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렌즈에 잡힌 X-37B의 '은밀한 비행'

이정호 기자 2019. 7. 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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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네덜란드 천문학자, 지상 340㎞ 상공의 독특한 비행물체 촬영
ㆍ미 공군서 운용 중인 우주 비행체로 확인…임무는 ‘노 코멘트’

점선 안쪽이 고도 340㎞를 지나는 미국 공군의 비밀 우주왕복선 ‘X-37B’이다. 확대하면 기수와 화물칸 뚜껑의 모양이 식별된다. 랄프 밴데버그 SNS 제공

지난 2일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이며 유명한 우주물체 촬영가이기도 한 랄프 판데베르흐(Ralf Vandebergh)는 구경 25㎝짜리 망원경 렌즈를 하늘의 특정 구역에 고정하고 긴장감을 삼키고 있었다. 판데베르흐는 태양이나 달과 같은 천체는 물론 윤곽이 뚜렷이 관찰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심지어 우주 유영 중인 인간을 찍는 데에도 성공해 이 분야에선 팬층까지 거느린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피사체가 된 물체는 상당히 독특했다.

고도 340㎞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운석 같은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물이라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반듯하게 각이 진 모서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흐릿하게 찍힌 영상을 보정하니 뾰족한 기수와 꼬리날개의 모습도 드러난다. 바로 시험 비행 중인 우주비행체 ‘X-37B’이다.

전체적인 형상은 지금은 퇴역한 미국의 우주왕복선을 닮았다. 비행기 형상인 데다 덤프트럭처럼 기체 천장의 뚜껑이 열리는 구조다. 이륙은 스페이스X 같은 로켓의 힘을 빌리고, 착륙은 비행기처럼 활주로를 활용한다. 전체 덩치는 미니버스와 비슷하고 승무원이 없는 무인 비행체다. 그런데 이 사진은 스페이스닷컴 등 외신을 통해 떠들썩한 얘깃거리가 됐다. 그저 흐릿한 사진 한 장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런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나 스페이스X 같은 민간 우주발사체 회사들은 발사 목적을 일반에 공개한다. 가장 큰 이유는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로켓이라는 전략기술을 다루지만 비군사조직이기 때문에 갖는 특징이다. 그런데 X-37B는 다르다. X-37B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는 사실상 모든 운용 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다. ‘X-37B는 왜 우주에 가는가’라는 대중의 질문에 한 번도 답이 나온 적이 없다. 이유는 바로 X-37B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주체가 미국 공군이기 때문이다. 무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물체이기 때문에 대중의 궁금증에 시원스러운 답이 나올 리 없다. 그런데 이 비행체가 우주를 도는 모습이 처음으로 판데베르흐의 망원경에 잡힌 것이다.

X-37B의 개발 역사는 꽤 길다. 시작은 1999년이었다. NASA가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기체를 제작하는 보잉사, 그리고 미국 공군이 참여했다. 그런데 2004년 돌연 비행체의 개발 주체가 NASA에서 공군으로 바뀐다. X-37B의 ‘은밀한 비행’이 본격적으로 준비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X-37B는 2010년 처음 우주로 간 이후 지금까지 5번째 지구 주변을 도는 비행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에 서 있는 X-37B.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던 왕복선과 닮았지만 덩치는 훨씬 작다. X-37B는 승무원이 탑승하지 않는 무인기다. 미국 공군 제공

더 흥미로운 점은 X-37B가 한번 우주로 올라갔다 하면 좀처럼 착륙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 8개월간 지구 궤도를 돌다 착륙한 첫 비행 뒤 점차 우주 체류 시간을 늘려가더니 4번째 비행 때에는 무려 2년 동안 우주에서 시간을 보내다 내려왔다. 이번 5번째 비행도 이미 지구를 떠난 지 600일이 넘었다.

사실상 위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 때문에 X-37B의 임무를 정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중국의 우주정거장인 톈궁 1호를 감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다. X-37B의 궤도와 톈궁 1호의 궤도가 근접돼 있다는 주장이었고, 미국에선 이를 부인했지만 의혹의 시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톈궁 1호는 201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그래비티>에도 등장한다. 우주망원경 수리 중 자신이 타고 지구로 돌아갈 왕복선이 우주 쓰레기에 파괴되자 주인공인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불럭)가 톈궁 1호의 지상 착륙선을 빌려 타고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에서 톈궁 1호는 우주 쓰레기 탓에 망가진 ISS를 제외하고 지구 궤도에 떠 있는 유일한 정거장이었다. 지난해 지구로 추락하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미국으로서는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고, X-37B가 그 요구를 충족시킨 것 아니냐는 얘기다.

X-37B 측면 모습. 과학계에선 X-37B가 수년간 우주 비행을 반복하면서 대기권 재진입 때 반드시 갖춰야 할 내열 성능 등을 완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X-37B에 좀 더 공격적인 임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공세적인 군사 목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위는 바로 X-37B의 화물칸이다. 모양이 유사한 우주왕복선은 여기에 각종 과학장비를 실었지만 X-37B는 첨단 정찰장비를 실을 수도 있어서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X-37B 운용을 통해 정찰과 감시 등의 임무를 이미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특히 반복적인 비행을 하는 것으로 볼 때 대기권 재진입 시 고열을 견디는 기술적인 난제도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주군 창설을 지시했다. 우주군의 핵심은 우주 공간을 지배할 비행체 개발이라는 점에서 X-37B의 향후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X-37B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날,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지 우려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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