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4억 빚이 23억으로..워터파크 사업 집어삼킨 사채업자들

이진석 2019. 7. 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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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워터파크 사업 좌초 배경에 사채업자 일당의 이권개입
4억 빌려주고 건설사 측 압박해 근저당권 23억 설정 
사채업자들, 사업 부지 경매로 넘긴 뒤 배당으로 23억 챙겨 
투자자들, 배당이의 소송 제기..법원은 사채업자 '위법' 인정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피해자 "수사 종결 안돼 고통"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일대 '영천 휴먼스타월드' 조성 사업 부지/사진=법원경매 사이트 굿옥션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 5만여평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대규모 종합레저타운 사업이 좌초된 배경에는 사채업자 일당의 이권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관련 민사판결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민사소송 2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경찰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4억 빌려주고 근저당권 늘려 23억 배당 챙겨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고법 민사2부(박연욱 부장판사)는 T건축 투자자 A씨 등 9명이 김모씨를 상대로 한 배당이의 소송에서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라며 지난 4일 원고 패소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T건축은 2010년 10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일대 임야 13만9636㎡(약 5만평)를 사들여 이 부지에 경북 최대의 워터파크인 ‘영천 휴먼스타월드’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추가 사업자금이 필요했던 T건축이 사채업자의 돈을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 됐다. T건축의 대표는 사업상 알고 지냈던 이모씨(김씨의 시동생)로부터 그의 친형인 또 다른 이모씨(김씨의 남편)와 지인 전모씨를 소개받았다. 이후 T건축은 전씨를 통해 사채업자 인모씨로부터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연 30% 이자로 총 4억3800만원을 빌리고, 5억원의 차용증을 써줬다. T건축이 차용증을 쓴 같은 날 인씨는 김씨에게 허위로 5억원을 빌려준 것처럼 차용증을 만든 후 T건축 부지와 함께 김씨 소유의 경북 청도군 임야를 한데 묶어 총 13억원의 ‘공동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인씨는 곧바로 이 중 6억5000만원에 대해 동생 이씨에게 6억5000만원의 근저당권부 질권을 설정해 줬다. 근저당권부질권은 근저당권을 담보로 또 다시 대출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에 따르면 인씨는 이씨에게 돈을 빌린 사실도 없었고, 김씨의 청도 임야도 법원감정가액이 당시 1억1600만원에 불과해 5억원 차용에 대한 담보가치가 있을 수 없었다.

이후 인씨는 T건축이 대출의 대가인 3억6000만원의 주식 재매매약정(사채커미션)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지 않자 사업 압박의 목적으로 T건축 부지에 대해 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동생 이씨는 경매를 신청했다.

이에 자금줄이 끊긴 T건축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14년 1월 가처분신청 및 경매 취하를 조건으로 사업 부지에 대한 모든 근저당권을 말소한 뒤 동생 이씨에게 채무원금 23억원이 있다고 합의하고, 이 금액으로 23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1년 만에 4억3800만원의 채무원금이 23억원의 빚으로 불어난 것이다.

이씨는 형수인 김씨에게 이 근저당권부 채권을 넘겼고, 이들은 2014년 11월 사업 부지에 대해 임의경매를 신청해 23억원을 배당받았다. 졸지에 투자금을 모두 잃게 된 일부 투자자들은 김씨를 상대로 2016년 10월 배당이의 소송을 제기했고, 일당 5명을 대구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법원 “폭리행위 악의..근저당권 무효”
투자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1심은 T건축과 김씨 측이 합의하에 23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고 인정한 반면, 2심은 “이 근저당권설정은 이씨 형제, 인씨 등이 탑건축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려는 폭리행위의 악의를 갖고 체결한 것”이라며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T건축에 대해 경매 등 소송취하나 대출을 협조해주는 대가로 23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은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봤다. 너무 부당한 거래 조건이라는 셈이다. 또 이미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을 적용하면서 사채커미션으로 3억6000만원까지 포함시킨 것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 형제는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T건축에 합의를 하지 않으면 서류 위조나 사기 등을 동원해 사업을 망하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합의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는 원금과 이자(원리금) 8억6500여만원을 뺀 나머지 14억3500여만원은 배당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으로 후순위 근저당권자인 A씨 등 투자자들은 피해규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투자금액을 되찾지 못한 피해자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투자자 측은 사채업자 일당에 대해 지난해 12월 사기·부당이득죄·이자제한법위반 등 혐의로 대구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수사결과는 깜깜무소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피해자 측 관계자는 “전 재산을 투자한 후 8여년 동안 가정이 파탄나고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경찰에 고소사건과 관련해 객관적 입증자료 약 60여가지를 증거자료로 제출했고, 수차례 조사를 받았음에도 구속 수사는커녕 6개월이 지나도록 수사가 종결되지 않고 있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을 조사해 위법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라며 “지능범죄수사대에 오는 사건은 일반 사건들과 달리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다. 정확한 수사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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