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네스티 보고서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은 대규모 '살인 사업'일 뿐"

노도현 기자 2019. 7. 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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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앰네스티 보고서, 실상 고발
ㆍ법적 절차 없이 작성된 명단
ㆍ살인 대상 찾는 지침 역할로

지난해 11월20일 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35㎞ 떨어진 산호세델몬테의 한 가정집에서 총성이 들렸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조반 막타농(30)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마약과 총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그가 1년 넘게 마약에 손대지 않았고 총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막타농이 ‘난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경찰이 그에게 돌아서라고 한 뒤 총을 겨눴다고 증언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8일(현지시간) 필리핀의 마약 단속 실상을 고발한 ‘그들은 그저 죽일 뿐: 마약과의 전쟁에서 자행되는 초법적 처형과 인권침해’ 보고서를 공개하고 유엔이 즉각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앰네스티는 지난해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마약 단속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사건 20건과 관련된 경찰, 목격자, 유족 등 58명을 만났다. 보고서는 “경찰은 어떤 법적 절차도 없이 작성된 ‘마약 감시 대상’ 명단을 바탕으로 힘없는 시민들을 살해하고도 전혀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사진)은 2016년 6월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왔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최소 6600명이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과 연관된 무장 괴한에 의해 수천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고 앰네스티는 전했다.

앰네스티가 조사한 사망사건 20건 가운데 최소 15건의 피해자들이 당국의 ‘마약 감시 대상’ 명단에 올랐다. 앰네스티는 “지역 공무원들은 복용자, 밀매자 등을 분류한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는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 명단은 경찰이 체포 또는 살인 대상을 찾는 지침이 됐다”고 말했다. 마약 판매나 복용 여부와 관계없이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지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1일 필리핀의 마약 단속 실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한다. 필리핀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예비조사에 반발해 지난 3월 ICC를 탈퇴했다. 니콜라스 베클란 앰네스티 동·동남아시아 지역국장은 “마약과의 전쟁은 여전히 대규모 ‘살인 사업’일 뿐”이라며 “유엔이 단호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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