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과 대화하려면 '네마와시(根回し)'를 알아야 합니다"

정다슬 입력 2019. 7. 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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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인터뷰
"노벨상추진위 만든다고 노벨상 못 타"
"日 소재산업 경쟁력은 축적의 결과물"
"네마와시(根回し)를 알아야 日과 소통"

[도쿄(일본)=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노벨상추진위원회를 만든다고 노벨상을 탈 수 있나요?”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21일 도쿄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겠다며 관련 산업 육성에 착수한 것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 일본 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돈과 인적자원을 투입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日 소재산업 경쟁력은 축적의 결과물”

국 교수는 “한국이 흐름의 나라라면 일본은 축적의 나라”라며 “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일례로 노벨상을 들었다. 일본인이 지금까지 탄 노벨상 수상자 25명 중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부문 수상자가 22명이다. 소재산업은 끈질기게 한우물만 파는 기초·응용 과학 성과 위에 서 있는 결과물이란 설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성장해왔다. 그 결과 과거 일본이 우위를 점했던 전자·반도체 산업은 한국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소재산업은 사정이 다른 분야다. 한국의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높은 것을 단순히 안이하다고 보기보다는 글로벌 분업체제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게 국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수출 규제가 일본 경제에 미칠 타격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액의 17.5%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일본 소재산업이 일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적은 데다 다른 대체 발주처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국 교수는 “소재 공급이 중단되거나 축소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줄어든 점유율을 결국 다른 나라 반도체기업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 소재기업은 삼성과 SK하이닉스 대신 그 기업에 납품하면 된다”고 했다.

◇“네마와시(根回し)를 알아야 日과 소통”

국 교수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철회할 때도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양국이 관계개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 당사자로 구성된 대화단을 구성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정부가 이번 수출 규제의 이유로 ‘신뢰’ 문제를 들고 나온 이상,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 교수는 “일본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본의 일 처리 방식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면서 “일본은 뭐든지 ‘네마와시’(根回し)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무를 옮겨심기 전 행하는 일련의 준비작업을 뜻하는 네마와시는 일을 진행할 때 협의나 사전교섭 등을 통해 관계자들 간에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물밑작업을 말한다. 국 교수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학계, 언론 등 다양한 사회 참여자들로 구성된 대화단을 양국 정부가 구성해 소통하는 작업이 네마와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내각제라는 권력구조 특성상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는 복잡한 내부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게 당연한 절차여서 정상회담으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쉽지 않다는 게 국 교수의 설명이다.

인터뷰 내내 국 교수는 파탄 난 한·일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정보기술이나 융합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한국과 유연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은 부족하지만 오랜 시간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일본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할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직난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구인난을 겪고 있는 일본은 인적 교류를 통해 서로가 처해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도 협력할 수 있다. 한·일 관계 정상화 이후 60여년 동안 쌓아온 양국 간 경제적 밀접도도 상당하다.

국 교수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만족감을 얻겠지만 결국 그 피해는 기업, 국민에게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국 교수는 “매달 한 번 일본에서 경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근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며 “정치인들은 결과로 책임을 지는 것인데 사태가 이렇게 되자 피해자인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다 같이 뭉쳐서 함께 대응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중호 교수는

요코하마시립대 국제종합과학부 교수, 게이오주쿠대 경제학부 특별초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뽑혀 히토츠바시 대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방문학자,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25년 간의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제·사회·정치 등을 고찰한 ‘호리병 속의 일본’,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 등 다수의 저서를 서술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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