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은 라쿤들 서로 공격하고 염증에 피부 벗겨진 왈라비가 있는 '카페'
[경향신문] “배설물 줄이려 물 주지 않은 듯”
대소변과 세재 냄새 섞여 악취
다른 종인 미어캣, 왈라비 합사
“세균 감염 왈라비 격리 없이
지난달까지 방문객들에 노출”
전국 30여곳···관련법 국회 표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공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라쿤 10여마리가 보였다. 라쿤 네다섯 마리 정도는 밖으로 나갈 기회를 노리면서 문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서로 공격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동물카페에 함께 방문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물을 주지 않아서 라쿤들이 밖으로 나가 물을 찾으려고 문앞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물을 주지 않는 것은 배설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코를 찌른 것은 배설물, 동물의 체취, 청소 세제 등의 냄새가 섞인 악취였다. 10여종 50여마리의 동물들의 냄새와 이들이 배설하는 대소변 냄새에다, 카페 직원들이 끊임없이 뿌리는 세제 냄새에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처럼 비위생적인 환경에 사는 동물카페 동물들 중에는 건강상태가 매우 악화된 개체도 눈에 띄었다. 닭, 미어캣, 토끼 등과 같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왈라비가 대표적이다. 이 카페는 캥거루과인 왈라비를 두 마리 보유하고 있다. 현재 토끼들과 함께 격리된 한 개체는 얼굴에 심한 염증을 앓고 있었다. 세균 감염으로 인한 염증이 얼굴 한쪽을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이 대표는 “지난달에 왔을 때는 격리돼 있지도 않아서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그대로 노출돼 있는 상태였다”며 “해당 왈라비의 상태를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국립생태원, 야생동물보존협회(WCS)의 수의사들에게 문의해보니 감금 상태의 캥거루과 동물에게 자주 발생하는 질병으로 과다 사육과 배설물 감염 등 부실한 관리가 원인이 되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왈라비뿐 아니라 대부분 동물들에게 좁은 실내 공간에서 사육되는 것은 큰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동물카페에는 좁은 카페 내에서 20여마리의 개들이 쉴 곳조차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새끼 라쿤들은 어항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 안에 갇혀 있었다. 미어캣과 코아티가 서로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라쿤들 다수는 꼬리가 잘린 상태였다. 서로 다른 종의 합사는 동물원에서도 세심한 준비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동물카페에서는 아무런 주의없이 다른 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스라엘 연구진은 지난 4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미생물 및 전염병 학회’에서 방문객이 직접 먹이를 주고, 만질 수 있는 체험 동물원들의 동물들이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의 동물카페 역시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연구진이 시료를 채취한 체험 동물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동물카페는 국내에 30여곳 정도로 추산된다. 동물복지는 물론 이용객의 안전, 공중보건, 생태계 교란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국내에는 카페에서 동물을 전시하는 업태를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 동물카페가 법·제도의 공백을 이용한 변칙적인 형태인 셈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등록된 동물원·수족관 외의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영리 목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금지할 방침이고, 국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장기화된 국회 파행으로 법안 통과는 언제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야생동물 사육에 전문성을 갖춘 시설이 아닌 카페, 일반음식점, 기타 영업장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적절한 시설과 관리 능력을 갖춘 시설만 국가의 관리를 받는 동물원·수족관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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