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서양인들, BTS 추종 이유? 그들이 자기 목소리 지켰기 때문" 제프 벤자민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19. 7.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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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는 대중 맘에 들려고 자기 버리지 않아… 언어와 목소리 지켜냈다"
방탄소년단 알린 일등공신, 아미들은 다 아는 제프 벤자민
‘빌보드'에서 팝칼럼니스트로 케이팝 신드롬 이끌어
"방탄은 비틀스보다 더 큰 성취… 한국어 노래로 그래미 수상도 기대"
"한국인들 트렌디한 것 잘 모아, 케이팝 아직은 주류 아냐"

세계 무대에 싸이와 BTS를 열정적으로 알린 미국 ‘빌보드’의 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문화소통포럼(CCF)에 미국 대표 크리에이터로 참석해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사진=이태경 기자

한국 언론보다도 더 빨리 더 깊이 더 많이 한국 음악을 기사화하는 데 열정을 쏟는 미국인 팝 칼럼니스트가 있다. ‘빌보드(Billboard)’와 ‘퓨즈(Fuse)’에서 케이팝 전문 리뷰를 쓰고 있는 제프 벤자민(Jeff Benjamin)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을 세계에 알린 전도사라는 타이틀이 허명(虛名)이 아니다.

2009년부터 여러 음악 사이트와 차트에서 K팝의 약진을 포착한 그는 2012년 ‘빌보드'에 K팝 전담팀을 만들 것을 건의했고, 그 일이 계기가 돼 이후 빌보드를 중심으로 미국 주류 음악 시장에 K팝 아젠다가 형성됐다.

제프는 열정과 헌신을 다해 케이팝과 방탄소년단을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렸다. BTS의 지원군으로 방시혁과 아미 그리고 제프 벤자민이 거론될 정도. 동시에 K팝과 BTS가 월드와이드 미디어의 환호를 받으며 제프 벤자민의 이름값도 동반 상승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SNL에 출연하고, 몰려드는 팬들로 월드 투어 스타디움 앞에 텐트 노숙 진풍경이 연출되자 CNN, ABC 뉴스 등 주류 언론사들은 BTS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앞다퉈 제프 벤자민을 호명하고 있다.

대체 전 세계 음악 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BTS는 정말 비틀스를 넘어선 걸까? 스타일과 기술력이 결합한 케이팝은 정말 미국 주류 팝 시장에 진입한 걸까?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문화소통포럼(CCF)에 참석차 방한한 제프 벤자민을 만나 전 세계적인 신드롬인 케이팝과 BTS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BTS의 다음 스텝으로 그래미 수상을 기대했다.

"BTS는 아무도 따라 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창조했어요. 결국, 변화의 필요를 느낀 서양인들이 그들을 따라갔죠.서양인들이 BTS를 추종하는 건 그들이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에요."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들과 함께한 제프 벤자민.

제프 벤자민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랐다. 가수였던 어머니 뱃속에서 비틀스부터 이탈리아 오페라까지 모든 음악을 듣고 자랐다. 대학에서 음악과 언론학을 전공했고, 일찍부터 케이팝 덕후가 되어 2012년 ‘빌보드' 칼럼니스트로 입성했다. 한국 아이돌 가수들은 미완성 곡의 데모 테이프를 보내 그의 의견을 묻고, 그를 "제프 형"이라고 부른다.

-지금 당신 노트에 어떤 이름들이 적혀있는지 궁금하군요.

"블랙핑크, 잇지(ITZY), 스트레이키즈, 싸이, 샤이니, 트와이스, 갓 7... BTS의 리더 RM도 있네요(웃음)."

-가장 최근에 인터뷰한 케이팝 아티스트는 누구죠?

"스트레이키즈예요. 처음엔 빌보드에 인터뷰했고 그 다음엔 유튜브 라이브쇼인 ‘빌드’ 시리즈 인터뷰였어요. 그들의 팀파워와 진실성, 깊은 스토리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방탄소년단(BTS)은 언제 처음 만났나요?

"2014년 LA 케이콘(KCON, CJ의 K컬처 페스티벌)에서요. 지드래곤, 아이유, 엑소... 유명한 뮤지션들과 함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BTS는 그중 가장 신인이었는데도 팬들의 환호가 어마어마했어요. 신기했죠. 일종의 계시처럼 보였달까요. 그때부터 주목했습니다."

CNN에 등장해 ‘왜 우리가 BTS를 주목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제프 벤자민.

