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백기사'까지..복잡해진 아베發 나비효과
"진짜 제재위반은 일본" 물증 확보..美 관망서 중재로 입장 변화
러시아, 불화수소 제공 용의..뜻밖의 우군에 분위기 반전
'양비론' 사라지고 '단일대오' 재편..하태경 '좌우합작' 촉구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경제보복 조치가 발표된 지 불과 10여일이 지났지만 예상 밖 변수들이 잇따르며 롤러코스트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초반 승기는 기습적인 수출규제에 나선 일본이 잡았다. 우리 경제의 급소인 반도체 산업을 전격 공략함으로써 사전 대비가 안 돼있던 정부와 산업계를 거의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아베 내각은 이후로도 쉴 새 없이 숨통을 조였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중재위 설치 요청의 답변시한인 18일 이후에는 '화이트 국가' 제외 등 2차 보복을 경고한 상태다.
한미일 3각 협력의 정점에 선 미국의 중재가 유력한 해결책이지만 미국은 선뜻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아베 내각은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신뢰관계 손상을 빌미로 삼은데 이어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 혐의까지 뒤집어씌우며 여론몰이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무역규제로 연결시킨 것 자체가 무리수였고, 여기에 대북제재 위반이란 억지 주장까지 더하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역공을 자초했다.
아베 내각의 거친 공세에 당혹해하던 정부와 청와대는 이를 기점으로 일대 반격에 나섰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2일 대북제재 위반 혐의에 대해 한일 양국 모두 국제기구의 공동조사를 받자고 제의했다. 일본 측이 가짜뉴스까지 동원한 것이 패착이란 확신이 들자 이를 약한 고리 삼아 공격을 집중한 것이다.
NSC는 조사 결과 우리 측 잘못이 있으면 즉시 사과와 시정조치를 하겠지만, 잘못이 없다면 일본 측은 응당 사과는 물론 경제보복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NSC는 또 일본의 대북제재 위반 사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강조하며 압박했다.
이는 한국은 대북제재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고 오히려 일본의 위반 사례가 심각하다는 '물증'이 제시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일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날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를 근거로 일본에서 1996~2013년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기술적 세부 검토 등이 필요하지만 대체 공급선 확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일 협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분위기도 반전되고 있다.
전통적 한일 분업체계에 익숙한 산업계로선 러시아의 뜻밖의 '개입'에 일단 보수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측이 끝내 물러서지 않을 경우에는 대안이 없다.
아베 내각의 강압적 보복 조치가 우리로선 불가피하게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도를 낮추는 '디커플링'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한때 '미·일 반도체 밀약설'이 제기될 정도로 이번 사태에 미온적이던 미국 측 입장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에 급파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1일(현지시간) 한미일 3자 고위급 협의 추진 사실을 전하며 한미 양국은 매우 적극적인 반면 일본은 소극적 태도라고 밝혔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도 12일 대북제재 위반 여부에 대한 한일 양국의 공동조사를 제안하며 미국 측과의 사전 공감대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미국이 내심 일본을 한국보다 상위 파트너로 보기 때문에 개입을 해도 한국의 손을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타격이 미국 입장에선 나쁜 것도 아니어서 당분간 관망세를 취할 것이란 관측도 많았다.
하지만 일본 측이 대북제재라는 민감한 안보 문제까지 들고 나오며 한미일 3각 공조가 흔들릴 조짐이 나타나자 적극 중재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1~21일 아시아 방문 기간에 한미일 고위급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12일 CBS <김현정의뉴스쇼>에 출연해 "한일 반도체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나라는 중국"이라며 "미국이 중국 압박이라는 최상위 목표가 있는데 지금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그냥 용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도를 벗어난 아베 내각의 억지 주장은 한국 내 여론 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일본 못지않게 우리 정부 잘못도 크다는 '양비론'이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됐지만 급속히 힘을 잃고 대일(對日) '단일대오'가 형성되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일본 호감도는 12%로 1991년 이래 28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
여기에는 우리 보수 정치인의 주장이 보수 언론을 통해 전파된 뒤 일본 극우 언론에서 확대재생산 되는 '조원진-조선일보-산케이 커넥션'이 드러나며 여론의 공분을 산 것이 한몫을 했다.
보수정당 소속인 하태경 의원이 "국가를 지키는데 보수가 앞장서라"면서 일본에 대한 '좌우합작'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베 내각의 경제보복이 시작 단계부터 예상 밖의 '나비효과'를 부르며 파장이 커지는 점으로 미뤄 조만간 중대 분수령을 맞을 가능성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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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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