 반환일에 맞춰 중국 당국이 홍콩 반환 당시 조건들을 준수하도록 계속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반환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조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에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영국은 홍콩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홍콩에 관한 사무는 완전히 중국 내정으로, 어떠한 국가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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