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대 장정욱 교수 "일본 불매운동, 관광에 집중해야 효과볼 것"

반기웅 기자 2019. 7. 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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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일본 정부는 한국보다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국 정부와의 대립은 아베 정권이 원하는 개헌의 동력이 된다. 아베 정권이 자국 기업도 피해를 입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을 감수하면서까지 규제 강도를 높이는 이유다.

정부와 재계가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이에 대해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은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며 이번 불매운동 역시 실패할 것으로 내다봤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효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불매운동은 과연 필요한가.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7월 8일 전화로 이뤄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일 한국을 상대로 강경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일본 분위기는 어떤가. “지금 일본은 참의원 선거 모드다. 뉴스 대부분은 참의원 선거 얘기이고 한국 관련 이야기는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방침에 아직까지 정부 대 정부의 ‘강경대응’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 언론도 사안을 확대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일부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만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아직까지 일본 국민들은 대(對)한국 수출규제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일부 우익세력들만 앞서서 여론 몰이를 하는 수준이다.”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고 하는데 오히려 지지율은 떨어졌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 이석우 기자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2%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국과 무관하다. 한국에 대한 수출제재 방침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이뤄진 설문조사 결과다. 이번 지지율 하락 원인은 일본 국민연금에 있다. 그동안 자민당에서 ‘국민연금은 100년 이상 유지된다, 추가 비용부담 없이 노후보장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 해왔는데 정부 조사에서 연금 재원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금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베 총리와 자민당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의 도발에 정부가 반응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안은 중·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대응해야 한다. 적어도 7월 21일 참의원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는 게 좋다. 한국 정부와의 대립은 자민당이 바라는 바다.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서 대응해야 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7월쯤 타협에 나설 것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두 나라 간 갈등이 계속되면 국제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대화를 하려는 제스처를 보일 것이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

-도쿄올림픽 전까지 일본이 지금과 같은 스탠스를 유지한다는 건가. “그렇다.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선거 이후 아베 총리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미·일 무역교섭 내용이 공개되는데 미국산 농수산물 관세를 낮추는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1차산업이 타격을 입기 때문에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오는 10월에는 소비세(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으로 일본 국내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아마 연말쯤 일본 경기침체가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자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개헌 동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때리기’를 계속할 것이다. 쿠릴열도 담판에 실패해서 러시아 카드는 쓸 수 없고, 북한과도 ‘무조건 만나겠다’며 대화의사를 밝힌 만큼 ‘북한 때리기’도 할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결국 남는 건 한국뿐이다. 내부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개헌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대한 제재를 유지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총선이 있는 내년 4월까지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강도 높은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들이 나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일본 자동차 불매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맥주나 생필품 같은 소비재 불매운동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일본 자동차 불매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1년에 4만대에 불과하다. 판매량 자체가 많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 그럼에도 자동차 불매를 언급한 이유는 일본 산업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만약 불매운동을 한다면 리스트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자동차가 불매 대상이 됐다고 하면 일본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불매운동 홍보 차원에서는 효과가 있다.”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방식의 불매운동은 어떤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관광은 체감경기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다. 한국 관광객이 한 해 750만명씩 일본을 찾는데 이 숫자가 줄어들면 일본 농수산물 소비는 물론 여행사와 숙박업 모두 타격을 입는다. 일본의 1차산업과 3차산업이 피해를 입는다. 이들 1·3차산업 종사자 대부분은 자민당 지지세력이다. 자민당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지역 공항은 한국 관광객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지역 여론이 나빠지면 정치권에서도 분열이 생길 수 있다. 물론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불매운동이 지속돼야 한다.”

-불매운동이 과열되면 이로울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연예인 퇴출과 같이 ‘한국인 대 일본인’으로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안 된다. 일본산 제품을 부수거나 사용자를 비난하는 것도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다. 극단적인 불매운동은 역효과가 난다. 오히려 불매운동의 생명력을 짧게 만들 수 있다. 조용한 불매운동이 좋다.”

-국민들이 불매운동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여론도 있다. “이번 사안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구조와 기업들의 경영전략도 일조를 했다. 아베 정권은 아시아 패권을 원하고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을 통과시키려면 외부 공격 대상이 필요한데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가장 적절한 공격 대상이다. 특히 일본 의존도가 높은 경제분야, 그 중에서도 반도체 소재분야를 택한 것이다. 핵심 소재를 일본에 100% 가까이 의존하도록 그냥 두는 건 무슨 경우인가. 최소한 30%는 국내 기업에서 자체 생산을 하든가, 비상시를 대비해 다른 공급처를 마련해뒀어야 했다. 기업들이 리스크 대비를 위한 설비투자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은 결과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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