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알, 앞발 잘린 곰.. 퓨마 사살 1년, 동물원은 아직도

이현정 입력 2019. 7. 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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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물원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오마이뉴스 글:이현정, 편집:김혜리]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나라의 수준이 보인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가장 홀대받기 쉬운 상태에 놓인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전반적인 윤리 수준을 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물원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동물들을 모아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하는 곳. 실제로 동물원에서 동물을 관리하는 모습은 동물원별로 판이하다. 

동물이 누려야 하는 다섯 가지 자유 정의 

파리 동물원에는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유리창과 철창, 관람객들이 동물을 잘 볼 수 있기 위해 만든 휑한 공간이 없다. 동물들은 넓은 공간을 자유로이 활보하고 사람들이 통유리로 된 전망대에 갇힌 채 동물들을 멀찍이 바라보는 구조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동물들을 보기 힘들 때도 많고, 보고 싶은 동물이 있을 때 반나절을 전망대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네덜란드 소재 아른헴 뷔르거 동물원 열대관도 파리 동물원의 사례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마치 열대우림을 관람객들이 탐방하는 것처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동물들을 찾아 발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유럽 연합은 동물들이 누려야 할 다섯 가지 자유를 정의해 동물 복지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동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에는 ▲기아·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가 속한다. 

동물 위령비 세운 대전 동물원의 노력
 
 내리쬐는 햇빛 아래 우리 안을 거니는 마라
ⓒ 이현정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 장소로 많은 사람이 찾는 대전 오월드 내 동물원을 6월 25일 방문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은 적었지만, 작열하는 태양과 높은 기온에 사람과 동물 모두 지치는 날이었다.

대전 동물원은 일반적으로 동물원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창이나 철창에 가두어진 동물들은 관람객들이 보기 쉽게 '전시'되어 있었다. 물개들은 동물원 측에서 받아준 물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부유물이 떠다니는 타일 바닥 수영장을 아무런 목적 없이 맴도는 물개들의 모습은 TV 속 자유로운 물개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원숭이들은 철창과 철창 사이의 좁고 길게 난 통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어 좁은 공간에 갇혀있지는 않았지만, 자연 속 우거진 수풀 사이를 날렵하게 활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뜨거운 태양에 힘없이 늘어져 넓은 빈 곳에서 잠을 자는 호랑이와 곰, 하이에나의 모습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자연을 호령하는 늠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늘진 곳에서 움직이지 않거나 관람객들이 지나다녀도 눈알만 굴릴 뿐이었다. 매와 독수리, 솔개 등의 맹금류도 다를 바 없었다. 미끄러지듯 창공을 가르다 땅 위의 먹이를 낚아채야만 할 것 같은 맹금류들은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면 끝인 좁은 창살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동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퓨마 탈출 사건 이후 건립된 동물 위령비
ⓒ 이현정
 지나다 보니 동물 위령비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동물 위령비는 대전 동물원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동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8년 9월 퓨마 탈출 사건 당시 퓨마가 사살된 후 세워졌다. 이 비석을 통해 동물들을 단지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한 대전 동물원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대전 동물원 퓨마 탈출 사건 후 남겨진 퓨마 한 마리는 여전히 정형 행동을 보였다. 정형 행동은 유리창 앞 등 좁은 공간을 아무런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주로 정신적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등을 경험한 동물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한참 동안 같은 장소를 맴도는 퓨마의 모습에서 불안함이 느껴졌다.
 
 

사파리도 철창 동물원과 다를 바 없어

사파리에서는 동물들이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 사파리 버스를 타고 처음 만난 동물은 곰이었다. 관람객들은 곰들의 개인기를 보며 즐거워했고, 사파리 버스 기사는 곰들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건빵 간식을 던져주었다. 그중 곰 한 마리는 우측 앞발이 없었는데, 사파리 기사에 따르면 곰들 사이의 싸움으로 없어졌다고 하였다.  
 
 대전동물원 사파리의 오른쪽 앞발이 없는 곰
ⓒ 이현정
   
이어서 만난 사자와 호랑이 등 포식자 동물들은 정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사파리 기사는 물을 쏘아 맹수들을 깨웠다. 차가운 물을 맞고 잠에서 깬 맹수들이 관람객 쪽을 멍하니 쳐다보자 관람객들은 초원의 최상위 포식자들을 본다는 신기함에 감탄하였다. 그 후 사파리 버스는 벽을 열고 초식 동물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기린 중 한 마리는 사파리 버스가 오기 전부터 갈 때까지 나뭇잎 하나 안 남은 나뭇가지를 아무런 의미 없이 핥고 있었고, 코끼리는 빈 모래판에 홀로 서 있었다.
사파리라고 해서 동물들에 대한 대우가 더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관람객들이 철창 밖에서 멀리 있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대신 버스를 타고 철창 안에 들어가 더 가까이서 동물을 바라보는 격이었다. 사파리 기사의 설명과 곰들의 묘기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버드랜드에서 알 하나가 관람실 중간에 방치되어 있다.
ⓒ 이현정
 사파리 밖을 나가 파충류관과 조류들이 모여있는 버드랜드로 향했다. 파충류관에 전시된 여러 종류의 뱀들은 좁은 유리실 안에 갇혀 있었다. 파충류와 곤충류는 미국의 동물복지법률(Animal Welfare Act, AWA)에도 '동물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동물원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버드랜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은 맞이한 새는 물총새였다. 자연에서 날렵하게 강 위를 가르며 물고기들을 잽싸게 사냥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날기 힘든 새장에 갇힌 물총새의 악쓰는 듯한 울음소리가 전시관 전체를 가득 메웠다.
 
다음 전시관에는 플라밍고와 백로, 토코투칸이 매끄러운 관람실 바닥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알 하나가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근처의 사육사에게 그 알에 대해 질문하자 잠시 뒤 그 알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동물권 향상보다 동물에 대한 인식 변해야 

전 세계적으로 동물원 폐지 여론이 끊임없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은 국회에서 동물원법을 발의했다. 장 의원이 야생동물의 택배 운송에 대해 처음으로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녹색당은 20대 총선 때 국내 최초로 동물권 선거운동본부를 출범시켰고 당시 국내의 동물 보호 단체들과 지지 및 정책 협약을 맺었다. 선거 때마다 동물권 공약을 내놓으며 국내에서 공장식 축산과 살처분, 해양포유류 보호 등의 의제에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왔다. 2019년 현재에도 동물권위원회를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 동물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기대된다.

동물해방물결 측은 인간과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보고, 단체 강령에서 동물해방과 비거니즘(veganism)의 확산, 지구의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물 복지법이나 동물원법 등 법규를 통한 동물권 향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동물에 대한 인식이다. 동물원이나 애견 카페 등을 방문할 때 단지 동물을 유흥거리나 상업적 도구로만 소비하지 않고, 생명으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9월 사육사의 불찰로 열려있던 사육장 문을 탈출한 퓨마가 사살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져 본다. 작년처럼 인간의 이기심으로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이 인간의 실수로 인간에 의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동물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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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전 녹색당의 인턴 활동으로써 기획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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