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 32번 활보한 성폭행범..느슨한 '전자발찌'

신혜림 2019. 7. 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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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재범 갈수록 늘어
외출제한 수십차례 어겨도
전화 한통으로 경고하고 끝
보호관찰 부실 비판 여론에
법무부 "야간외출 금지 강화"

◆ 여성이 안전한 사회 ◆

경남 마산에 사는 김 모씨(54)는 지난 1월 4일부터 5월 16일까지 음주금지 3차례, 외출금지 32차례 등 총 35번의 전자발찌 부착명령 준수사항을 위반했다. 김씨는 2011년 성범죄로 재판에 넘겨져 7년간의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았고 2013년 출소 이후 전자발찌를 착용해 왔다. 경찰은 35번째 준수사항을 위반한 지난 5월 20일에서야 김씨를 구속했다.

준수사항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더라도 다시 새벽 거리를 활보하는 사례도 있다. 제주지방법원은 올해 1월 이 모씨(59)에게 술에 취한 채 새벽에 배회하는 등 정당한 사유 없이 46회에 걸쳐 준수사항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2016년에도 준수사항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전자발찌 착용자들이 늦은 시간대에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해 여성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법원 명령에 따라 심야시간 외출 제한, 유흥업소 출입 금지 등 특별 준수사항이 적용된다. 하지만 전자발찌 착용자들이 이 같은 준수사항을 수십 번 어겨도 대부분 경고에 그치는 경우가 속출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착용자들의 재범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전남 순천에서 40대 여성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 최 모씨(36)도 강간죄로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고 보호관찰 적용을 받고 있었다. 최씨는 순천시 한 아파트에서 선배의 약혼녀인 A씨(43)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6년 창원에서는 전자발찌 착용자 B씨가 자신의 집에서 60m 떨어진 주택에 침입해 17세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오후 10시 50분께 보호관찰관에게 전화해 "회사 직원들과 회식 후 귀가 중인데 오후 11시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며 야간 외출제한의 일시 정지를 요청했고 보호관찰관은 B씨에게 속아 이를 허가했다. 앞서 B씨는 음주 등 이유로 야간 외출제한 시간을 17차례나 위반해 1차 서면경고, 이후 3차례 위반으로 2차 서면경고를 받았고 그해에도 3차례 위반해 총 23차례 위반한 전력이 있었다.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에 따르면 준수사항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B씨가 규정을 수십 번 위반할 때까지 경고조치에 그쳐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관찰관은 준수사항 위반 상황을 유선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자발찌 착용자가 이를 악용하기도 쉽다. 2016년 강제추행치상 등 전과 4범 C씨는 보호관찰관이 새벽 2시께 귀가지도를 하기 위해 전화하자 "아는 형님과 공원에 있다"고 말했다. C씨는 귀가지도를 피한 후 술에 취해 놀이터 의자에 누워 있는 여성을 30여 분간 지켜보다 성폭행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광주 성폭행 미수사건 피의자 선 모씨(51)는 아예 심야외출 제한 보호관찰 대상자가 아니었다. 성폭력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한 선씨는 지난 10일 오후 9시 40분 광주에서 가정집에 침입해 여덟 살짜리 여아와 어머니를 성폭행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성범죄 전력을 포함해 전과 7범인 선씨는 2015년 출소해 2026년까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다.

착용자의 위치를 24시간 추적할 수 있고 학교 등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곳에 출입하면 중앙관제센터에 통보되는 등 전자발찌는 성범죄 재범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일부 부착자들은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감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여성 범죄피해 예방제도 운영실태'에 따르면 2008년 0.49%(1명)에 불과했던 전자발찌 착용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지난해 2.3%(67명)로 증가했다.

여론은 들끓고 있다. 순천 사건 피해자 A씨의 부친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범인을 사형해 달라"며 낸 청와대 국민청원은 6일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정부는 전자발찌 규정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모든 전자발찌 착용자의 야간 외출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준수사항 위반에 대해서는 "준수사항 중 출입금지구역 위반은 본인이 잘 모르고 지나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릴 수 있다"며 "위반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둬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제도는 감시해서 재범을 방지하는 게 최우선 목적인데, 발찌만 채워놓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내버려두는 게 문제"라며 "특히 상습적인 준수사항 위반은 심각한 범죄 전조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준수사항을 위반해도 즉각적인 대응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일부 범죄자들은 감시당한다는 경각심을 못 느낀다"고 지적했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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