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복' 역대 해법은 ①맞불 ②타협 ③체질개선..한국은?

홍지유 2019. 7.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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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 의존도·협상력 고려했을 때
"맞불 실익 낮아..외교 노력 필요"
국산화·다변화는 중장기 과제로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대외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문제를 악화할 수 있는 맞불 작전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통해 실리를 꾀하며 장기적으로는 대일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①맞불형…“협상력 대등하지 않으면 효력 無”

수출입 제재를 당했을 때 똑같이 갚아주는 방식이다. 2017년 베트남이 인도산 농산물이 땅콩 벌레에 감염됐다며 수입을 유예하자 인도가 즉시 베트남산 커피 원두 수입을 중단하며 맞불 조치를 강행한 사례가 있다. 결국 양국은 수입 금지 조치를 철회하고 식물 위생 검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로 합의하며 분쟁을 종결했다. 최근 미국이 동맹국에 화웨이 수입 금지를 요구하자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흔치 않은 카드를 쓸 용의가 있다"며 대미 희토류 수출 제한을 시사한 것도 맞불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한·일 무역 갈등을 '맞불 전술'로 해결할 순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 방식은 양국의 협상력이 비교적 동등할 때만 효능이 있다"며 "일본이 제재를 예고한 3개 품목은 대체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한국이 생산하는 반도체 완제품은 미국의 마이크론테크사 등에서 대체 수입할 수 있어 협상력이 일본에 기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보통은 수입국(한국)이 갑의 위치에 있지만, 대체 불가능한 핵심 소재나 기술을 가진 경우(일본)는 예외"라며 "무역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양국 모두 피해를 보게 되겠지만 한국의 손해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베트남 교민들이 지난 2016년 7월 24일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중국이 베트남 영해의 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 중국명 난사군도)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파라셀 군도(베트남명 호앙사군도, 중국명 시사군도)에서 베트남 어선을 습격하는 등 침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②타협형…“외교家 결자해지 필요”
외교‧정치 채널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다. 2014년 중국과 베트남 간 영토 갈등이 무역 갈등으로 번졌을 때 양국이 가동한 외교 채널을 참고할 만하다. 2014년 5월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해역인 파라셀 제도에 중국이 석유 시추 장치를 설치하며 영토 갈등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베트남산 농산물 수입과 자국민의 베트남 관광을 제재하자 베트남은 즉각 외교 채널을 최대로 가동했다. 같은 해 8월 레홍안 전 공안부 장관, 풍꽝탄 국방부 장관 등 포함한 13명의 고위장성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2015년에는 응웬푸쫑 공산당 서기장, 응웬신훙 베트남 국회의장 등 정치 외교를 막론한 고위급 인사들이 통상 마찰 해결에 나섰다.

곽노성 교수는 최근 한·일 간 통상 갈등에 대해 “결국 외교적 해결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외교에서 시작된 문제인 만큼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제재가 시작되는 8월 1일 전 정부뿐 아닌 의회 차원에서도 외교 채널을 최대로 가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보복 대 보복은 최악의 해법”이라며 “문제의 확산을 막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최소한 휴전 상태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③체질개선형…“중장기 과제로 가져가야”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낮춰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에서 중국이 대일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자, 일본이 희토류 수입처를 다변화한 것이 대표적 예다. 당시 일본은 사전에 비축해둔 희토류를 이용하며 호주 등 다른 나라로 공급원을 돌렸다. 중국 민간에서 나오는 밀수 희토류를 사들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고, 오히려 97%에 달했던 중국의 전 세계 희토류 생산 비중이 지난해 70%로 떨어지며 독점적 지위에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 비중은 70%에 달한다. 사진은 중국 희토류 광산. [중국 글로벌타임스 캡처]

하지만 당장 일본의 핵심 기술력을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경제 보복 대상 품목 중 하나인 '에칭 가스'는 부식성이 강하고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재고가 많지 않은데, 이 때문에 몇 개월 뒤 당장 피해를 보게 될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 '국산화' '수입 채널 다변화'를 주문하는 것은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외교적 해법을 찾되, 중장기 과제로는 국내 기술을 개발하며 대일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이 유일한 탈출구인 셈이다.

정 교수는 "외교 갈등에서 문제가 시작된 만큼 결국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한·일관계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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