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日이 다 훑고 김현종 왔다"..한국 '공관 외교' 심각한 구멍

이유정 2019. 7.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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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외교전쟁으로 번지는데
美대사관은 통화유출 사태로 초토화
주일대사관 경제공사는 넉달 째 공석
'외교 미세혈관' 공관 업무 공백 우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도쿄와 워싱턴 등에서 외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해당 국가 공관은 구멍이 뚫리고 정부 또한 기민한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말로는 '총력 대응' '전방위 외교'를 외치지만 머리 따로, 손발 따로다. 뒤늦게 청와대 안보실 김현종 2차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갔지만,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잘 해결하라"였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미 주미 일본 대사관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를 다 훑어 '입장 정리'를 끝낸 다음에야 한국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뒷북을 쳤다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공관 외교력의 격차가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통화유출·위안부 합의 사태로 요직 빈 주미·주일 미 대사관

한ㆍ일 외교 전쟁의 본무대나 다름없는 워싱턴의 정무 라인은 사실상 정지 상태다. 지난 4월 말 한ㆍ미 정상 간 대화 유출 사건으로 말 그대로 공관 전체에 대한 강도 높은 보안 조사가 이뤄지면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직접 유출자인 K 참사관은 물론 K 참사관의 상사인 A 정무공사도 문서 보안관리 소홀을 이유로 징계를 받고 5월 본부로 귀임 조치 됐다. 미 국무부를 주로 담당하던 B 참사관도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국정원 몫의 정무 2 공사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외교 수행 기능은 크지 않다. A 공사의 빈자리는 임시로 공공외교 공사가 겸하고 있지만 올여름 인사철을 앞두고 완전히 기능하지못하고 있다. 주미대사관 정무공사 자리는 외교부 내에서 최고의 요직으로 꼽혀 온 자리지만 이번에는 A 공사의 후임을 희망하는 외교관이 전만큼 많지 않다는 후문이다. 외교부 내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엉뚱하게 '관리 책임'이란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또 물러날 수 있는 자리에 누가 가려고 하겠느냐"란 말이 나온다.

반면 워싱턴 일본 대사관의 수장인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대사는 인적ㆍ물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도 오래 근무해 한국 외교의 약점 또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 소식통은 “워싱턴의 셀럽들을 수시로 공관과 '메트로폴리탄 클럽' 등 사교 장소로 초대해 파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아베의 잦은 만남을 계기로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과 스기야마 대사 간의 끈끈한 핫라인이 구축됐다는 후문이다. 구멍 뚫린 주미 한국 대사관이 미적거리는 사이 주미 일본대사관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압도적 기세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국제여론전의 최전선에서 전투를 이끌어야 할 지휘관들이 보이지 않는 건 주일대사관도 마찬가지.

전임자인 C 경제공사가 지난 정부 때 위안부 합의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국감에서 실명이 거론되며 올해 3월 물러난 이후로 넉 달 째 공사 자리가 비어있다. 개방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계 부처에서 후임자를 찾고 있지만, 적격자를 찾지 못해 지난달 재공모를 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주일대사관 경제공사 자리는 공모 절차를 다시 밟아 오는 18일에 서류심사를 앞두고 있으며 최대한 빨리 채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의혹을 받는 주미대사관 간부급 외교관 K씨가 5월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징계 수위 등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보안심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외교, 심장 펌프질하는데 혈관에 구멍 난 격"

외교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이처럼 주요 직위가 비어있으면 시스템으로 보완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외교부 본부-해외공관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외교이기 때문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외교를 신체에 비유하자면 청와대, 외교부 본부가 주요장기이고 해외공관의 외교관들은 직접 움직이는 손발이나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심장이 세게 펌프질을 해도 혈관에 구멍이 있으면 제대로 혈액을 보낼 수 없고 손발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데 지금처럼 요소요소 빈자리가 바로 그런 구멍처럼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지 대사관이 맥을 못 추는 데는 본부 내에서 미ㆍ일 라인이 위축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동북아시아국(현 아시아ㆍ태평양국)은 외교부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5년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이후 지난 정부의 대일 정책 결정에 관여한 인사들은 다양한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 외교부 안팎에선 “일본 업무 잘못 했다가는 다음 정부 때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한국대사관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해 C 경제공사의 실명이 거론됐다. [사진 윤설영 특파원]


"본보기식 징계, 현장 뛰는 외교관들 위축돼"

“주미 대사관 사태는 청와대가 벼르다 벌어진 일”이라는 게 외교부 안팎의 공통된 분위기다. 하노이 2차 북ㆍ미 회담이 결렬 되고 나서 국내 언론에서 한ㆍ미 공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제기되자, 여권 핵심부에선 “외교부 안에서 조직적으로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러던 차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역 유출 사건이 터졌다. 그러잖아도 그 간 ‘북미 마피아’라고 불리기까지 한 북미국 쏠림 현상을 막겠다며 인사 시즌마다 미국통들은 요직에서 배제되는 상황이었다.

헝가리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탄 유람선이 침몰한 5월 30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한편 외교부는 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주미대사관 소속 참사관 K씨에 대한 징계심의위원회를 이날 오전 개최한다. [연합뉴스]

대사만 보게 돼 있는 친전이라 하더라도 통상 원활한 외교 활동을 위해 해당 업무에 관여하는 공관 직원들은 공유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A 공사를 보안관리 규정 위반으로 징계한 것은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에서 뛰는 외교관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한미 정상 간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국무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외교를 하겠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동남아시아 공관들도 대사들이 비위 사실이 적발돼 줄줄이 징계를 받았거나 해임될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갑질 논란으로 지난달 말 해임된 김도현 전 베트남 대사다. 최근 국내에서 베트남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베트남 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지만, 공공외교를 총지휘해야 할 수장이 없는 셈이다.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핵심 국가로, 신 남방 정책을 위해 우선적으로 우호 관계를 쌓아야 할 나라기도 하다.

유지혜ㆍ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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