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누가 일본 불매운동 불씨를 꺼뜨리나

반기웅 기자 입력 2019.07.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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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나친 강요는 반감 불러 동력 상실 우려… 기업들 애국 마케팅도 본질 흐려

아베 정권의 ‘아무 말 대잔치’가 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이후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 정부의 잇따른 ‘도발’로 확산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에 머물던 불매운동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의 참여와 1인 시위를 통해 오프라인까지 진출했다.

이와 동시에 한편에서는 불매운동 ‘무용론’도 쏟아지고 있다. 7월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일본 경제제재 영향 및 해법 긴급세미나’에서 한경연 측은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취소는 분쟁을 해결하기보다 악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불매운동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불매운동의 성공이 ‘지속성’에 달려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불매운동은 일단 오래 가야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여행 자제가 계속돼 누적 방문객이 줄면 아베 정권에 부담을 지울 수 있다. 지역 항공과 숙박, 요식업이 맞물려 있는 관광산업군 종사자들이 현 집권당의 주요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한 불매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불매운동의 동력을 꺼뜨릴 위험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누가 성숙한 불매운동을 방해하는 걸까.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7월 5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일본여행 인증사진으로 비난 받기도 서울 은평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ㄱ씨(39)는 최근 주류 거래처에 일본 아사히·기린 맥주에 대한 발주를 중단할 것을 통보했다. 일본 불매운동에 동참하자는 취지에서다. 매장 내 일본 맥주에 대한 고정 수요는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내친 김에 7월 말 3박4일 일정으로 잡아둔 일본여행을 취소하려고 알아봤더니 예상 해약금만 100만원이 나왔다. 당초 취소 불가를 전제로 숙소 예약을 해놓은 탓이었다. 고민 끝에 ㄱ씨는 계획대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ㄱ씨가 일본여행 계획을 알리자 주변에서 쓴소리가 들렸다. 일본여행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카페에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개중에는 여행객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여행 가면 매국노’라고 적힌 플래카드까지 등장했다. ㄱ씨는 “딴에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불매운동에 동참했는데 여행간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것 같아 불쾌하다”며 “지금 같아선 다시 일본 맥주를 팔고 싶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에 대한 강요는 반발을 부른다. 일본 불매운동이 ‘나 스스로 일본 제품 쓰지 않고 가지 않겠다’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소비해선 안 된다’로 확대되면 불매운동의 힘은 되레 약화될 수 있다. 불매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잠재적인 참여층을 이탈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여행 인증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비난에 시달린 배우 이시언씨가 겪은 일 역시 불매운동의 진정성을 훼손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일본 불매운동을 독려하는 일부 단체에서는 운동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주유소를 상대로 일본차 주유 거부 운동마저 벌어지고 있다. SNS에서는 주유 거부 운동에 불참하는 주유소 역시 불매하겠다는 경고문이 나돈다. ‘일본차를 타면 매국노’라는 구호를 내세워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우리 방식이 과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일본 제품을 이용하면 이완용 똘마니’처럼 더 강한 표현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점잖게 나가기보다 세게 나가야 캠페인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 원장을 역임한 박명희 소비자와함께 대표는 “불매운동은 강요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지나친 강요는 오히려 불매운동에 대한 반감을 불러 내부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배드림

민간 교류 중단은 신중히 판단해야 불매운동 시기에 맞춘 기업들의 애국 마케팅도 불매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랜드월드의 SPA브랜드 ‘스파오’는 최근 로보트 태권브이와 협업한 상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이랜드 측은 스파오와 로보트 태권브이가 일본 및 글로벌 브랜드가 장악하던 국내 시장에서 ‘토종’ 콘텐츠로 자존심을 지켜온 국가 대표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로보트 태권브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 제트의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다. 지난해 법원(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광영 부장판사)이 태권브이가 마징가 제트를 표절한 게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태권브이의 여러 부분을 마징가 제트에서 차용한 것은 원작자도 인정한 사실이다.

스파오는 그동안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 브랜드와 협업을 해왔다. 지금도 ‘드래곤볼 Z’와 ‘크레용 신짱’(짱구는 못말려)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토종’을 강조하는 스파오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불매운동과 기업 애국 마케팅이 함께 맞물려 진행될 경우 불매운동의 취지가 훼손된다”며 “불매운동이 마치 기업 상술의 일부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의 여파는 민간교류 영역까지 미친다. 당장 일본 지자체와 교류를 하고 있는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은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에 나서고 있다. 경기 파주시는 이달 일본 자매도시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방문 일정을 취소했고, 수원시는 아사히카와시와의 자매교류 기념행사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취소한 행사는 없지만 현재 국민 여론을 감안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교류와 일본여행 중단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매운동보다 민간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은 “민간교류 단절은 백해무익하다”며 “한국 편이 돼줄 양심적인 일본 시민과의 교류를 막아봐야 돌아오는 건 ‘반한’감정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추가 규제가 시작되면 불매운동은 지금보다 극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만약 일본의 2차 보복과 화이트리스트 삭제가 이뤄져 추가 타격을 입게 되면 불매운동 수위와 반일감정이 심해질 것”이라며 “양국 국민 간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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