-지금의 방탄소년단은 퀸과 마이클 잭슨이 공연한 팝의 성지 웸블리를 뒤흔든 대스타가 됐습니다. CNN은 "비틀스보다 더 큰 성취"라고, BBC는 "그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더군요.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팝의 역사에서 이전에 없던 성취예요. 한편의 신화적인 스토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BTS가 발표하면 아이튠 앨범 차트에서 무조건 1위예요.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 그 음악을 팬들이 즐기는 방식이 모두 쿨하고 진지하며 21세기적입니다. 새 앨범엔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을 담고 있어요. BTS 굿즈 공식 사이트에서는 칼 융의 저서도 파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저는 그들이 쓰는 새로운 음악 역사에 쉴 새 없이 흥분하고 있습니다."

-상업 아티스트로서의 성취가 어디까지 갈 것 같습니까?

"이번에 미국 팝가수 할시와 같이 낸 ‘Boy With Luv(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라디오 히트’까지 점령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전통 매체인 라디오의 영향력이 커요. BTS도 마지막 목표를 라디오라고 했는데, 얼마 전 ‘2019 라디오 디즈니 뮤직어워드'에서 수상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빨리 이뤘구나! 그들은 항상 똑똑한 결정을 합니다. 상업적 목표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다음 스텝으로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가고 있어요. 만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웃음)."

abc NEWS에 출연해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 스텝은 어디로 향하고 있지요?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BTS에게 영어로 노래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들이 날 존중할지 모르지만, 나는 반대했어요. 영어로 노래하면 전파력은 더 크겠지만, 그건 BTS가 아니죠. 그들이 한국어 노래로 보수적인 그래미상까지 석권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나아가 자신들의 창의적인 작업 방식을 대중에게 더 공개하길 바랍니다. 워낙 화제성 있는 월드 스타라 SNL을 비롯해 미국의 유명 토크쇼와 시상식에서 앞다퉈 초대하고 있지만, 음악에 대해 더 많이 공유하면 좋겠어요."

-제프, 당신은 전 세계 팝음악계에 영향을 미치는 빌보드의 팝칼럼니스트입니다. 동시에 방탄소년단의 가치를 사랑하는 헌신적인 팬이기도 하죠. 그들이 어떤 영감을 주나요?

"저는 BTS 인터뷰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Love Yourself’에 실린 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RM이 한국의 욜로 문화에 ‘소확행'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한국 청년들이 시간과 돈을 쓰는 태도에서 어두운 희망, 밝은 절망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거죠. 2018년에 홍대 앞에서 오랜 시간 인형뽑기에 몰두하는 커플을 보고, 저는 RM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BTS는 청년들의 메신저예요. 모든 팝아티스트를 통틀어 BTS와 RM은 ‘내가 특별하다'는 친밀한 느낌을 줍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6월 티켓 오픈 90분 만에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6만석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 이후에도 계속 회당 5만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해 스타디움 세계 투어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들이 이정표 없이 방황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동반자라고 평가에 동의해요. 영미권에서는 비틀스와 비교하는데, 음악평론가들의 생각도 같은가요?

"비틀스가 좋은 비교 대상인 건 맞습니다. 그건 팬덤뿐 아니라 사람들이 비틀스를 기억하는 방식 때문이에요. 비틀스는 미국인 시각에서 패셔너블하지 않았어요. 장발에 부츠를 신고 왔죠. 당시 미국에선 비치보이스 스타일의 짧은 머리에 깔끔한 외모, 밝고 행복한 노래가 인기였어요. 하지만 비틀스는 자유분방한 태도에 클래식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줬어요.

제 부모 세대는 둘로 갈라졌어요. 엄마는 비틀스의 광팬이었고, 아빠는 비틀스가 사위 삼고 싶은 착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싫어했죠(웃음). 비틀스는 브리티시 팝뮤직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BTS는 케이팝의 비틀스처럼 다가왔어요. 저항과 사회 비판을 담은 진지한 노랫말은 국경을 초월해 공감을 얻고 있어요. 패션도 메이크업도 장르도 미국에서 트렌디하지 않은데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트렌디하지 않은데도 왜 BTS를 추종합니까?

"그들이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BTS는 아무도 따라 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창조했어요. 결국 변화의 필요를 느낀 서양인들이 그들을 따라갔죠."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서도 새 역사를 썼다. '소셜 50'에서 통산 130번째, 100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국적인 트렌드, 주류 스타일이란 어떤 거죠?

