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박정희 주무르듯 지금도 한국 주무르겠다는 아베

김동규 동명대학교 교수 2019. 7. 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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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차분하고 끈질기게, 넉넉한 기백을 품고

[김동규 동명대학교 교수]

 
1.
아베 일본수상이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된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 등 조치에 대하여 "공은 한국 쪽에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한 직접적 요구다. 일제 시기 강제징용의 위법성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라는 주장이다. 

둘째는 대한민국 행정부를 향한 우회적 요구다. 사법부에 '압력'을 가해 기존 판결을 뒤집으라는 강요다.  

오늘 아베의 발언은 외교문제의 경제 이슈화라는 표면적 해석을 넘어서는 심각한 도발이다. 한 독립국가의 사법체제 전체에 대한 고의적 겁박이기 때문이다. 3권분립에 기초한 최고사법기관의 결정을 수정하라 요구하는 것은 당사국의 독립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자면 현행 사태의 본질은 한국의 과거사 청산 노력과 그에 대한 일본의 적반하장격 반격에 있지 않다. (참의원 선거 승리라는 단기 정치 목표 달성을 위해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논평 자체가 상징하듯) A급 전범 기시의 외손자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의 주류 집권 세력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정상적 통치 시스템을 갖춘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러한 근원적 인식이 사태의 본질이라 판단된다.  

그들의 눈에 '남한'은 여전히 암묵적 식민지인 것이다. 

2. 
아베 정권은 왜 이 같은 망발적 도전을 줄기차게 시도하는가? 근거는 1965년에 있다. 이 해 6월 22일 도쿄에서 서명되고 같은 해 12월 18일부터 발효된 한일협정 말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반세기 이상 일제 식민 지배 청산과 관련된 한일 간 충돌의 깊은 근저에 이 망국적 협정이 놓여있다.  

협정의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일본어로는 '日本国と大韓民国との間の基本関係に関する条約'이다. 한일 간 국교 정상화를 전제 조건으로 식민지 침탈에 대한 일본의 보상(이른바 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실행된 협정이다. 

보상 내용의 핵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상자금을 3억달러(일화 1080억 엔) 10년에 걸쳐 지급하는 것이다. 둘째, 유상 차관 2억 달러(일화 720억 엔)를 10년간 장기 저리로 대여하는 것이다. 

한일 간에 지속적 논쟁이 되어오고 있는 것은 조약의 <제 2조> 1항이다. 여기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한일 양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배상 책임에 대한 '불가역(不可逆)적 해결' 주장의 근거가 이 대목이다. 양국 간에 합의된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 각 개인이 경험한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  "국제사회의 국제법 상식에 따라" 한국이 행동하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가 또한 여기에 있다. 스스로 해석한 그 같은 '국제법 상식'에 따라 한국 대법원이 판결을 번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가 법원에 번복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3.
일본 정부의 논리는 타당한가? 터무니없다. 2012년과 2018년의 복수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 대법원은 한일협정 내용에 조선인 피해 당사자 개개인의 배상청구권 포기가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명백히 적시한다. 국가 간 협정에서 특정 정부가 임의로 피해 당사자 개개인의 청구권을 위임받아 행사할 권리 자체가 없다는 법 상식을 천명한 것이다.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일제 하 강제징용 노동자의 피해를 해당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징용 피해자의 개인적 청구권을 국가가 대신할 수 없음에도, 그것을 강제적으로 위임 실행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박정희의 업보였다. 

참고로 2004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1966년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를 통해 충격적 진실을 폭로한다. 박정희 정권이 5.16쿠테타 이후 한일협정 체결 년도인 1965년까지 6개의 일본 기업들로부터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3분의 2에 달하는 6600만 달러의 비밀정치자금을 불법으로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위안부, 징용, 징병 등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모든 보상 권리를 뒷거래를 통해 팔아먹었으며, 한일협정이 격렬한 반대에 직면한 배경에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게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일당의 매국적, 위헌적 행악의 대가를 반 세기를 지난 지금까지 국민 전체가 굴욕적으로 되갚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 정권의 과오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하지만 그것이 법적, 논리적으로 양보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굴욕적으로 양보해야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4. 
그저께 북한은 일제 하 강제징용이 없었다고 주장한 아베의 발언을 겨냥하여 "평화를 파괴하는 악성 종양"이라고 일갈했다. 문제는 남한과 일본 간의 역사적으로 중첩된 과제가 이런 속 시원한 일갈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지금 시민들 사이에 뜨겁게 번져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없는 포인트를 여론을 통해 대신하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불매운동 자체를 터부시하는 주장도 눈에 띈다. 그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랜 과업이었던 대일 무역적자 문제 해결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으나마) 실천으로 기여할 기회가 지금 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충돌 국면이 종결될 때까지 일제상품 불매운동은 가속화될 필요가 있다 믿는다. 

둘째,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사자의 용기와 뱀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행정부가 앞장 서서 이슈를 확산시키는 것은 하책이다. 시민사회의 여론을 등에 업고 보다 차분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요청한다. WTO 제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당당한 논리 제시와 함께, 일본 정부의 치졸한 대응에 대한 당사자 간 공개 협의 요청이 뒤따라야 한다. 

대법원의 조력도 필요하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법적 논리를 당당히 설파하고 일본의 주장을 공박해야 한다. 우리의 논리를 공세적으로 개진하고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이미 그러한 시작을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본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빠르다 하지 않던가. 동시에 한일협정 이후 700조 원에 달하는 대일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원자재, 기계, 정밀부품에 대한 일본 의존을 줄여나가는 정교하고 시스템적인 정책이 지금부터라도 실행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현재의 위기는 역대 한국 정부의 굴욕적 대일 외교를 처음으로 제자리로 돌려놓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한 발짝 한 발짝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실행할 것을 제언한다.  

차분하고 끈질기게. 넉넉한 기백을 품고.

김동규 동명대학교 교수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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