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연립 전세부터 신혼 시작하자" 이 말에 결혼 깨졌다

김도년 2019. 7.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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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결혼 포기' 현상 통계로 읽기


"학자금 대출 갚다보면 돈 없어…결혼 포기할 수밖에"
양가 상견례를 준비하던 직장인 권모(37)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이별했다. 여자친구 부모님이 결혼에 반대한 탓이다. 권씨는 취업이 늦어 모은 돈이 얼마 없었다. 신혼 살림은 자취하고 있는 서울 변두리 방 두칸짜리 빌라 전세에서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 부모는 "최소 아파트 전세"는 있는 사윗감을 원했다. 여자친구는 권씨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부모 반대를 무릅쓸 용기는 없었다.

청년단체 '청년하다'의 유지훈 주거지원센터장은 "학자금 대출 상환, 취업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져 결혼 적령기가 와도 모은 돈이 없는 청년이 많다"며 "부모 도움을 못 받으면 사실상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저출산 문제 근원에는 혼인율 감소가 있다. 청년층이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게 된 이유로 개인주의 성향, 책임감 저하 등을 꼽기도 하지만, 핵심 원인은 결국 경제(돈)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13일 통계청 등이 발표하는 청년 관련 통계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이상적 남편감 '월소득 300만원 이상'인데, 남자 37%만 해당
우선 청년층 남녀 모두 현실보다 더 많은 소득과 재산을 예비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청년층의 주거 특성과 결혼 간의 연관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19~39세 미혼 여성(1294명) 74.2%가 이상적인 남편감의 월소득을 '300만원 이상'(300만∼400만원 미만 44.3%, 400만원 이상 29.9%)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재 일하고 있는 15~39세 남성 가운데 이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 비중은 37.1%(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에 불과했다. 남성 10명 중 6명은 여성의 '눈높이'에 미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벌어들이는 월소득은 ▶100만원 미만이 6.4% ▶100만~200만원 미만 18% ▶200만~300만원 미만 38.5%▶300만~400만원 미만 24.3% ▶400만~500만원 미만 7.3% ▶500만원 이상 5.4%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반면 미혼 남성(1708명)의 절반 이상(63.3%)은 아내감의 이상적인 소득 수준을 200만원 이상으로 꼽았다. 여성보다는 눈높이가 낮지만, 이에 부합하는 여성도 47.2%로 절반에 못 미쳤다.

미혼 남녀 모두 신혼집 '아파트' 선호…남자 29%만 아파트 거주
미혼 남녀 모두 신혼집으로 '아파트'를 절대적으로 선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남자 77.6%, 여자 80.8%였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1인 가구 미혼 남성(만 19~39세)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29.1%(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불과했다. 여성 역시 23.0%다. 나머지 청년들은 다세대 빌라와 원룸·오피스텔 순으로 거주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결혼 망설인 이유 '결혼비용' 압도적…자유로운 솔로? 싫어!
청년층이 쉽사리 결혼을 결정하지 못한 이유로는 '결혼비용'이 압도적 1위(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였다. 15~39세 남성의 10명 중 3명(29.6%)이 결혼 준비를 할 때 망설인 경험이 있는데, 그 이유로 '결혼비용'을 꼽은 사람은 71.7%였다. 여성 역시 61.3%가 결혼비용을 문제 삼았다. 싱글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기 싫다'는 이유로 결혼을 망설였다고 응답한 사람은 남성 6.5%, 여성 11.1%에 불과했다. 청년층 가치관 변화보다 현실적인 경제 문제가 혼인율 감소에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 결혼을 한 신혼부부의 소득은 미혼 남녀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통계청 '신혼부부통계'를 보면, 혼인 1~5년차 부부의 연소득은 3000만~5000만원이 26.1%로 가장 많았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가구당 매월 250만원~416만원 정도를 버는 신혼부부가 가장 많은 것이다. 이는 39세 이하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506만원)보다 적다. 39세 이하 평균보다 낮은 소득으로 신혼 살림을 꾸리는 부부가 다수인데도 미혼 청년의 결혼 이후 가계 소득에 대한 기대치는 이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고소득 일자리 늘리거나, 가계 지출 저부담 구조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미혼 남녀가 미래 배우자의 경제력 기대치를 실제 현실에 맞추는 게 좋지만,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혼인율 제고 대책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청년층 기대를 충족할 만큼 청년 실업을 줄이고 고소득 일자리를 늘리거나, 주거·출산·육아·사교육비 등 가계의 지출 항목을 저부담 구조로 개선하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만으론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 투자를 늘려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혼인율도 높아질 수 있다"며 "결혼비용 1순위인 주거비도 서울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교통망을 확충해 집값이 싼 서울 근교에서도 출·퇴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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