"가령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스타일이죠. 아리아나는 요즘 음악도 다른 스타일로 발표하고 있죠. 1년에 2개의 앨범을 선보이는 건 미국 팝아트 신에선 드문 일이죠. 그녀가 큰 영향을 끼치고 판도를 바꾸고 있어요. 스펙트럼은 다르지만 십대 소녀 빌리 아일리시도 얼터너티브를 팬 베이스로 어둡고 음울한 정서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다크한 자기 모습을 바꾸지 않아서 더 공감을 얻고 있죠. 래퍼 드레이크도 자기만의 확실한 콘텐츠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틴 음악의 강세도 주목할만 하죠."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은 소녀시대가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나오고 원더걸스가 차트에 오르던 시기부터 K팝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맞아요. 원더걸스는 2009년 즈음부터, 소녀시대는 2012년부터였어요. 비주얼도 성격도 퍼포먼스도 훌륭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당시 학생 신분으로 빌보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어요. 특히 원더걸스가 빌보드와 인터뷰를 시도했고 투어를 하면서 미국 시장을 똑똑하게 노크했습니다."

-당시 프로듀서 박진영이 원더걸스와 미국 음반사를 찾아다니며 시장을 개척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분명 갈증을 느꼈을 거예요. K팝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어가던 때였어요. 일본은 세계에서 음악산업이 두 번째로 큰 곳인데, 일본의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이거든요. 일본을 점령하고 미국으로 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K팝이 엄청난 노력으로 서서히 확장되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유튜브, 빌보드 판매량 등의 통계를 보면서 감이 왔죠."

2009년부터 미국 팝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원더걸스.

-감이 무척 빠르군요.

"2006년,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비(Rain)가 공연의 성지인 미국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노래하며 절정을 달리던 때도 기억해요. 그가 토크쇼 사회자인 스티븐 콜베이와 ‘타임100’ 인물 선정에서 경쟁하는 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재능이 있어요(웃음). 지금 사우디에선 누가 핫하지? 런던에서 누가 인기 있지? 어릴 땐 그걸로 동네 놀이터에서 주름을 좀 잡았는데, 이젠 저의 놀이터가 빌보드를 비롯한 음악 시장이 된 거죠."

-특별히 당신은 JYP 스타일에 좀더 애정이 있어 보이는데요.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50~60년대 원피스를 입고 옛날 마이크 앞에서 레트로 컨셉으로 노래하는 데 정말 즐겁게 귀에 꽂혔어요. 한동안 JYP도 침체기가 있었죠. 많이들 걱정했는데 2015년부터 팝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들이 아티스트를 나누는 방식이 좋아요. 트와이스를 데뷔시킬 때부터 회사에서 전담팀을 꾸려 아티스트 중심으로 섹션화 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케이팝에 관해 가장 방대하고 진지하며 사려깊은 평론을 하고 있는 제프 벤자민. 빌보드와 퓨즈 지면은 물론 각종 언론과 유트브 라이브를 통해 케이팝 전도사로 나섰다./사진=이태경 기자

-톱다운 방식의 조직도가 아니라 아티스트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박진영이 ‘슈퍼 인턴’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회사를 꾸려가는 방식을 오픈했습니다.

"바로 그래서 해외 저널리스트들은 JYP와 소통이 잘 된다고 느껴요. 팀에서 모든 걸 알고 있죠. 저는 그들의 음악 콘텐츠뿐 아니라 아티스트를 다루는 종합적인 비즈니스 방식이 맘에 들어요."

-SM의 팽창도 주목할만하지요. SM은 디즈니나 넷플릭스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을 아우르는 월드와이드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SM의 성취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충분히 칭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들은 큰 회사인데도 늘 실험적이고 앞서간 행보를 보였어요. 그리고 그게 곧 트렌드가 됐죠. 레드벨벳의 경우도 굉장히 실험적인 신인이었는데 음악적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어요. 저는 SM이 하우스뮤직과 EDM, MCN(스타들의 멀티채널 네트워크)을 다루는 걸 보고 그 선구적인 시스템에 경탄했어요."

-반면 YG는 요즘 불편한 이슈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YG는 오랫동안 음악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해 왔어요. 매니지먼트 스타일을 열외로 생각하면 YG 아티스트들은 정말 존중할만 합니다. 특히 저는 2NE1과 빅뱅, 악동뮤지션의 창의력을 높이 평가해요. 최근엔 블랙핑크의 활약이 정말 뛰어나더군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스틴 비버도 빅스캔들을 겪었지만 훌륭한 앨범으로 돌아왔고 용서를 받았어요. 진정성 있는 태도와 음악만이 대중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속사를 불문하고 블랙핑크, 원더걸스, 시엘, 아이유 등 여성 가수들을 하나하나 주목하는 모습도 인상 깊더군요.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음악산업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이 겪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합니다. 불필요한 미움도 받았고 제대로 된 업적 평가도 못 받았어요. 특히 원더걸스는 미국 시장의 개척자였어요. 물론 디스코 컨셉도 좋았지만, 그녀들은 미국에서 완전히 신인으로 다시 노력해서 성공을 거뒀어요. 그 눈물겨운 과정을 저는 알아요.

