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처럼 화장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은밀한 시선'

이재은 기자 입력 2019. 7. 2. 07:38 수정 2019. 7.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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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적 대상화할 경우 아동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주고 성범죄 타겟될 소지있어 해외선 강력 규제
/사진=한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광고 영상 캡처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아동의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을 주고 아동이 성범죄의 타겟이 될 소지가 있어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한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광고가 '아동 성상품화'로 입길에 올랐다. 이 광고에는 2008년생 여자 아이가 짙은 화장을 하고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담겼다.

광고에서 "이런 여름은 처음이야"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아이의 립스틱 바른 입술이 클로즈업 된다. 어린이 모델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이 커지자 아이스크림 회사는 사과문을 올리고 문제의 광고를 중단했지만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사진=한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광고 영상 캡처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너무 예민하다'거나 '어떤 부분이 아동 성적 대상화냐'라는 반응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아이스크림 회사 역시 "광고영상 속 아동모델의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고객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해당 영상 노출을 중단했다"면서도 "광고 영상 촬영은 아동모델 부모의 참관 하에 일반적인 아동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을 했으며, 평소 모델로 활동했던 아동복 브랜드 의상을 착용한 상태로 이뤄졌다"고 항변했다.

◇아동 성적 대상화 광고, 해외에선 더 엄격한 잣대

하지만 해당 광고가 해외였다면 규제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한 아동 관련 전문가는 "내가 아는 바로는 이 아이스크림 광고 정도의 수준은 아동 성적 대상화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는 해외였더라면 송출 자체가 불가했을 내용"이라며 "아동을 성적 대상화 했다는 오해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건 아동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광고에서 아동을 조금이라도 성적 대상화할 경우 '잠재적'으로 아동을 '성적으로' 보는 걸 '촉발'할 수 있다고 보아 모두 규제한다.

다코다 패닝, 향수 '오, 롤라!' 광고사진


2011년 출시된 마크제이콥스의 향수 '오! 롤라'는 '성적으로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영국에서 금지됐다. 향수 모델 다코타 패닝은 당시 16살로 미성년자인데, 향수병을 자신의 '은밀 부위'에 살짝 갖다 대고 카메라로 시선을 돌려 마치 유혹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향수병 모양이나 뚜껑에 달린 붉은 장미꽃이 묘한 뉘앙스를 풍겨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롤라'는 아동을 성애화하는 소설 '롤리타'의 별칭이라 더욱 문제가 됐다. 이에 영국 광고자율심의기구는 이 광고를 '성적으로 자극적'이라며 금지했다.

같은 해 호주는 남성 의류 브랜드 '로저 데이비드' 광고를 금지했다. 호주 광고표준국은 10대 여성 모델의 입 속에 영국 국기가 있는데, 입에 무언가 물체를 넣은 건 모델의 의지에 반해 입을 막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불건전한 상상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해당 광고를 규제했다.

또 모델 어깨에는 바코드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성적으로 학대할 수 있는 '노예'를 떠올리게 해 문제가 됐다.

남성 의류 브랜드 '로저 데이비드' 광고 사진


로저 데이비드 측은 광고를 찍을 당시 모델이 18세였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호주 광고표준국은 모델의 실제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델이 18세 이하로 보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어린 여자의 이미지와 여성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이미지, 여성을 착취하는 것 같은 모습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가이드라인 부재… 꾸준한 '아동 성적 대상화' 논란

해외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강력하게 규제하는 건 아동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니세프는 홈페이지에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건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면서 이를 △여자 아이가 성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성적인 표정을 짓고 있거나 △노출된 의상 등을 입은 경우라고 명시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이 경우 남성 어른의 시각에서 여자아이를 바라보게 되며 여자 아이를 아이가 아닌 성욕을 풀 수 있는 대상물로 보게 하는데 이는 자칫 여자아이에 대한 성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 유니세프는 "전세계 15~19세 사이 1500만명 사춘기 소녀들은 성관계나 성행위를 강요당하고 있고, 미국에서 17세 이하 여아의 18%는 다른 청소년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다"면서 미디어에서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니세프는 미디어와 광고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여성성'을 부여하는 건 어린 여자아이들의 정신적·정서적·신체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외모에 과도하게 신경쓰게 되고, 날씬한 몸매에 대한 강박을 느끼게 되며, 자존감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도브 자존감 프로젝트'에 따르면 전세계 여자아이 중 11%만이 "나는 아름답다"고 느끼고, 60%는 "내 외모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상 생활이 어렵다"고 답했다. 미국 10살 여자 아이 중 81%는 살이 찌는 데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에 전세계는 유엔 국제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해 아동 모델의 성적 대상화를 강력 규제하고 있다. 국제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들이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교육이나 생존 및 발전을 위한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유엔 국제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아 지속적으로 이런 광고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아동 속옷 쇼핑몰 측이 홍보차 게시한 아동 속옷 착용 사진 /사진=인스타그램


지난 2월 한 유명 아동복 쇼핑몰은 '인형 같은 그녀랑 연애할까', '섹시 토끼의 오후', '그녀 클럽 뜨는 날' 등의 별칭을 여아용 의류에 붙여 판매했다. 이후 '연애', '섹시', '클럽' 등의 단어가 여아를 성적대상화 한다는 비난이 나오자 일부 의류의 명칭을 수정하고 해당 상품을 삭제했다.

이어 지난 3월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속옷 모델 관련하여 처벌규정과 촬영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현재까지 4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청원자는 "아동브라런닝사이트를 보다가 너무 황당해 글을 올렸다"며 "아동의 런닝을 홍보하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아동의 전신을 찍고 몸을 베베꼰 사진,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다리를 벌린 사진 등 성상품화 한 사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청원자는 "아동러닝을 홍보하는데 왜 아이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또 다리를 벌린 후 손으로 가린 사진을 홍보 상세컷에 넣어야 하나"고 되물었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아동은 연약하고,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줘야할 대상이지 아주 조금이라도 성적 대상화할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아동은 가치관을 막 형성하고 있는 존재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이런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면 아동을 '그루밍'할 소지가 생기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적 만족감을 얻으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해외국가들이 광고를 비롯 미디어에서 아동성적대상화 관련 규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련해서 엄격하게 처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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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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