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면 나도 파격발탁? '윤석열 효과' 검사장들 버틴다

김기정 2019. 7.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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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검사장은 왜 안 나가요?"

최근 법조계 모임마다 자주 나오는 소리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문무일(58·사법연수원 18기) 총장보다 다섯 기수 아래인 윤석열(59·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명되자 법조계에선 '기수 파괴' 인사라는 분석이 많았다. 동기나 후배가 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 옷을 벗는 검찰 조직 특성상 수십명에 달하는 대규모 후속 인사가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검찰 내부에선 "안 나가도 너무 안 나간다"는 말들이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예상외의 승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검사들은 애가 타는 모습이다.


"군사문화"…'기수 파괴'는 文 대통령의 소신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 운명 』. [중앙포토]
검찰의 '기수 파괴'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소신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 펴낸 저서 『운명』에 이렇게 적었다.

"검찰의 전통은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를 추월해서 승진하면 선배들은 모두 옷을 벗는 것이었다. 동기 중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면 나머지 동기들은 모두 그만두고 나갔다. 참여정부는 그런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없어져야 할 군사문화라고 판단했다. 검찰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이번 파격 인사의 배경 중 하나로 이와 같은 문 대통령의 소신을 꼽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19일 국회에 출석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윤 후보자보다 선배는) 다 옷을 벗으라는 뜻이냐'는 여당 의원의 질의에 "그런 의미는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의 생각과 비슷한 취지로 답했다.

윤 후보자 역시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주변에 "동기들뿐 아니라 윗 기수도 일부는 남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후보자가 검찰에 남아있는 선배·동기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점도 고위직의 줄사표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기수 파괴'의 역설…"남아도 너무 남는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임현동 기자
그렇다 보니 윤 후보자 지명 이후 '용퇴' 의사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직 간부는 아직 4명에 그친다. 윤 후보자와 검찰총장 후보로 경합을 벌였던 봉욱(19기) 대검 차장검사는 지난달 27일 퇴임했다. 김호철(20기) 대구고검장은 4일 퇴임식을 앞두고 있다. 송인택(21기) 울산지검장과 개방직인 정병하(18기) 대검 감찰본부장도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아직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연수원 19~22기 검찰 고위 간부는 1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부 인사들은 8일 열리는 윤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추가로 용퇴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 가장 선배격인 19기 중에선 조은석 법무연수원장이 8월 말 퇴임하겠다는 뜻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 지역 최초로 지난 4월 국제검사협회(IPA) 차기 회장으로 당선된 황철규 부산고검장은 회장직 수행을 위해 법무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초 법무부는 검찰의 대규모 후속 인사를 예상하며 검사장급 승진 심사를 위해 연수원 27기까지 인사검증 동의서를 받았다. 차장검사 검증 동의서는 연수원 29기까지 받아둔 상태다. '기수 파괴'가 아니라면 다음번 인사에서 27기의 검사장 승진, 29기의 차장검사 승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검찰 내부에선 "남아도 너무 남는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 고위직의 대규모 퇴진으로 예상외의 승진 인사를 기대했던 검사들이 특히 초조해한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지금쯤이면 벌써 검사장급 이상 인사판은 짜였어야 한다"며 "누가 떠날지, 누가 남을지 몰라 인사를 예측하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윤 후보자를 지명한 기수 파괴 인사의 배경엔 인적 쇄신의 뜻도 포함돼 있다"며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검찰은 모두 나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재 검찰 고위직의 주축인 19~23기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 정책에 비판적이던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들도 바로 이 기수들이다.


"'기수 파괴'에 대한 항의…변호사 시장도 포화"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쉽사리 사의를 표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법조계에선 윤 후보자를 지명한 '기수 파괴' 인사에 대한 항의의 뜻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예전의 경우 예상 가능한 사람 가운데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됐기 때문에 대부분 수긍을 했다"며 "검찰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꺼번에 용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윤 후보자 지명은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인사라는 것이다.

윤 후보자의 파격 임명 과정도 검찰 고위직 간부들이 쉽게 용퇴를 결정하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검찰 출신인 법무법인 동인의 김종민 변호사는 "검찰을 떠나면 원외 인사로 분류돼 후일을 도모하기 힘들다"며 "문재인 정부 이후를 고려해 검찰 조직에 남아있으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른바 '윤석열 효과'다. 윤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초기 공개 항명 파동을 일으킨 이후 한직을 떠돌다 정권이 바뀐 이후 파격 승진을 거듭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변호사 시장 포화'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검사장들의 용퇴를 어렵게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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