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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서 스러져간 일본제철 '소년 징용공'

이승철 입력 2019.07.13 21:35 수정 2019.07.13 21: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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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또 '대응조치'를 운운하고 있다고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일제의 강제징용이 얼마나 비인도적이었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훈련생'이란 이름으로 일본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숨져간 우리 '소년 징용공'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승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진 속 소년은 앳되기만 합니다.

강압적 분위기 속에, 많은 급료에, 번듯한 직장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홋카이도의 제철소로 향했습니다.

16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그곳에서 미군의 함포 사격을 받아 숨집니다.

비슷한 시기 동원됐던 소년들, 16~17세.

아직 세상을 모를 나이였습니다.

그렇게 소년 4명이 홋카이도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소년의 아버지는 1963년 일본 정부에 편지를 보냅니다.

["사망 확인서와 유골 반환에 대한 부분을 즉시 답해 주기 바랍니다."]

1945년 패전 당시 일본제철에는 모두 5,500여 명의 조선 출신 징용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제철이 만든 징용자 사망 명붑니다.

이와테의 제철소에서는 1945년 7월 14일, 한꺼번에 20명 가량이 숨진 걸로 돼 있습니다.

[다케우치/강제징용 연구자 : "함포사격으로 이렇게 많이 숨졌어요. 이곳에는 전남 출신이 많았어요."]

일본 각지의 탄광 기록에도 동원됐던 소년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5살, 16살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는 밀양에서... 14살도 있네요."]

30년 넘게 관련 문제를 파헤쳐온 연구자는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다케우치/강제징용 연구자 : "기업과 피해자 개인의 민사 소송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사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겁니다."]

소년들이 쓰러져간 지 70여 년, 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하마마쓰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이승철 기자 (neost@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