‘빌보드’가 처음 케이팝을 주목하게 된 것도 그녀들 때문이었어요. 원더걸스의 ‘빌보드’ 라이브 퍼포먼스는 아델보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고, 케이팝은 분명 그 흐름의 혜택을 받았어요. 2NE1도 마찬가지죠. 미국 첫 투어에서 2NE1과 빌보드에서 한 인터뷰가 제 트위터 간판 사진이에요.

솔로 아티스트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씨엘.

개인적인 커리어에도 특별했지만, 그 인터뷰가 웹사이트와 블로그에서 일으킨 엄청난 반응을 보고 팬덤을 체감했습니다. 2NE1의 역사를 보면 좀 슬프기도 해요. 활동 기간도 짧았고 소녀시대와 비교해 못생겼다는 비난도 받았죠. 제가 보기엔 너무나 쿨하고 아름다운데 말이죠."

-2NE1은 해체됐지만 ‘내가 제일 잘 나가'로 컬러가 분명한 씨엘이 시장에 남았죠. 씨엘은 2014년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와 일하는 연예 기획자 스쿠터 브라운과 계약했는데, 이상한 건 지금까지 결과물이 없다는 거예요.

"저도 곧 놀라운 일이 펼쳐질 걸 기대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미발표된 씨엘의 곡을 들은 적 있는데 정말 훌륭했어요. 그녀는 ‘라디오 히트’까지 넘볼만한 솔로 아티스트인데… 중요한 건 레코드 레이블이에요. 블랙핑크는 미국 쪽 레코드와 계약했지만, 씨엘은 매니저 계약만 한 상태라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유는 케이팝 무대에서 좀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2011년에 그녀의 ‘좋은 날'을 들었는데 솔직히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후로 송라이터로 대담한 선택을 하더군요. ‘모던타임즈’도 그랬고, 최근 발매된 앨범 ‘삐삐'에서도 경계를 허무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저와의 인터뷰에서도 기타 하나만 들고 어쿠스틱 투어를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아이유다운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3억이 넘는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2012년부터 17년까지 무려 5년간 유튜브 조회수 1위를 유지했다.

-한편 K팝 열풍을 끌어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스쿠터 브라운이 가세했지만 아쉽게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로 끝났어요. 2012년의 시장과 비교해서 글로벌 음악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습니까?

"싸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음악이 한국에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려줬어요. 놀라운 에너지의 래퍼예요. 안타까운 건 싸이 음악 특유의 농담과 풍자, 패러디가 지금의 음악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거죠. 글로벌 트렌드는 좀 더 진지하면서 쿨해졌어요. 싸이만의 인디적인 요소가 또다시 출구를 찾아낼 거라고 봅니다."

-한때는 케이팝이 미국 팝 음악의 카피이자 아류라고 혹평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요. 케이팝만의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K팝은 트렌드를 재빨리 흡수해서 전 세계 음악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을 세련되게 조합해 놓았어요. 물론 일각에서는 여전히 엔싱크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아류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K팝은 뮤직비디오, 스타일, 방송, 유튜브, 소셜 미디어... 그 모든 것에서 최상의 올인원 패키지예요. 처음엔 K팝을 진지한 장르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스펙트럼은 다르지만, 최근엔 밴드 음악과 트로트가 한국 가요 시장에서 또 다른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스트롯'과 ‘슈퍼밴드'가 시청자들의 열광을 끌어냈지요.

"트로트를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처음 애프터스쿨 리지의 ‘쉬운 여자 아니에요'라는 트로트 곡을 듣고 특이한 창법이 재밌고 쿨하게 느껴졌어요. 다만 미국 음악과 비교 대상이 없어서 좀 어려웠어요(웃음). 고유한 창법이나 제작 스타일만 보면 미국의 재즈와 비슷한 것도 같고요. 더 많은 아이돌이 시도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슈퍼밴드’를 응원하고 있어요. 한국 뮤지션의 실력은 정말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케이팝은 그룹 퍼포먼스 위주로 흘러갈까요?

