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 "수확해도, 폐기해도 모두 적자"..아로니아 농민들, 왜 수확 포기하나

김우영 기자 입력 2019. 7. 8. 17:19 수정 2019. 7. 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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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니아값 3만5000원→1000원 폭락
"수확하면 되레 적자"…아로니아 농민들 수확 포기
농민들 "FTA 탓…정부서 책임져라"
정부 "가격폭락은 과(過)생산과 수요하락 때문"

전북 순창에서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는 김영수(57)씨는 요즘 일손을 놓고 있다.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수확철이 시작되지만 지난해 가격 폭락으로 팔지 못한 아로니아 30톤(t)이 아직도 창고에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아로니아는 김씨가 2010년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1㎏당 3만5000원까지 받으며, ‘수퍼푸드’ ‘왕의 열매’로 불렸다. 하지만 올해는 1㎏당 1000원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가격 폭락에 이젠 경매장마저 폐쇄됐다. 수확을 하든, 폐기를 하든 모두 적자를 보는 상황이다.

충남 보령 아로니아 농장주 윤칠선(59)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윤씨는 2013년 큰 기술이 필요없고 소득작물이라며 지인의 추천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2만1500㎡(약 6500평) 규모의 농장에 아로니아 나무 5000주를 심었다. 하지만 아로니아 값 폭락으로 수천만원의 적자를 봤다. "냉장고만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지난해 수확한 아로니아 25톤(t)도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정부가 저금리 대출·보조금 지원 등으로 장려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농가들이 누굴믿고 땀을 흘려야 합니까." 윤씨의 얘기다.

윤칠선씨가 운영하는 충남 보령의 아로니아 농장. 이달 수확 철을 앞두고 아로니아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윤칠선씨 제공

최근 아로니아 가격이 폭락하면서 재배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아로니아 농민들로 구성된 전국아로니아연합회는 지난 4월 비상대책위를 꾸렸고, 지난달 24일에는 국회를 찾아 정부의 긴급 수매(收買)·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는 9일에도 국회를 방문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할 예정이다.

◇3만5000원→1000원…"FTA 탓" vs "수급조절 실패 탓"
8일 전국아로니아연합회에 따르면 아로니아 값은 올해 1000원대 수준. 사실상 재배농가 대다수가 수확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임대한 땅에 아로니아 나무를 심었던 농장주들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줄파산했다. 현재 전국 아로니아 농가 7000여 가구에서 팔지 못해 쌓아둔 아로니아만 2500t에 달한다.

농민들은 아로니아값 폭락의 원인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수입 증가를 지목했다. 떫은맛 때문에 생과(生果)를 먹기 어려운 아로니아는 보통 분말이나 농축액으로 섭취한다. 그런데 2011년 발효된 한-EU(유럽연합) FTA 이후 폴란드에서 아로니아 분말·농축액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생과는 FTA 수입금지품목에 해당하지만, 가공식품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정완조 전국아로니아연합회 비대위원장은 "국내 아로니아 생산량도 매년 늘어나는데, FTA로 폴란드산 분말까지 잔뜩 수입되면 우리나라 농민들은 사실상 죽으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반면 정부는 "FTA 문제보다는 아로니아의 수요 감소가 주요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아로니아 수입이 늘어난 시기는 한-EU FTA가 발효된 2011년부터가 아닌, 2015년부터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로니아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생산과 수입 등 공급량이 늘었지만, 건강식품의 특성상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수요가 급감했고, 이것이 가격하락의 배경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윤칠선씨가 지난해 수확한 아로니아 열매가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돼 있다. /윤칠선씨 제공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492곳이던 아로니아 재배가구수는 지난해 4753곳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덩달아 생산량도 74배나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관계자는 "수입산 아로니아 분말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아로니아 생산량은 포화상태"라며 "수급조절이 되지 않으면 가격 하락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정부가 수매하라" vs "생과 수입아니라 피해증명 어려워"
고사(枯死) 상태에 놓인 아로니아 재배 농민들은 정부에 ‘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 아로니아 재고량인 2500t에 대한 정부의 긴급 수매·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수확한 아로니아만이라도 시급히 폐기해 올해 수확의 숨통을 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로니아연합회는 재고 열매에 대한 수매·폐기 비용 약 100억원에 대해 50%는 정부가, 40%는 지자체가, 나머지 10%는 농민들이 부담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로니아농민들의 사정을 전해 들은 국회에서도 오는 12일 아로니아 수매 예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청와대 앞으로 달려간 아로니아 농장주 200여명은 “정부가 마땅히 FTA 체결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영 기자

하지만 농식품부는 수매를 통한 FTA 피해보전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아로니아 수입품은 100% 가공품으로 ‘생과'를 수입한 것이 아니라서 수매나 직불금과 같은 직접 지원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농식품부는 최근 가격폭락은 소비부진과 생산량 급증 때문이지 FTA와 관계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일부 농작물에 대해서만 특혜를 줄 경우 다른 농작물과 형평성 논란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매나 보상금 등 직접 지원이 아닌, 상품 개발과 같은 간접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현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아로니아 특유의 맛 때문에 기호성이 떨어지는 만큼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2차 상품개발이 필요하다"며 "섭취를 용이하게 하는 제품의 개발은 정부 지원이 됐든, 대학들과 협업을 하든, 민관학이 협동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로니아 농민들이 정의당 농민위원회와 함께 정부에 아로니아 열매에 대한 정부의 수매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아로니아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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