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8년.. '과실치사' 입증은 성과, '늑장 수사 착수'는 오점

2019. 7. 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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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2차례 수사 통해 총 54명 기소 ..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 실형 확정
민사소송도 산발적으로 벌어져, 업체 책임은 인정됐지만 국가는 책임 피해
신현우 전 옥시 대표가 2016년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 신 전 대표에게는 징역 6년형이 확정됐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2011년 첫 피해자가 발생한 지 8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태에 대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입증이 어려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제조·판매에 관여한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수사 착수가 늦어 피해자들의 구제가 그만큼 뒤로 늦춰진 부분은 오점으로 남았다.


23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시작된 2차 수사를 통해 기소된 피고인은 모두 34명이다. 8명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차 수사 때 기소된 21명을 합하면 모두 54명을 법정에 세웠다. 1차 수사 때는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2차 수사에서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불거진 시점은 2011년 4월이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출산 전후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이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입원했고, 산모 4명이 사망했다. 보건당국은 동물 흡입 독성 실험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확인했고,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등 살균제 6종을 수거하도록 했다.


검찰 수사보다 먼저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피해자들이었다. 2012년 1월 피해자 유족들은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같은해 8월에는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진 것은 3년 반을 훌쩍 넘긴 2016년 초에 들어서였다. 피해자들의 고소,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 사건을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지휘만을 맡고 정부당국 역학조사를 지켜봤다. 그사이 2014년 3월에는 폐손상 조사위원회에서 공식 신고접수 건수 361건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확실한 사례가 127건에 달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경찰은 2015년 9월 고발당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15곳 중 8곳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2016년 1월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나서자 롯데마트는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와 보상 계획을 마련했고, 홈플러스와 옥시도 비슷한 내용의 보상안을 발표했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 실험 과정에서부터 수사를 벌여 직접 제조와 판매에 관여한 임직원들은 물론 실험 결과를 왜곡한 대학교수와 연구소장, 연구원도 모두 기소했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 존 리 대표도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해 12월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집계에 따르면 누적 피해자는 5321명, 사망 피해자만 1006명에 달했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6년으로 감형됐고 형이 확정됐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였던 ‘세퓨’전 대표 오모 씨도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도 금고 4년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3년으로 줄었고, 지난달 형기 만료로 출소했다. 다만 존리 전 옥시 대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신현우 전 대표에게는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가 인정됐지만, 후임자인 존 리 대표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제품 제조와 판매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못했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피해자와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도 산발적으로 제기됐다. 2017년 법원은 세퓨 가습기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제조업체에 3억 7000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구체적인 발병 현황과 원인이 드러났던 적이 없었던 만큼 원인미상의 폐질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2차 수사 대상이었던 이마트는 공정위로부터 받은 과징금 700만원 부과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처분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취소 판결을 받았다. 애경산업의 경우 SK케미칼을 상대로 7억원대 구상금 소송을 내기도 했다. 애경이 '가습기메이트' 판매 과정에서 생긴 손해를 배상했으니, 제조업체인 SK케미칼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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