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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조선 시대의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가 아니다" 날조

한국일보 입력 2019. 07. 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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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역사적 권원을 바탕으로 실효적 관할통치를 하고 있는 명백한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1900년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칙령41호로 울도군을 설치하여 동해의 도서 ‘울릉전도, 죽도, 석도(石島)’를 영토로서 관리했다. 여기서 ‘석도’는 지금의 독도이다. 한편 일본은 1905년 함부로 ‘주인이 없는 섬’이라고 하여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석도’는 독도가 아니기 때문에 칙령41호는 독도와 무관하고, 오히려 일본이 시마네현고시 40호로 편입하여 국제법상 일본의 ‘신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의 주장이 거짓임이 증명되었다.

첫째, 일본은 조선시대의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가 아니고, ‘울릉도’이거나 ‘죽도’이라고 하여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 즉, 조선시대 500년 동안 독도의 명칭은 공식적으로 <‘우산도’(1454~1881), ‘독섬(돌섬)’/‘석도’(1882~1900년경), ‘독도’(1900년 이후)>로 사용되었다. 당시의 독도는 2개의 암석으로 되어있고 크기나 가치로 보더라도 사람이 거주할 수 없고, 게다가 울릉도에서 날씨가 청명한 날에만 보이는 섬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1403~1882년까지의 쇄환정책으로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을 때는 독도의 위치나 명칭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고문헌에 남아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고문헌에 섬의 크기나 위치는 일정하지 않지만 ‘우산도’라는 명칭이 표기되었고, 때에 따라 ‘죽도’를 우산도라고 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정부는 500년 동안 독도에 대한 영유권 의식은 갖고 있었지만, 우산도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둘째, 일본은 안용복사건을 계기로 울릉도의 도해금지령을 내렸을 때, 독도의 도해금지령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17세기에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 즉, 돗토리번 답변서에 의하면, 1692년 안용복사건의 발발로 결국 일본의 막부는 1696년 일본인들의 울릉도 독도 방면 도해를 금지하였다. 그후 일본인들은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막부의 도해금지령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였다는 증거이다. 다만 일본 어부들은 1620년경부터 1692년 안용복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독도를 경유하여 울릉도에 몰래 도해하였기 때문에 울릉도와 독도의 지리적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부가 그것을 불법 도해로 간주했기 때문에 일본 어부들은 1696년 도해금지령부터 1976년 강화도조약를 체결하였을 때까지 280여년간 독도를 경유해서 울릉도로 도해하는 일은 없었다. 280년이 지난 후 울릉도와 독도 방면의 도해 금지가 해금된 이후에도 일본정부는 1969년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7년 태정관지령에서 정식적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했다. 이처럼 1905년 이전에 일본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셋째, 고대 신라시대 울릉도에 우산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독도는 우산국의 영토였다. 고려를 거쳐, 울릉도에 사람의 거주를 금했던 조선시대에는 수토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관리하였다.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1695년 수토사로 울릉도에 파견된 장한상은 ‘우산도’를 확인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그 후 2,3년마다 파견된 수토사들은 우산도를 찾는 일에 태만하여 ‘죽도’를 ‘소위 우산도’라고 표기하는 오류를 범했다.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독도를 경유하여 울릉도에 자주 내왕함에 따라 조선정부는 1882년 이규원 검찰사를 울릉도에 파견하여 조사한 후, 울릉도 우산도(독도) 개척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울릉도에 도민이 거주하면서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서 ‘독섬(돌섬)’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되었다. 1900년 고종황제는 ‘칙령 41호’로 울도군을 설치하여 동해도서의 ‘울릉전도, 죽도, 석도’를 관할했다. 이처럼 한국은 고대시대부터 지금까지 독도와 울릉도를 영토로서 줄곧 관리해왔다.

넷째,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고시 40호’로 몰래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편취한 후, 그 사실을 숨겨오다가 시마네현 관리 일행이 1906년 3월 울릉도를 찾아 심흥택 울도군수에게 구두로 슬쩍 전했다. 이에 놀란 심흥택 군수는 긴급으로 이튿날 ‘본군 소속 독도’가 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황성신문 ‘울도군의 배치전말’에 의하면, 대한제국 정부는 즉시 ‘칙령 41호’로 행정조치 되어 독도가 울도군의 일부임을 일제 통감부에 항의했고, 이에 통감부의 요청에 따라 칙령 41호의 ‘울릉전도, 죽도, 석도’가 행정조치 되었고, 울도군의 범위가 ‘석도’를 포함하여 ‘200리’라고 하여 독도가 ‘석도’임을 확인시켰다. 이에 대해 통감부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최장근 대구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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