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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성능 자랑하려고 에어쇼 나갔다가 추락

김종화 입력 2019.07.22. 06:30 수정 2019.07.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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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항공기의 성능을 자랑하기 위해 에어쇼에 참가, 저공비행하다 추락한 사고가 있습니다. 그것도 승객을 130명이나 태운 상태에서 말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사고는 항공기의 성능 자랑은커녕 시스템의 오류와 승무원들의 과실만 드러난 항공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민간 항공기가 지금처럼 조종사가 조종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시기는 불과 30여년 전입니다. 그 이전에는 복잡다단한 계기판과 조종간을 일일이 터치하거나 움직이면서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984년 프랑스의 에어버스사가 획기적으로 성능이 향상된 항공기인 A320기를 시장에 내놓습니다. A320은 당시 군용기에만 사용하던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fly-by-wire)' 방식을 도입해 조종사의 편의를 향상시키고, 항공기는 고난도 비행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FBW가 도입되지 않은 항공기는 기계구조와 유압에 의존해 일일이 버튼을 누르거나 조종간에 힘을 가해야 했지만, FBW가 도입된 항공기는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조종되는 방식인 것이지요. 조종간 대신 스틱을 사용해 적은 힘으로도 원활하게 조종할 수 있고, 적재된 연료로 무게중심을 제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버튼이 빼곡한 계기판이 없어지고 대형 모니터 몇 개로 조종석이 구성돼 조종사들도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에어버스는 A320으로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보잉사의 B727의 기세를 꺾을 수 있다고 자신했고, 몇 년 뒤인 1988년 4월 에어프랑스가 첫 상업운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에어버스는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그해 6월 프랑스 알자스의 하브셰임에서 열리는 에어쇼에 A320을 내보내 성능을 자랑하기로 결정합니다.


1988년 6월26일 승객 130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AF296편(A320, F-GFKC)은 당시 에어프랑스 최고 조종사로 평가받던 아셀린에게 '알파맥스(Alpha-Max) 기동'을 맡기고 하브셰임 근처 공항에서 항공기를 이륙시킵니다. 알파맥스 기동은 항공기가 실속되기 직전의 최저속도로 아주 낮은 고도로 저공비행을 유지하는 고난도의 기동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실속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한 기동이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묘기이기 때문에 에어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지요.


오후 12시44분 AF296편은 하브셰임 공항으로 하강하면서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잔디 활주로 위에서 조종사들은 최저고도 100피트(30미터)를 유지하면서 알파맥스 기동을 감행합니다. 그러다 활주로 끝에 갑자기 나타난 숲을 발견하고 급히 스틱을 당겨 상승하려 하지만 실속한 항공기는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숲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나마 최저속도로 비행 중인데다 고도로 낮아 추락으로 인한 사망자는 3명에 그쳤지만, 사고로 인한 충격은 심각했습니다.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최신예 항공기가 고작 세 번째 비행에서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조종사들의 진술과 블랙박스를 검사해 사고원인을 밝혀냅니다. 우선 사고기 조종사들에게 변두리의 작은 공항이었던 하브셰임 공항과 그 주변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활주로가 2개인데 어느 활주로에서 기동해야 하는지, 활주로 끝에 숲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모르고 조종사들은 임의로 고른 활주로 위를 기동했던 것이지요.


항공기의 시스템 결함도 발견됐습니다. 계기판의 고도계는 100피트(30미터)를 가리켰지만 실제 고도는 30피트(9미터)로, 비행했어야 할 고도보다 21미터나 낮게 날았던 것이지요. 항공기의 고도계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기압고도계와 지상을 기준으로 한 라디오파 고도계가 있는데 기장이 기압고도계를 보고 착각한 것인지, 고도계의 오작동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블랙박스는 고도표시 음성알림을 100피트 알렸다고 표시돼 있지만 이를 증명할 디지털 녹음장치가 고장나 증명이 안된 것입니다.


그러나 숲으로 돌진하는 과정에서 조종사는 "스틱을 당겨 상승하려 했지만, 시스템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반대로 기수를 더 내려 하강하려 했다"고 항변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스템이 실속 가능성을 인지해 조종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실속 방지를 위해 기수를 내려 속력을 붙인 후에 다시 기수를 올리려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종사의 의도대로 스틱을 당겨 바로 상승했다면 숲속에 추락하지는 않았겠지만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실속해 땅으로 바로 추락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초대형사고로 커질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고도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시스템이 기수를 내려 속도를 조금만 더 올릴 공간만 있었다면 다시 상승할 수 있는 양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조종사들이 숲을 발견한 것이 너무 늦었고, 대처도 늦었습니다. 사고 후 기장과 부기장, 에어프랑스의 관계자 다수와 에어쇼 관계자 등은 부상 및 과실치사 혐의로 당국에 고소되고, A320기는 시스템에 대한 보완작업을 거쳐 다시 판매됩니다.


중요한 것은 교훈입니다. 사고 후 항공기 에어쇼를 할 때는 항공기에 승객을 태우지 않는다는 규칙이 세워집니다. 방만한 준비와 조종사들의 자만, 불필요한 성능 자랑은 어린이 2명과 어른 1명의 생명을 앗아간 후에야 사람들에게 교훈이 된 것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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