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제재에 깊어지는 韓정부의 고민

방성훈 입력 2019. 7.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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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선거 겨냥 단기전이면 괜찮지만..장기전일까 불안"
"WTO 승소 가능성 낮아..日 국제평화 논리 반박 어려워"
"기업 피해 최소화가 최우선..강경 대응보다 외교적 해법"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의 경제 제재 및 추가 제재 가능성에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혼네’(本音) 파악하지 못해서다. 정확한 속셈을 모르니 대응수위를 정하기도 어렵다.

대외적으론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쓸 수 있는 보복 카드는 제한적이다. 일본이 내놓은 수출규제 만큼 치명적인 품목이 없을 뿐더러, 일본이 추가 규제에 나설 경우 피해가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한 조정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빨라야 1년 6개월이 소요되는데다 반드시 승소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외교적 해법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출규제 장기전으로 확전 때 피해 본격화

일본의 제재가 지난 4일 발표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절차 강화에만 그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7일 “허가를 한 번 받으면 3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수입할 수 있던 포괄허가제가 개별 사안별로 기간이 다양해지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다소 불편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제재만 없다면 수출입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서류를 다시 작성해오라든지, 이유 없이 심사·승인 기간을 늘리는 등의 강짜만 부리지 않는다면 수출입 자체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정부의 이번 수출규제가 총선을 겨냥한 퍼포먼스인지, 장기전 돌입을 위한 수순인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되면 이 경우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뿐 아니라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 수출 통제 물자로 지정된 품목(리스트 품목), 나아가 비(非)리스트 품목에 대해서도 개별 수출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은 50여년 동안 경제적으로 보완해가면서 성장해왔다. 일본이 경제제재를 보복카드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일본의 속을 알 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WTO 승소 쉽지 않아…“외교적 해법이 최선”

우리 정부는 우선 WTO에 제소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WTO 제소 시 분쟁 해결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이 기간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차적인 문제다.

이번 사안이 정치적인 이유에 따른 경제 보복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WTO에서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이 ‘국제 평화 및 안전·안보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일본이 북한을 앞세워 적국이나 테러세력에 전략물자가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 반박 논리를 펼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조치가 일본 경제에도 큰 피해를 입히는 ‘치킨게임’이라는 위기의식이 확산하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제재를 철회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결국 국제 여론전을 통해 일본의 부당함을 호소하거나, 미국 등과의 외교적 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차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WTO 제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무역보복으로 맞대응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일본에 같은 강도의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다. 일본이 제재 수위를 올리면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원인에 따른 무고한 기업희생을 막는 게 최우선시돼야 한다. 확전을 최대한 방지하면서 일본 정부와 하나씩 맞춰가면서 외교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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