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보 김규항마저 조국 우려했다 "애국 선동, 자유주의의 모독"

유성운 2019. 7. 2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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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친일파·이적·죽창가..
조국의 페북 글 38건
일본보다 내부 겨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공저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위험이 과거처럼 총칼을 든 군부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합법적 절차로 선출된 권력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해 화제가 된 책이다.

이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정치인은 상대 세력을 경쟁자보다는 적으로 여기고, 비판 언론을 공격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역자’나 ‘배신자’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동원된다고 한다.

조국 민정수석이 2월 15일 춘추관에서 국정원 검찰 경찰 개혁전략회의 결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책을 떠올리게 된 것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여권을 보면서다. 3월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블룸버그통신의 기사에 대해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비판한 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해서도 ‘검은머리 외신’이라고 칭해 파문이 일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과 ‘아시안 아메리칸 기자협회’(AAJA) 서울지부는 즉각 반발하며 논평에 대한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최근 일부 여권 인사의 낙인찍기는 어떤가. 지난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은 항일(抗日) 메시지로 연일 뜨거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18일)라거나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 배상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20일)고 썼다. 13일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올린 이래 일본과 관련된 게시물을 39건을 올렸는데 대부분 일본 정부보다는 내부 비판 세력을 겨냥한 내용이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12일 “이런 판국에 (일본 총리인) 아베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은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동경(도쿄)으로 이사를 가시든가”라고 거들었다.

앞서 2월 민주당이 낸 5·18 특별법과 4·3 특별법 개정안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5·18 등을 비방·날조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내용 때문이다. 진보시민단체 오픈넷은 “전체주의적 사상에 기반한 개념으로 정당한 입법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의 반대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5월 참여연대와 오픈넷이 연 세미나에서 미국 노스웨스턴대 앤드류 코펠맨 교수는 “(5·18 특별법 개정안은)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공공기관의 권력으로 컨트롤하려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유시민의 알릴레민의 알릴레오' 유튜브 캡처]

조 수석과 현재 여권의 주류가 된 586 정치인들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반공 매카시즘과 빨갱이 비난, 위축된 자유, 강요된 애국에 대해 반발하며 이에 대한 저항을 통해 성장한 세대다. 그런데 이들이 정치적 이견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가. 맹렬히 비난했던 앞선 통치 집단처럼 이단시하고 있지 않나. ‘빨갱이’를 ‘친일파’로 바꾼 격이다. 사실상 데칼코마니다.
유성운 정치팀 기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과 진보적 사회문화비평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하고,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등의 칼럼집을 냈던 국내 대표적 진보 지식인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21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이견은 모조리 이적이며 매국이다. 한국에서 반세기 이상 이 더러운 애국 선동을 도맡아온 건 극우세력이었지만, 이제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조국의 ‘애국과 매국’ 발언은 그의 현재 이념, ‘개인의 존중’이라는 자유주의의 기본조차 팽개치는 자기 모독의 개소리일 뿐이다.”

유성운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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