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미·중·일 다 버티는데 한국만 나홀로 불황에 빠졌다

김동호 2019. 7. 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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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빅3' 흐름 견조하지만
한국만 경제지표 후퇴 흐름 지속
국내 기업 탈한국 바람 강해지고
일본 경제 보복으로 어려움 가중

한국과 주요국의 경제 디커플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단 한 번의 번개로도 폭풍이 시작될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발언이다. 그는 무역전쟁·금융긴축·브렉시트·중국 리스크를 ‘세계 경제의 4대 먹구름’이라면서 올해 세계 경제를 비관했다. 하지만 이런 비관론은 올 1분기 경제성적표 앞에 머쓱해졌다. 미국은 1분기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3.6%를 찍는 고용 호황을 누렸다. 중국은 1분기 성장률이 시장의 예측을 뛰어넘는 6.4%를 기록해 중국 경제의 급속한 둔화 우려를 떨쳐버렸다. 만성적 저성장 국가 일본조차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 0.8%보다 높은 1.0%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 이들 미·중·일 3개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50%를 넘어서지만, 올해 1분기 마이너스 0.4% 역성장했다. 이들 ‘빅3’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없는 조건이라면 한국 경제가 미·중·일 3개국과 비슷한 궤도를 그려왔다. 그런데 지금 유독 한국만 침체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배에 달하지만, 올 1분기 연율 3.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과 비교해도 한국은 초라하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1만 달러에 육박했다. 한국은 1994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외환위기에 빠져 후퇴한 뒤 99년에서야 다시 1만 달러를 회복했다. 이 시점부터 한국은 5%대 성장에도 허덕여 왔지만, 중국은 여전히 6% 성장을 누리고 있다.

결국 주요국은 경제가 순항하거나 선방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만 역성장 쇼크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크게 봐서는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반도체마저 위기 직면

그동안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와 궤도를 함께 했던 것은 반도체 착시 효과가 컸다. 하지만 세계 경기의 둔화 흐름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더해져 반도체 의존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체력 저하가 가시화하고 있다. 반도체는 앞으로 당분간 전망이 밝지 않다. D램 가격은 절정기 대비 40% 선으로 떨어졌다. 이 여파로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6%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가 시작됐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주력산업은 모두 근간이 흔들린다. 주로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우리가 시장으로만 여겼던 중국이 이제는 한국을 제치고 해외시장을 잠식하는 경쟁자로 성장했다. 자동차·조선·철강은 물론 스마트폰까지 모두 중국의 덫에 빠져 있다.

한때 중국 시장 점유율 5위를 넘나들던 현대차 베이징 1공장과 기아차 옌청 공장은 올해부터 생산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처럼 다른 제품들도 중국에서 순식간에 존재감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업은 고강도 구조조정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끝에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이 추진된다. 중형 조선사 성동조선은 파산이 초읽기 상태다. 게다가 철강은 중국 경제의 둔화로 수요가 위축되는 데다 중국산 철강제품이 세계 시장에 범람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경제 체력의 종합지표인 성장률이 회복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올해 6월 세계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성장률을 기존 2.5%에서 단박에 2.0%로 낮췄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기업 부담이 우려된다”면서다. 골드만삭스 역시 2.3%에서 2.1%로 조정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회복이 더디고 수출 부진이 계속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였다. 기획재정부조차 올해 성장 목표를 기존 2.6~2.7%에서 2.4~2.5%로 낮췄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이것도 높다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을 더 늘일 여력이 많지 않다. GDP는 국내 투자와 소비에다 정부 지출과 수출입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합이다. 투자해야 소비가 늘고 수출도 증가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띨 텐데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다.

경제 성장의 견인차인 설비투자는 물론 건설투자까지 지난해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 올해도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여파로 소비와 고용은 모두 저조한 상태다. 최저임금 과속인상과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면서 한국 경제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다는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의 제조업 직접투자는 예년의 두 배가 넘는 164억 달러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같은 반(反)시장·반기업 정책이 기업하기 나쁜 환경을 조성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경제 체력 급속히 저하

해외투자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미국·중국·일본 같은 경제대국에 비해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 기업들은 해외 직접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현대차가 미국·중국·러시아·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삼성전자가 거대 소비자를 겨냥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이유다. 하지만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산업 공동화 문제가 발생한다. 해외 직접투자는 그만큼 국내에서 일자리를 없애기 때문이다. 청년이 취업하지 못하고 50세만 넘어도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다.

전체 고용률은 큰 변동이 없지만, 산업현장의 허리인 30·40세대의 일자리 감소는 심각하다. 이 흐름은 비단 문 정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들 허리 세대는 이미 2015년부터 취업자가 감소했고 문 정부 들어와서 노인 일자리를 제외한 실질적인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투자 환경이 나쁜 국내에서 공장을 짓지 않고 해외 직접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는 30·40세대를 받아줄 만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식으로 해마다 산업현장의 허리 일자리가 줄어들어서는 경제가 지탱하기 어렵다.

■ 시급한 응급조치 세 가지

「 한국 경제는 이런 흐름을 바꿀 비상구가 필요하다. 특효약은 없지만 당장 해야 할 응급조치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출 다변화다. 사드 보복을 통해 드러난 대로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심화하면서 근본적인 취약점을 드러냈다. 롯데마트가 중국에 점포 99개를 열었으나 대부분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철수한 것은 사회주의 체제 국가에 대한 투자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기업들은 빠르고 신속하게 동남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로 시장을 넓혀 나가야 한다.

둘째는 획일적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같은 반(反)시장·반기업 정책의 즉각적인 중단이다. 그 부작용은 차고 넘칠 만큼 충분히 확인됐다. 이를 기본 전제로 과감한 규제 개선을 해야 한다. 시대착오적 규제는 사실 지금 한국 경제가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가장 큰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글로벌 100대 신기술 가운데 57개는 한국에서 불법이거나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미·중에서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알리바바·텐센트 같은 거대 플랫폼 신기술이 쏟아지고 있지만, 한국에선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세우지만, 말만 무성하고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꿈쩍도 하지 않는 규제 탓이라고 봐야 한다.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불화수소 공장도 국내에 지으려고 했으나 시민단체의 반발에 막혀 좌절됐다.

셋째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국내 귀환(리쇼어링)이다. 해외 진출이 가속할수록 산업 공동화의 부작용이 커진다. 미국·일본처럼 법인세를 낮춰주고 반시장적인 정책을 철회해 추가적인 탈한국 러시를 막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것도 산업 공동화를 막고 리쇼어링을 촉진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의 국산화 수준도 높여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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