"2000년대 중반까지 보아, 세븐, 비 등이 활동했는데 오래 가지 못했어요. K팝의 경쟁력이 그룹 퍼포먼스가 갖는 다이내믹 파워인 건 분명해요. 노래, 춤, 랩, 비주얼, 작곡 등 각 파트를 담당하는 역할이 뚜렷하고 팬들과의 시너지도 강해요. 개인주의 성향의 서양 보이밴드에 비해 그들 사이의 결속력은 막강합니다."

케이팝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외 인터뷰에서 아티스트들이 좀더 자신을 드러내고 팬들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제프 벤자민./사진=이태경 기자

-해외 언론은 케이팝과 함께 팬덤도 흥미롭게 보더군요. 빌보드 차트 진입부터 웸블리 공연까지, BTS와 아미(ARMY)가 소통하며 이뤄내는 모든 과정이 경이롭다는 반응입니다.

"가장 놀라운 지점은 그들의 조직력입니다. 2014년 초 저의 트위터 팬 계정에 아미가 RM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멘트를 요청했어요. 흔쾌히 했죠. 그들은 초기부터 해외 언론의 기자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알고 그들에게 BTS를 홍보하기 시작했어요.

아미는 다양한 음악 계정을 전략적으로 분할해서 공략해요. 라디오와 스트리밍의 순위는 물론이고, 미국도 남서부, 동부 등 지역으로 나눠서 활동하죠. 어떻게 BTS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숨길 지도 잘 알고 있어요. 빌보드 진출, 그 다음엔? 웸블리 공연, 그다음엔? 목표를 설정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요즘엔 미국의 다른 아티스트 팬들도 아미를 따라 하고 있어요."

-BTS는 솔직하면서 보편적인, 이 사회에 깨어있는 목소리로 세계를 연결시켰어요. 그들의 세계가 아미와 함께 더욱더 확장될 거라고 보나요?

"물론입니다. 그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한, 세계는 더 확장될 거예요. 음악 세계에선 남들과 똑같으면 성공할 수 없어요.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들이 당당하게 한국어로 노래하는 모습에서 진정성과 창의성을 봤어요. 그들은 오히려 팬들이 한국어를 궁금하게 만들었죠. 방시혁이 처음으로 저와 미국에서 빌보드 인터뷰를 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가 말했죠.

"K팝 아티스트가 제일 잘하는 게 한국어로 노래하는 거다. 그게 아니면 BTS는 미국에서 데뷔하는 흔한 아시아 보이밴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서구 세계에 뻗어 나가려는 시점에서 영어로 노래하지 않겠다는 방시혁의 대담한 결정에 저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반복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BTS는 나를 바꿔서 대중의 맘에 들려고 하지 않고, 나를 지켜서 더 많은 사람이 끌려오도록 했습니다."

-문득 BTS의 RM이 2018년 9월 유엔총회에서 했던 감동적인 연설이 생각나는군요. 자신은 수백만 명의 팬이 있는 BTS의 일원이지만 한국의 작은 마을 출신의 평범한 청년이기도 하다고요. 넘어지고 휘청거려도 그런 나를 사랑한다고. 그러니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라는 내용이었지요.

"맞습니다. 서양에서 진정성은 굉장한 위력입니다. BTS는 진정성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죠. ‘쇼잉’이 아니라 진짜예요. 그래서 모두가 이해하는 구체적이고 쉬운 메시지로 이야기를 풀어요. 그들의 노래 ‘Love yourself"가 현실에서 실제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건 중요합니다."

‘스피크 유어 셀프' 유엔 연설로 전 세계에 울려퍼진 방탄소년단의 메시지.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피부색이 무엇이든 간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십시오"라는 RM의 연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피크 유어 셀프’ 캠페인으로 번졌다. ‘러브 유어 셀프, 스피크 유어 셀프’는 지난 4월 발매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의 주제이자, 월드투어 콘서트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마지막으로 케이팝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요?

"K팝은 아직은 주류가 아니에요. 서양인들도 지금 막 K팝에 어떤 아티스트가 있고, 어떤 음악적 특징이 있는지 배워가는 중입니다. 신드롬은 맞지만,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중요한 건 아티스트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진행되는 K팝 아티스트 인터뷰를 보면 공식적인 룰에 따르고 있어요. 기획사의 보호색에 가려서 아티스트 본연의 색깔이 휘발된 듯한 느낌이죠.

확실한 건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 보여줘야 대중과 연결된다는 거예요.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씨엘, BTS를 보세요. 깊이 숨어있는 자기를 드러내면 팬들과 연결되고, 팬들이 나서서 도와줍니다. 대중은 가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해요. 글로벌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자기를 드러낼 때예요. 전 세계 팬들은 완벽한 아이돌 보다 솔직한 아티스트에 더 열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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