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장에 겨우 2000원..'꿈꿀 시간도 빼앗긴' 日 애니메이터들

전효진 기자 입력 2019. 7. 7. 08:01 수정 2019. 7. 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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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원피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너의 이름은’…

1960~1970년대 안방극장용 ‘만화영화’로 사랑받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 들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진화하며 쉼 없이 세계적인 히트작을 쏟아내고 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섬세하고 치밀한 스토리 구성을 앞세운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어느새 영화 시장에서도 미국과 더불어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달 21일 중국에서는 두 편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동시 개봉했다. 디즈니-픽사의 ‘토이스토리4’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1년 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최신작인 ‘토이스토리4’가 18년 묵은(중국 정식 개봉은 처음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흥행에서 낙승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7월 1일까지의 중국 흥행성적을 보면, ‘토이스토리4’는 9111만위안(약 155억원)을 벌어들였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 두 배가 넘는 1억9300만위안(약 330억원)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기록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연간 22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애니메이터들은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지금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17년 작 ‘너의 이름은’이다.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입이 약 4200억원에 달한다. 3조원이 넘는 흥행 수입을 올린 ‘어벤져스:엔드게임’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제작비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제작비가 4000억원이 훌쩍 넘지만, ‘너의 이름은’의 경우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39억원 정도의 제작비로 완성을 봤다. 수익률을 따지면 어벤져스 수퍼히어로들의 완패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이 숨어있다. 숨은 주역들인 애니메이터(animator·만화영화를 그리거나 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그것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2조1527억엔(약 23조원) 규모의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애니메이터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2002년 1조1000억엔 정도 규모였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2017년 2조1527억엔으로 1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그림 한 장을 완성하면 약 200엔(약 2100원)을 벌어들일 뿐이라고 복스는 전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약 200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섬세한 묘사가 트레이드 마크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20~30대 애니메이터, 연평균 수입 기준 ‘빈곤층’ 생활
30분짜리 애니메이션의 경우, 평균 300~400컷으로 구성된다. 배경이 아예 다른 장면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를 ‘한 컷’으로 보는데, 한 컷당 캐릭터나 배경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표현해내기 위해 최소 수십장에서 수백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1회 방영분의 애니메이션은 수십명의 애니메이터들이 협업해 만든 약 3000장의 그림으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그림은 주된 고용형태인 ‘프리랜서 애니메이터’가 되기 전인 ‘입문’ 단계의 애니메이터들이 맡아 진행한다. 이들은 감독이 스토리보드를 제시하고 한 명의 ‘키(key) 애니메이터’가 핵심 장면을 그리면, 3~4명의 입문 레벨 애니메이터가 투입돼 관련 장면의 그림들을 완성한다.

전직 애니메이터는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1장 그리면 대략 200엔을 받으니 한달에500장을 그리면 10만엔(약 110만원)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도 숙달된 사람의 경우 가능한 일이다. ‘초짜’들에겐 100장도 버겁다"며 "교육을 시켜준다는 핑계로 급여를 거의 주지 않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자 협회의 발표 내용을 보면,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들의 연평균 수입은 20대의 경우 110만엔(1193만원), 30대에는 210만엔(2278만원), 40~50대에는 350만엔(3797만원)으로 조사됐다. 현재 일본에서 ‘빈곤층’의 연수입 기준은 220만엔(2386만원)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매드하우스(Madhouse)’는 최근 노동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 곳 직원들은 한달에 400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었으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37일 연속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복스는 전했다. 격무에 업무 중 책상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가 많아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건강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4년에는 한 달에 600시간 넘게 일했던 남성 애니메이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꼼꼼하고 섬세한 작업은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최대 경쟁력이지만, 열악한 처우의 원인이기도 하다. 자코아니라는 이름의 한 애니메이터는 "내가 밑그림을 그리면 고참 애니메이터와 감독이 그걸 확인해 다시 나에게 돌려보낸다. 그러면 내가 (그들의 요구대로) 처리해 최종 마무리 작업을 하는 애니메이터에게 보낸다"면서 "지나치게 꼼꼼하게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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