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억울한 국가폭력 피해자들 위해 '수상한 집' 마련했죠"

2019. 7. 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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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제주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광보씨

군사독재시절 두번이나 억울하게 ‘조작간첩’ 피해를 당한 강광보씨가 최근 제주시에 마련한 ‘수상한 집’의 전시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허호준 기자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했어요. 재심을 통해 받은 보상금을 의미 있게 쓰고 싶기도 했고요. 마침 재심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어요.”

9일 제주시 도련3길 ‘수상한 집’에서 만난 강광보(79)씨의 얘기다. 이곳은 강씨의 노부모가 “(아들이) 감옥에서 나오면 누울 곳은 있어야 한다”며 지어 놓았던 작은 집 ‘광보네 집’ 위에 새 집을 얹은 형태로 만든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기억공간이다.

1962년 일본 밀항 17년뒤 강제귀국
중정·경찰 끌려가 65일간 ‘구금’
85년 보안대 고문에 ‘간첩’ 옥살이
재심투쟁 6년만 2017년 무죄 확정

배상금·자택 기부 기억공간 ‘광보네’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등도 동참

지난 6월22일 제주시 도련3길에 개관한 ‘수상한 집-광보네’는 강광보씨의 부모가 지어놓은 작은 단층 ‘광보네 집’에 한층을 더 얹은 독특한 형태로 세워졌다. 사진 허호준 기자

‘수상한 집’은 강씨가 무죄판결로 받은 배상금과 집을 내놓고, 몇몇 단체와 시민들의 모금이 더해져 지난 6월 완공했다. ‘지금 여기에’의 변상철 사무국장은 “제주도의 조작간첩 피해자들을 만나고 재심 신청을 도와드렸다. 제주에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은 많은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초를 알리고 나누는 공간은 없었다. ‘수상한 집’은 국가폭력으로 인생을 빼앗긴 피해자들이 스스로 삶을 기록하고 모두가 기억하게 하고자 만들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고문으로 간첩이 된 피해자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 어려웠던 1950~70년대 제주 사람들은 친·인척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강씨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누가 (일본에) 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친구들이 사라졌다. 오죽했으면 일본에서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겠나.”

강씨는 고교 3학년 되던 1962년 5월 백부가 있는 일본으로 밀항했다. 백모는 4·3항쟁 때 교사였던 가족 2명이 경찰에 희생된 아픔을 갖고 있었다. 그 시절엔 재일동포 상당수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직·간접으로 관련을 맺었다. 이 때문에 제주에는 강씨와 같은 조작간첩 피해자들이 많다.

강씨는 오사카 백부의 집에 살면서 손가방 장식물 제작공장 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고향으로 보냈다. 강씨는 백부가 조총련 활동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제주 출신인 지금의 아내(77)를 만나 1970년 결혼했다. 2남 1녀의 가정을 이루며 안정을 찾아가던 1979년 5월10일 그는 돌연 불법체류자로 적발됐다. 사촌형의 도움을 받아 자비 출국 조건으로 풀려난 그는 그해 7월14일 제주로 강제귀향했다.

국가폭력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강씨를 기다린 것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었다. 구타에 못이겨 자술서를 쓴 그는 사흘 뒤인 그해 7월17일 풀려났다. 하지만 8월 말이 되자 제주경찰서에서 그를 호출했다. 첫날은 구타 없이 자술서를 쓰도록 한 뒤 찢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이튿날부터 악몽 같은 날이 이어졌다. 무릎이 꿇린 상태에서 각목을 끼워놓고 경찰 2명이 허벅지에 올라탔다. 며칠씩 잠을 재우지 않거나 수갑을 채워 책상에 묶어놓고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자술서도 계속 쓰게 했다. 이 사이 ‘10·26 사태’가 일어났고,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다. 65일 동안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받았던 강씨는 풀려난 뒤에도 3년 남짓 감시를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85년 12월, 이번에는 보안대 직원들이 “잠깐 조사할 게 있다”며 또 다시 그를 끌고 갔다. 그날은 보안대 사무실에서 자술서를 쓰고 바로 나왔는데, 한달쯤 지난 이듬해 1월 아침 식사 중 또다시 보안대 직원 3명이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지하실로 끌려갔다. 계장이란 사람이 “여기는 벙어리도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이고,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인간도살장이다”고 협박했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몽둥이 구타는 물론 구두를 벗어서 강씨의 얼굴을 가격하거나 침을 뱉는가 하면, 각목 끼워 넣고 무릎 짓밟기 등 갖은 고문을 가했다. 며칠 뒤 오전 10시께 군의관이 청진기로 진찰한 뒤 ‘이상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를 의자에 앉혀 발목과 손목을 묶은 뒤 젖은 수건을 발밑에 깔고 전기를 돌렸다. 기절를 반복한 끝에 정신을 차려보니 엄지에 인주가 묻어있었다.

강광보씨와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가 시민펀딩으로 모금해 완성한 ‘수상한 집’ 안에는 강씨가 옥중에서 읽었던 책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허호준 기자

강씨는 1986년 8월18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으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고 광주와 전주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91년 5월25일 풀려났다. 그는 또 다른 조작간첩 피해자인 제주 출신 강희철(62)씨가 2009년 재심 소송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낸 사실을 알고 2012년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와 함께 재심을 준비해 2017년 7월17일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수상한 집의 내부는 ‘광보 이야기’와 ‘상실의 시대’, ‘지금 여기에’의 전시공간과 카페, 게스트룸으로 구성됐다. 전시공간에는 강씨가 옥중에서 감명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인 재일동포 김석범의 ‘4·3’ 소설 <화산도>와 리영희 선생의 <자유인> 등이 눈길을 끌었다. 오재선, 강희철씨 등 또 다른 제주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텍스트, 영상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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